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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애틀타쟌 Sep 16. 2024

두 번째 천사

시애틀 타잔의 이민 이야기 15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주위에 엄청난 천사들이 나를 옹위하여,

지쳐서 쓰러질 땐 일으켜 세워주었고,

배고파 주저앉았을 땐 주린 배를 채워주었고,

발이 아파 고통스러울 땐 어깨동무하며 같이 걸어주었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는 천사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시애틀 타잔은 결코 없었으리라.

처가 식구들 마음결은 비단이었다.

맑고 순수해서 이른 아침 뽕나무잎에 내린 이슬 같다.

 

누에들이 그걸 먹어서 그런지,  

마음이  보드랍고 매끄러운 실크 같았다.

꽃사슴 아내는 1남 3녀 중 둘째 딸이다.

일찌감치 보따리를 싸서 하늘로 이사 간 바로 위 오빠와 오빠보다 세 살 위인 양띠 언니가 있다. 

 

그리고 큰언니와 띠동갑인 빨간 립스틱 바르는 동생 이렇게 넷이다.

그중에서도 처제는 심성이 어찌나 고운지 황실에 납품해도 손색없을

상품중에 상품인 최고급 실크 같았다.

혼자 미국에 와 주눅 든 형부를 알뜰하게 챙겨주고, 맛있는 반찬도 

내 앞으로 밀어놓고 밥도 한 공기 더 퍼서 옆에 놔주었다.

그런 꽃밭 같은 마음을 십만 평쯤 소유한듯한 처제는 나에게 운전도 가르쳐 주었다.


지금은 미국의 많은 주에서 한글로 면허시험을 보는데,

당시엔 영어로 시험을 보았다. 그때 도움을 주셨던 분이 이달용 목사님이셨다.

영어를 모르니 문제 하나하나를 답과 같이 외웠다.

 

아마 그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는 물론 하버드 입학도 문제없었으리라.

필기시험은 두 번째 가서야  합격하고 실기는 첫 번에 찹쌀엿처럼  붙었다.

그 공은 오로시 천사표 처제의 공이니 지금도 운전할 때면 하나님께 기도하기 전

솔직하게 고마웠던 처제가 먼저 생각난다.

 

실기 시험을 치르기 전 연습할 차가 있나 그렇다고 학원에 다닐 처지도 아니었다.

그런데 천사표 처제는 뽑은 지 얼마 안 되는, 새 차 냄새가 코를 찌르는 포드 템포를 척하고 내주었다.

예배 후 밥 먹고 친교 할 때의 시간을 이용해야 했기에 나는 밥도 안 먹고 나오면

종이접시에 골고루 한 접시 담아와 운전 연습하는 나에게 전해주고 난 다음에 처제는 밥을 먹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호텔로 일을 가야 하는데 아침부터 내린 폭설로 인해

차들이 엉금엉금 기어 다녔다. 출근시간을 한참이나 앞서 버스를 기다렸다.

그러나 기다리는 버스는 오지 않고  정류장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데 처제가 자기차를 끌고 나오는 게 아닌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도 그렇게는 못한다.

그 눈보라 치고  꽁꽁 언 도로를 장모님이 어딜 가냐고 

소매를 잡고 난리를 치는데도

처제는 기어이 출근시간 늦는다고 나를 데려다주더라.

난 그 일을  눈감기 전 호흡이 남아있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드럼을 기가 막히게 잘 치는 처제는 성격도 좋아 호탕한 웃음이

여러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마음이 실크라서 그런가 처제는 연로하신 장인 장모님

그리고 매일 밤 고관면 중고동 208번지를 외치는 할머니를 모시다

결혼하였다. 

신께서 몇 안 되는 사람에게만 허락하신다는 

아들 그리고 딸 막둥이 아들 이렇게 황금비율로 자녀를 낳고

 

한국 사위가 주지사인 엘리콧시티 메릴랜드에서 

앞이마 훌떡 벗겨진 서방님과 콩도 볶고 깨도 볶으면서 

홀 시어머니 모시고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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