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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애틀타쟌 Sep 22. 2024

시애틀 타잔의 이민 이야기 20

엄집사

폭염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선선한 가을바람에 마음도 몸도 활기가 넘치시길 소원합니다.



 

 거처를 옮긴 후 처가 쪽에서는 아내가 들어올 기미가 없자

 나를 다시 한국으로 내보내기로 결정을 한 것 같았다.

 어떻게 들어온 미국인데 내가 다시 나갈 것인가 물론 들어가고 싶은 생각도 

굴뚝같았지만 빈손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나는 또다시 거처를 옮겨야 했고 새로운 피난처는 U 집사님 댁이었다.

 갈 곳 없는 사람들의 정거장  역할을 하는 그곳은 나와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이 있었다. 

돈이 있으면 내고 없으면 안 내도 되는 그런 곳이었다.


집사님은 오십 후 반에 얼굴이 후덕하고 맑고 하얀 피부가 심성을 짐작케 하였다.

경상도 억양에 투박하지만 인자한 미소는 미안하고 송구한 마음들을 녹여내고도 남았다.

젊은 시절 남편을 여의고 아들 하나가 있는데 이놈이 개 하고 죽마고우처럼 지냈다.

행동거지가 어찌나 개차반인지 말마다 멍멍이요 으르렁 컹컹이라


집사님 마음에 거친 풍랑이 멈출 날이 없더란다. 

고등학교에 시작한 마리화나는 갈수록 점점 농도를 높여 대마초는 담배처럼 되었다.

급기야 헤로인에 손을 대기시작하였다.

약값이 떨어지면 몰래 들어와 일전짜리 페니 하나까지 들고나가니 집사님의 마음이 오죽하랴.

그래도 자식이라고 애면글면 안타까움이 산을 넘었다.


어느 날 부흥회에 참석했더니 부흥강사 왈 "집안에 원수가 있으니 그 원수를 바로 서게 하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이웃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탁발하는 노승처럼 말하더란다.

할렐루야 아멘하고 그 후부터 처지가 곤궁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보살폈는데

하다 보니 일이 그렇게 마음이 편하고 즐겁더란다.

하여 십 년 넘게 그 일을 하고 있는데, 하늘도 무심한지 약을 올리는지 아들은 감옥에 가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아들 내 동기간처럼 그 일을 하는데 별의별 소문이 다 나더란다.

하기 좋은 말이라도 여러 번 이면 짜증일 텐데 입에 담기도 

추잡한 소문이 나니 죽을 맛이 더란다.


남자가 그리워 그 일을 한다는 둥 누구누구를 옷 벗기듯 돈을 털어먹었다는 둥

베라 벨 소문이 담을 넘어 들어와도 상관없이 그 일들을 하는 걸 보니

여장부 여장부 그런 여장부가 없더라지.


어느 날은 거지가 형님 할 늙은이 하나가 찾아왔더랬다.

헌 옷이지만 깨끗하게 입히고 정갈하게 밥상 차려 먹여주고 입혀주었더니,

며칠 후 야밤에 집사님 혼자 자는 방문을 밀고 들어왔더란다.

옆에 있던 전화기로 수박 깨듯 머리통을 날리니 그 길로 줄행랑을 치더란다.

머리 검은 짐승들은 거두어준 은공은 고사하고 뒤통수를 치니

참으로 통탄하고 억울할 일이 더라.

그곳에서 나는 집사님을 따라  교회에  출석했고, 

 이런저런 미국 사정을 듣고 많은 사람들을 사귈 수 있었다.

 까맣게 몰랐던 미국 생활을  하나둘씩 알아가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처갓집 식구들이 아닌 교회 사람들 덕분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많은 정보를 얻었고 어떻게 살아갈지를 궁리하게 되었다.

어느 날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처갓집 식구들이 나를 내보내기 위해 

이민국에 연락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나는 부랴부랴 볼티모어를 떠나기로 하였다.

교회에서 만난 공 집사라는 사람을 통해 캘리포니아

에너하임이란 동네에 사는 공집사 어머니를 소개받고 갈 곳을 그곳으로 정했다. 

주소 하나와 전화번호 하나 달랑 들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만나서

호구를 의탁해야 하는 내 모습이 물 한 병 없이 아득한 사막을 건너야 

하는 일이라 생각하면 지금도 입안이 바짝바짝 마른다.

짐이래야 가방 하나가 전부인 단출한 차림으로 나는 공항으로 향했다.

 LA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내 팔자의 어느 부분이 어그러져 이런가?

서럽기도 하고 화도 나고 머릿속이 헝클어진 실타래로 가득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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