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1
일을 마치고 돌아오니 공권사 큰며느리가 안절부절 어쩔 줄 모르며 시어머니를
잡아끌며 제방으로 들어가더라.
이윽고 공권사가 나오며 하는 말이
미스타킴 낮에 한국에서 전화가 왔는데 아버지가 위독하시단다.
전화를 하라며 거실에 있는 전화기를 가리키더라.
얼마 전 큰누님한테서 전화가 와서 아버지가 쓰러지셔서 일어나지 못하시고 계시다는 말을 들은 터였다.
잠깐씩 의식이 돌아오면 너를 찾으시는데 시간을 맞출 수 없으니
가능하면 전화를 좀 해주라고 하였다. 그래서 대답 없는 아버지와 통화한 것이 사흘 전이었다.
서둘러 전화를 하자 수화기 너머 저쪽에서 들리는 "봉교리 호상 솝니다"
그 목소리는 키 큰 차형이 아저씨였다.
그것은 아버지가 이미 이 세상분이 아니다란 말과 다름없는 말이었다.
나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다리가 무너지고 허리가 무너지고 심장이 무너지고 머리가
무너지고 서있는 모든 것이 무너져 캄캄한 공간에 빠져 숨을 들이켤 수도 내뱉을 수도 없었다.
아무 대답이 없자 다시 한번 "봉교리 호상 솝니다" 큰 키에 걸맞은 느릿한 말투가 들려왔고
흑하고 아무 말이 없자 이내 눈치를 챘는지 "자네 태유아녀? 이이 잠깐 기다려
내 형 바꿔주께" 하더니 "미국 간 태유여 얼른 전화받아봐아"
이어서 왁자한 소란뒤로 큰 형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다 아버지 돌아가셨다"
그 짧은 말에 울음이 반이 들어있었다.
이어서 " 못 나오지? 걱정하지 마라 작은형 하고 잘 모시께"
그러면서 작은형을 바꿔주고 작은형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울다가 전화를 끊었다.
내방으로 돌아온 나는 바닥에 엎드려 무릎을 꿇고 베개로 얼굴을 감싸 쥐고 울기시작했다.
얼마나 울었을까 불 꺼진 방이 컴컴한데 조심스러운 방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을 여니 공권사의 큰며느리가 마치 자기가 큰 죄를 지은 죄인처럼 서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저녁은 어떻게 하냐고 묻는다.
나는 고개를 저어 답을 하고 이어서 공권사가 들어와서
한국에 가야 하지 않느냐고라고 묻는다.
당장 떠난다 해도 비행기삯도 없거니와 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불법체류자 신분이었기에 난 고개를 저었고 공권사는 알았다며 일어서더라.
시간이 한참 흐른 후 거실로 나가니 권사님이 늦게 들어온 큰아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엉거주춤 무슨 말을 하려는 큰아들에게 목례로 답을 하고 권사님한테
일은 며칠 못할 것 같으니 대신 일해줄 사람을 알아보라고 하고
가까운 기도원이 어디 있냐고 물으니 빅베어 마운틴에 한국사람이 하는
작은 기도원이 있는데 거긴 금식기도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란다.
알았다고 하고 방에 들어와 아버지 생각을 하는데
어느덧 새벽이 부옇게 걸어와 창문 앞에 서있더라.
찬송가와 성경이 합본된 책과 노트 한 권 볼펜 한 자루 수건과 칫솔을
작은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섰다.
아침 햇살이 요란하게 떨어지는데 나만 비에 젖은 고속도로를 달리고 또 달렸다.
뱀이 만들어 놓았음직한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 오르니 작은 기도원 팻말이 나타나고
좀 더 가니 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공권사가 미리 연락을 하였는지 관계자인듯한 사람이 나와 연락 받았다고 한다.
나를 안내한 곳은 집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방갈로 형태의 건물 몇 채가 늘어서 있었다.
그중 하나를 지목하고 간단히 주의사항을 말해주었다.
금식기도원이라 음식물은 섭취할 수 없고 물과 소금은 밑에 있는 집에 있으니
가져다 사용하면 된다고 하고 내려갔다.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부터 해야 할지 종잡을 수 없어 누웠는데 까무룩 잠이 들었나 보다.
보고 싶은 아버지는 안 보이고 쌍둥이 두 놈들이 어찌나 진저리를 치면서 우는지
화들짝 일어나 보니 꿈이었다.
멍하고 얼마를 있었는지 모른다.
답답하여 밖에 나가보니
어느새 저녁노을이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