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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작은 공간 II

고마운 녀석

by 점식이

[고마운 녀석]


무더운 여름이 지속되고 있다. 저녁에 잠을 청하기가 힘들다. 조금 더 좋은 집으로 이사 가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일 년에 적어도 2번은 해본다. 아이들 학교문제, 돈문제, 부동산, 경제에 대한 무관심 등으로 너의 본성을 따라 그냥 그대로 살고 있다. 와이프가 이사 가자. 좀 좀 좀. 그냥 그렇게 한집에서 살아온 지가 20년을 지나고 있다.


더운 여름에 하루 종일 에어컨을 켜고 살 수는 없다. 각 방마다 선풍기 하나씩, 에어컨이 쉴 때는 이 놈들이 운동을 한다. 우리 집에 가장 힘들게, 불평불만 없이 묵묵히 살아가고 있는 녀석이 있다. 1년에 2번씩 목욕재계만 해준다.


20년 전에 이사 오는 해, 첫여름, 에어컨 설치 전에 우리 집에 왔다. 이사를 와서 집을 수리할 때 아파트 입구에 유리문을 지지하는 나무 지지대를 설치하였다. 지지대를 기반으로 약 2m 높이에 벽걸이 선풍기를 설치하였다. 우리 가족들이 가장 좋아하는 녀석이다. 더운 여름에 에어컨을 켜기 전, 소파에 앉아서 이 녀석부터 작동시킨다. 에어컨을 켜기 위해서는 집의 모든 문을 다 닫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놈만 작동해도 그럭저럭 견딜만하기 때문이다. 이 녀석은 20년 동안 한 번도 불평불만을 하지 않았다.


이제는 이 녀석도 만신창이가 되었다. 회전을 하면서 회전 방향을 전환하는 지점에서 조그마한 불만을 토로한다. 회전속도 조절하는 줄이 망가진 상태이다. 항상 2단 속도로 달린다. 그러나 선풍기의 기능을 수행에는 별 무리가 없다.


차량 에어컨이 고장 나서, 퇴근 도중에도 더위에 많이 시달렀다. 새삼스럽게 20년 동안 고생해 준 선풍기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진다. 딸아이와 소파에 앉아서 선풍기의 과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제는 쉬게 해주고 싶다. 이제 이런 벽걸이 선풍기를 구입하기 힘들 거라고 한다.


그동안 고생해 준 녀석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어떻게 ㅠㅠ. 상 고마웠다. 감사한다. 올해도 깨끗하게 씻어줄게!


-점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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