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 관용
우리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 딸이 있다. 이제 성인이 되어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 대학생, 성인이 되면 제어하기가 힘들 때도 있다. 모두 다 타지에서 생활하고 있다. 모두 착한 아이들이다. 한 번씩 의견 충돌이 있고, 어른들의 노파심 때문에 걱정이 되는 일을 하기도 한다.
아들은 이제 군대에 가야 한다. 반강제적으로 보내고자 하였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가야 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기가 문제인데, 대학을 졸업하고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진학하지 않으며, 그래서 밀어붙이기식으로 동의를 얻었다. 조금 미안하기도 하다.
자식을 키우는 일은 이해와 관용이라고 한다. 이해는 상대의 입장, 상황을 알고 받아들이려는 마음일 것이다. 관용은 반드시 동의하지 않아도 실수나 다름을 너그럽게 용서하고 받아주는 행동이다.
행위에 의한 결과가 나오면, 결과를 보고 이해와 관용의 마음으로 넘어갈 수가 있을 것 같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기 때문에 어른으로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식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어떤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다. 이때는 약자가 된다.
결과가 도출되기 전에는 다양한 방법으로 손실을 최소화, 이득을 극대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하여 의견을 나눌 수가 있다. 이때는 이해와 관용의 마음은 극히 줄어들 것이다. 어른의 경험과 다양한 지식으로 자식이 자기의 방법을 따라오도록 강요할 것이다.
최대한 이해하고 관용을 베풀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 왜 이리 갑자기 날씨는 추워지는지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았다. 남들은 다하는 자식 키우는 법을 따라 하지 못한 거 같아서 미안하다.
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 남들 다하는 생활, 별 탈 없이 잘 다녀오기를 빌어본다. 세월은 빠르게 흘러갈 것이다. 무사히 잘 다녀오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