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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엔나 보물찾기 Dec 24. 2022

카톡을 타고 날아온 비엔나 선물 보따리

서울 한복판에서  즐기는 한겨울의 비엔나 크리스마스마켓과 시내 야경

유럽의 겨울

유럽의 겨울을 단어로 설명하라면, ‘춥다’, ‘어둡다’, ‘잿빛이다’, ‘움츠러든다’, ‘따뜻함’, ‘남쪽 나라‘, ’그리움‘ 같은 단어로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일광절약 시간제, 소위 서머타임이 10월 말에 끝나면 비엔나 기준으로 4시 정도면 해가 진다. 마치 한밤중 같은데 시계는 오후 4시다. 아직 퇴근 준비를 하기에도 이른 시간이다.


비엔나에서 근무할 때, 점심을 먹고 잠깐 동료들과 커피 타임을 가진 후 오후 일과에 몰두하다 잠시 기지개를 켜려고 머리를 들면 어느새 내 사무실 창가는 깜깜하다. 아 벌써 퇴근 시간인가 하고 시계를 보면 4시. 아직도 적어도 한 시간반, 두 시간은 더 일해야 할 시간이지만 그때부터는 일할 의욕이 현저히 떨어진다. ‘오늘 일은 내일 해도 되지 않나?‘하는 간사한 마음이 든다.


그렇게 유럽의 겨울은 대부분 날씨가 흐려서 햇빛을 보기가 어렵고, 하늘은 늘 회색빛이며, 춥고 을씨년스럽다. 그래서 서울에서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가 겨울에는 상당히 저렴한 것 같다. 유럽의 전형적인 여름 날씨를 즐길 수 없는 비용을 차감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더 춥고 힘든 겨울

내가 비엔나에 머무를 때 이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소위 러,우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미 작년 겨울만 해도 러시아가 유럽으로 가는 천연가스망의 밸브를 잠궈서 천연가스 부족과 국제유가 인상으로 에너지 위기를 겪고 있었던 터였다. 옆에 일하던 일본 동료가 1월부터 11월까지 11개월치 가스 요금보다 12월 한 달 가스 요금을 더 많이 냈다고 하소연할 정도였으니 대충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짧은 시간에 끝날 것 같다는 전문가들의 예상과는 달리 지금도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을 확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래서 유럽 기사를 보면, 샤워 시간을 5분으로 제한한다, 나무 땔감을 구해서 난방을 한다는 내용이 간간이 보이기도 한다. 그만큼 유럽에는 유례없을 정도의 에너지 위기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더 얼어붙게 하고 있는 것 같다. 얼른 전쟁이 종식되고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크리스마스 장식과 조명

그런 유럽의 추위와 어둠, 회색빛을 잊게 해 주고 사람들에게 기쁨과 활력을 가져다주는 것이 길거리마다 장식된 화려한 조명과 크리스마스 마켓이 아닌가 한다. 시내에 나가면 건물마다 거리마다 밝혀진 조명이 아름답고, 크리스마스 마켓에는 물건을 사고 삼삼오오 모여 글뤼바인과 풍쉬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절로 기분이 업되는 나를 발견한다.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손장갑을 끼고 비니를 머리에 쓰고 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나와서 한겨울의 조명과 야경, 그리고 사람을 향유한다.


올해 겨울에는 에너지 위기로 조명에 쓸 전기가 부족해서 그런 조명과 크리스마스 마켓도 못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나의 기우였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화려해진 조명을 보면서 역시 유럽 겨울의 아이콘은 조명과 크리스마스 마켓인가 싶었다.


지인의 압박(?)

비엔나에는 아직도 연락하고 지내는 지인들이 꽤 있다.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 매일 같이 점심을 같이 하고, 커피 타임으로 회사 돌아가는 얘기도 나누고, 가끔씩은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기도 했던 분들이다. 그중에 나처럼 브런치 작가를 꿈꾸는 분이 있는데, 며칠 전 카톡으로 한 묶음의 사진을 보내주셨다. 비엔나 밤거리 조명과 시내 풍경, 크리스마스 마켓 사진들이다.


사진을 보내주시면서 은근슬쩍 ‘글을 빨리 쓰라’는 압박으로 ‘좋은 글을 기대한다’는 멘트를 덧붙이였다. 그래서 연말에 한 해를 마무리할 일과 연이은 송년회로 잠시 글쓰기를 놓았던 마음을 다잡고 대구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글로 ‘서울 한복판에서 즐기는 비엔나의 겨울’을 소개하고자 한다.


유럽 겨울의 아이콘은 단연코 크리스마스 마켓이다. 비엔나에서 가장 큰 크리스마스 마켓은 시청 앞이다. 가게와 음식점도 일품이지만 하트 조명이 달린 나무를 포함한 화려한 조명이 압권이다. 링 스트라세 건너편 왕궁극장에서 사진을 찍으면 인스타용 사진을 건질 수 있다. 지인께서 보내준 사진은 호프부르크 왕궁 뒤 쪽 미카엘 광장에 차려진 크리스마스 마켓인 것 같다. 바로크 양식의 초록색 지붕과 고풍스러운 건물 장식과 크리스마스 마켓의 조명이 잘 어울린다.


비엔나 크리스마스 마켓에서는 장식품, 꿀, 과자와 같은 물건을 사기도 하지만, 삼삼오오 모여 웃고 떠들며 마시는 글뤼바인(Glueh Wein)과 풍쉬(Punsch)가 일품이다. 글뤼 바인은 여러 가지 약초를 넣어서 끓인 와인이고 풍쉬도 비슷한 음료이다. 따뜻한 음료를 마시면서 컵에 손을 대고 있으면 어느새 추위도 잊게 되는 마법에 걸린 듯하다.


그리고 각 크리스마스 마켓별로 음료를 파는 컵이 다 다르다. 미카엘 광장 컵은 슈페판 성당 앞에 서는 마켓과 같은 컵을 공유하나 보다. 이 컵을 모으는 것도 나름 재미고 추억이다. 난 개인적으로 Am Hof, 마리아 테레지아 동상(미술사, 자연사박물관 앞), 슈테판 성당, 칼스교회, 시청 앞 마켓 컵을 사모았는데 매년 겨울이면 이들 컵을 돌아가며 쓰는 재미가 있다. 통상 음료 4유로, 컵 보증금 4유로 해서 8유로에 음료를 사고 컵을 반납하면 4유로를 돌려주는데, 컵이 갖고 싶으면 그대로 들고 오면 된다.


슈테판 광장에서 명품 거리인 그라벤 거리로 가는 초입이다. 그 거리 초입에 Seit 18XX년 이라는 맥주 가게의 야외 테이블이 있다. 조명도 조명이지만 유럽 사람들의 야외 테이블에 대한 애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얼죽아’라는 말이 있다.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이다. 거의 얼죽야 수준이다. 얼어 죽어도 야외 테이블. 두꺼운 외투를 입고 심지어 위에 열선까지 키면서도 가게 실내는 한산한 반면, 야외 테이블은 사람들로 꽉꽉 들어찬다. 덕분에 여름에 따가운 햇살로 눈뜨기도 어려울 때는 시원하고 그늘진 실내 자리는 다 우리 차지라 좋다.


성 슈테판 성당은 모든 비엔나 시내 관광의 첫 출발지이다. 그곳에서 보는 슈테판 성당 야경은 일품이다. 추위가 괴롭히지 않는다면, 아주 찬찬히 비엔나 야경을 완상하면 비엔나, 유럽의 겨울을 제대로 맛볼 수 있다. 차츰 흐려져가는 비엔나의 기억이 또렷해지면서 비엔나가 그리워지는 크리스마스 이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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