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비엔나에서 떠나는 자연 속으로의 시간여행

비엔나에서 당일로 다녀온 Almsee 여행기

by 비엔나 보물찾기

비엔나는 알프스 산맥이 동쪽 끝으로 달려서 끝나는 지점에 있다. 거기서부터 동유럽으로의 드넓은 평원 지대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비엔나 기준으로 서쪽으로 가면 갈수록 산세와 풍광이 예사롭지 않다. 말 그대로 오스트리아 알프스의 진가를 느낄 수 있다. 스위스, 이탈리아와는 같으면서도 다른 느낌이다.


일분일초도 '헛되이' 시간을 보내지 말자라는 일종의 강박관념 때문인지 주말에 멍하니 시간을 보내기 싫어서 가방을 둘러메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마침 하이킹 마니아인 러시아 회사 동료가 보여줬던 아름다운 알프스 산맥의 호수 풍광을 보고는 무작정 떠났다. Almsee. Alm이 산장, See가 호수라는 의미지만 Almsee는 고유명사라 굳이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Almsee는 비엔나를 짧게 여행하는 사람들은 엄두를 못 낼 곳이다. 비엔나에서 가는 데만 편도 3시간 거리에 있으니, 그 시간이면 할슈타트나 장크트 볼프강 호수, 그문덴 같은 곳을 가는 것이 더 비용효과적이다. 혹여 이미 그런 유명한 관광지를 다녀왔다면, Almsee는 한번 여행지로 고려해 볼만할 것이다.


비엔나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린츠를 지나 벨스(Wells) 역까지 간다. 거기서 로컬 기차를 타고 그뤼나우(Gruenau im Amstal)까지 또 한 시간 정도 가야 한다. 내려서는 차로 15분 정도 거리에 Almsee가 있는데, 버스가 자주 있지 않아 택시를 타는 것이 낫다. 택시는 인당 7유로라고 적혀 있는데, 어떤 이들은 대당 20유로를 받기도 한다. 비엔나에서 차를 운전해서 가면 2시간 40분 정도 걸린다.


이제 본격적으로 오스트리아 알프스가 허락한, 호수와 만년설로 들어가 보기로 한다.


택시에서 내려서 호수를 향해 걸어 올라가다 보면 6월인데도 저 멀리 만년설이 우리 눈을 즐겁게 한다. 그리고 주차장 근처 자그마한 호수에서는 그 멀리 만년설 덮인 산의 반영을 볼 수 있다. 어느 것이 진짜 산이고, 어느 것이 반영인지가 헷갈릴 정도이다. 그 물의 맑음은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그렇게 만년설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신선들만 사는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고 하면 과한 표현일까. 걷다 보면 동서양이든 사람 사는 곳이면 문화는 다 똑같다 싶은 생각이 든다. 그 목적이 무엇이든 돌탑을 하나하나 정성 들여 쌓은 모습이 눈에 띈다.


Almsee는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고, 그 각도마다 느낌이 다르다. 일단 Ameisstein이라는 나지막한 봉우리로 가서 호수 전체를 조망하는 것이 1 경이다. 눈이 녹아 생긴 빙하호에 햇살이 반사되면서 내는 에메랄드 빛은 캐나다 루이즈 호수를 떠올리게 한다. 그냥 핸드폰을 꺼내 대충 찍기만 해도 흡사 그림이다. 그 풍광을 한 동안 물끄러미 쳐다보면, 머릿속이 비어지며 온갖 잡념이 없어진다. 이런 걸 '물아일체'라고 하는 건가 싶다. 그렇게 한 시간여 바닥에 앉아 미리 싸서 간 스팸김밥을 꺼내 점심을 먹으며 한 때를 보낸다.


내려오는 길은 오를 때와 보지 못했던 또 다른 느낌의 경치를 선사한다. 6월임에도 그늘에는 아직 눈이 제법 있다.


Almsee 2경은 내려와서 호수와 만년설을 함께 보는 것이다. 호수 바닥에 돌 하나까지 세세하게 보이는 물 맑음과 저 멀리 만년설 덮인 산을 함께 카메라에 담으면 그 또한 장관이다. 자전거를 타고 주변 도로를 도는 것도 참 여유로워 보인다. 실제로 기차에 자전거를 싣고 와서 타는 사람들이 많다.


호수가에는 작은 가게가 있다. 우리나라였다면 아마 도토리묵에 막걸리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 작은 가게에는 커피, 맥주, 아이스크림 외에는 없다. 외관도 나무로 지어 전체 느낌을 흩트리지 않는다. 눈과 귀가 오롯이 자연에 집중하도록 한 배려가 부럽다.

잠시 맥주 한잔으로 약간의 갈증을 달래고, 호수 반대편을 따라 나누 사이 오솔길을 따라 걸어 내려오면, 내가 말한 Almsee 3경을 즐길 수 있다. 바닥에 돌 하나하나를 다 셀 수 있을 정도로 맑은 호수와 만년설, 그 위에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은 2 경과는 다른 경치를 선사한다.


여기서 하루의 여행을 마쳤어야 하나, 욕심이 생겨 근처 호수로 하이킹을 더 갔다. 하이킹도 하고 또 다른 호수도 감상하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욕심이 과한 것 맞다. 결국 비엔나로 돌아올 때 예약했던 기차를 놓치고, 밤 11시나 돼서야 집에 도착해서 쉴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 날 걸은 걸음은 총 4만보. 몸살 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싶다. 그리고 이 날 Almsee 일정을 함께 해 준 K가족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또 다른 호수로 가겠다는 욕심을 부리지 말고 K가족과 함께 노닥거리며 맥주나 마실 걸 하는 생각이 계속 드는 또 다른 호수 여행이었다. 이 날 여행의 결론은 '욕심부리지 말고 다음을 위해 조금은 남겨두는 여유를'이다. 물론 Almsee를 언제 다시 가겠냐 하는 생각으로 하나라도 더 보려고 나를 채근한 것은 결과적으로 나쁜 생각은 아니라 스스로 되뇌어 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인간의 끝없는 욕망의 상징, 바벨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