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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도 롤렉스는 없다

유럽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 롤렉스 찾기

by 비엔나 보물찾기





비엔나에 있을 때 친한 선배가 전화가 왔다. 형수님께 롤렉스 시계를 선물로 주고 싶은데 한국에서는 도저히 구할 수 없는데, 혹시 유럽에서는 구할 수 있을까 하며 묻는 전화였다.


그 전화 이전에는 롤렉스는 예전에 금색으로 치장된 값비싼 예물 시계 정도로만 알고 있었지 내 경험 체계 안에는 거의 존재감이 없는 물건이었다.


그 전화 이후로 비엔나 시내에 있는 시계 전문점, Juwelier Wagner나 Bucherer에 들러 그 선배가 찾던 시계를 물어보면서 롤렉스라는 시계 브랜드가 내 사고 체계 속으로 들어왔다.


그 후로 뉴스를 검색하고는 한국에서는 백화점에 새롭게 시계가 들어올 때 맞춰서 하는 오픈런, 오프런 대행, 롤렉스를 사기 위해 다른 사람의 구매실적을 사서 내 실적으로 등록, 진품임을 인정하기 위해 구매 영수증을 함께 첨부, 실제 가격도 비싸서 엄두가 안 나지만 중고 거래에 붙는 피와 그런 피를 주고도 구매를 하는 사람들. 롤렉스라는 단어와 함께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다 딴 세상 일만 같았다.

고전적인 데이트저스트 모델이 아닌 서브마리너, 데이토나, GMT 마스터 2 같은 인기 모델들은 원래 가격보다 피가 더 많을 지경이니 가히 롤렉스의 인기(?)를 실감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유럽의 도시들을 여행 가면 유명 관광지, 맛집을 검색하면서 롤렉스 매장이 어디 있는지를 함께 찾아보게 되었다. 일부러 찾아가지는 않고, 내가 여행을 다니는 동선 상에 매장이 있으면 잠시 들리는 수준이다. 롤렉스를 사려고 하는 목적은 전혀 아니다. 그냥 롤렉스를 구하기가 그렇게 어렵나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함이라고 하면 누군가 나를 이상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고 놀릴지 모르나 그게 사실이다. 시계를 사지도 않을 거면서 무엇 때문에 매장을 방문한다는 말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내가 생각해도 궁색하다.


롤렉스 매장을 다니다 보면 매장 방문 시간이 평균적으로 1분 내외다. 질문과 답의 순서는 이렇다.


"남성용 롤렉스 시계 있니?"

"아니. 판매용 시계는 없고 그냥 전시용만 몇 개 있어."

"응 내 그럴 줄 알았어. 수고해".


그리고 다른 명품 매장도 비슷하겠지만 진열장은 늘 자물쇠로 잠겨있고, 시계를 볼라치면 장갑을 끼고 아주 고이고이 극세사천으로 닦은 다음 보여주고는 다시 넣는다. 비싼 명품은 명품인가 보다.


그리고 롤렉스가 명품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취한 마케팅이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롤렉스는 스위스에서 모두 수작업으로 제작된다고 하는데, 그 수작업으로 생산하는 물량이 전 세계에서 롤렉스를 찾는 수요에 턱없이 모자란다. 그래서 전 세계 매장에서 나름의 정책에 따라 본사로 주문을 넣으면, 본사에서는 생산되는 물량을 나름의 배분 원칙에 따라 매장별로 배분을 한다고 한다.

마치 맛집이 일부러 가게를 확장하지 않고, 사람들을 가게 밖에 수미터에서 수십 미터씩 줄을 서게 만드는 것과 같은 마케팅 전략인데, 굉장히 효과적인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롤렉스 매장에 가서 구매를 하고 싶다 하면 바로 주문을 넣고 대기를 오래 하는 시스템도 아니다. 매장별로 대기순서가 있다. 그 대기 순서에 이름을 올리는 것조차 어렵다. 비엔나에 있는 롤렉스 매장들은 대기순서도 마감이라 대기 순서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서 또 대기를 해야 한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그들의 설명은 맨 앞 대기자가 시계를 받아서 순서에서 빠지면 한 사람을 대기 순서에 새롭게 넣어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기 순서를 관리하는 것조차 힘들다는 하소연이다.

대기 순서에 이름을 넣기 위해 대기를 해야 한다. 얼마나 신박한 마케팅 전략인가.


잘츠부르크나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는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이 아니면 대기순서에 넣어주지도 않는다 하고, 심지어 공항 면세점에 있는 시계도 픽업해 갈 주인이 정해진 시계이거나 숫제 시계가 없거나 할 정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이런 마테킹 전략으로 각 매장마다 몇 개의 시계를 팔까, 그렇게 시계를 팔면 직원들 월급은 어떻게 주나라는 의문에 이른다. 적어도 매장별로 한 달에 한 두 개 시계를 팔아서 매장 자체의 임대료, 월급 등을 다 충당할 수 있어야 하니, 롤렉스 시계 하나에 붙어 있는 프리미엄이 어느 정도인지 가히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여러 도시의 롤렉스 매장을 다니면서 대부분은 진열장에 있는 시계를 보기만 하고 말았으나, 세비야 매장에서 시계를 직접 차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이미 픽업해 갈 주인들이 정해져 있는 시계들이었으나 매니저가 시착을 해 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고전적인 인기모델인 데이트 저스트 청판. 9,300유로니 대략 1,350만 원 정도이다. 가장 인기모델은 잠수부용으로 제작된 서브 마리너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은 스틸은 숫제 시계가 없고, 대신 블루와 블랙 콤비네이션이 있어 시착해 보았다. 이 둘은 각각 13,700유로. 대략 1,800만 원. 이들 시계가 국내 중고거래에서는 각각 1,800만 원과 2,300만 원 정도에 거래된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서브마리너 스틸, GMT-마스터 2 펩시, 배트걸 또는 배트맨 시리즈가 나의 취향이다.


롤렉스를 통해 명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일반 소비냐 사치냐의 문제. 소비를 하면서 본인에게 소비의 대가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만족감을 준다면 사치는 아닐 수 있다. 물론 경제력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때가 전제된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는 수천만 원짜리 롤렉스보다 30만 원짜리 애플 워치가 더 효용성 측면에서나 심리적 만족감 차원에서 더 낫다고 하면 롤렉스를 가지지 않은 사람의 '신포도(sour grape)'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적어도 1,300여 만원을 주고 시계 하나를 사지는 않을 것 같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리고 명품은 결국 몸에 두르고 있는 물건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성품과 인격, 능력 등으로 빛을 발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그래. 명품은 그냥 물건일 뿐. 내가 명품이 될 수 있게 살아가자"라고 스스로 다짐해 보는 계기를 준 롤렉스 일화이다. 누군가에게는 롤렉스를 살 수 없는 사람의 스스로의 위로라고 생각될 지 모르지만, 결국 내가 명품이 아니면 무엇을 두르고 있어도 결국 그 사람이 명품이 될 수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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