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맞지 않는 옷에서 허우적대다가 벌크업
내 몸에 맞지 않는 큰 옷을 입고 허우적 대기
신입일 때의 일이다.
여전히 나는 아무것도 혼자서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는데도, 이상하리만치 같은 과, 같은 국에 있는 선배들은 물론 몇몇 과장들까지도 '이뻐해' 주셨다.
왜들 그랬는지는 여전히 지금도 의문이다. 입사한 지 1년도 채 안된 신입이 일을 해 봐야 얼마나 윗분들 마음에 들게 일을 했으랴. 아무래도 일 보다는 일 이외의 자세와 태도(attitude)가 뭔가 해보려 하는 의지가 있는 것처럼 비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자기 보고서를 쓸 때 참고자료나 통계자료를 찾아달라 부탁하면 흔쾌히 Yes맨을 외치고, 뭔가 궁금하면 이것저것 호기심을 해소하고자 물어보고 조언도 구하며, 회식이나 저녁 자리, 심지어 술자리도 있으면 마다하지 않고 따라갔다가 술 취한 선배들을 집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고 집에 가는 소위 '아랫사람으로서의 자세'를 높게 평가받은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다 보니 업무에 있어서도 이것저것 고민이 되거나 잘 모르면 조언도 구하고 처리하다 보니 어느새 평판이라는 것이 좋게 만들어져 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제대로 못하는 그저 신입사원일 뿐이었다. 그때의 나를 두고 나 스스로는 '선배들이 입으라고 준 옷은 내 몸에 맞지 않게 너무 컸고, 그 큰 옷을 입고 여전히 허우적 대던 모습'으로 평가한다.
허우적 대다 넘어지기 vs. 벌크업. 당신의 선택은?
그렇게 입사 초기에 몸에도 맞지 않게 큰 옷을 입고서는 바짓단을 바닥에 질질 끌고 소매는 이미 손 끝을 지나 손이라도 쓸라치면 소매를 한 껏 걷어야 하는 어색한 상황.
그렇게 진심인지 신입을 보는 격려였는지 모를 칭찬을 받아가며,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고 했던가. 그런 칭찬이 누적되고, 그런 칭찬을 해준 선배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좀 더 열심히 좀 더 많이 일하려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칭찬과 기대에 호응하면서 보냈던 시간들이 쌓이면서, 전적으로 내 주관적인 평가지만 그 큰 옷에 내 몸을 맞추려고 계속 내 몸을 벌크 업해 왔던 것 같다. 평일에는 한 시간 두 시간이라도 더 야근을 해서 해야 할 일을 마무리하려 했고, 과장 지시가 일주일 정도 걸릴 일이라면 사흘 정도에 초안을 만들어 보고하고, 피드백을 받아 정해진 일주일에 마무리하기도 했다. 또한 주말이 되면 일요일 오후는 으레 껏 출근을 하던 시기에 한두 시간이라도 먼저 나가서 자료를 읽고 일을 마무리하고, 그다음주 할 일 스케줄을 정리하기도 했다.
그렇게 내 몸을 벌크 업한 이후에는 크게만 느껴졌던 옷이 조금씩 내 몸에 맞는다고 착각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는 순간이 왔다.
내 몸에 맞게 옷을 줄여서 지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그냥 그렇게 큰 옷을 입고 계속 허우적댔다가 큰 옷을 뺏겼을 수도 있다. 그건 각자의 선택일 것이다.
선배로서 칭찬 릴레이
신입을 한참 지나 이제는 그 후배들에게 옷을 지어줘야 하는 위치에 있다.
누구에게 어떤 옷을 주면서 칭찬과 좋은 평판을 쌓아가게 해야 할지라의 문제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칭찬을 해 주고 싶다가도 같은 실수를 계속 반복하고, 내가 지시한 것을 어떻게 하면 될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없거나, 좀 더 다른 각도에서도 같은 사안을 보려는 노력이 없으면 이내 칭찬을 접거나 가끔은 싫은 소리를 하게 된다.
물론 잘하려 노력하는 직원에게는 무한 칭찬 릴레이를 안 하려 해도 하게 된다. 출장이라도 갔다가 멀리 보내야 하면 택시비를 손에 쥐어주려고 지갑을 열게 된다.
결과적으로 '자기의 복은 스스로 짓는 거다'라는 말에 답이 있는 것 같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자신이다.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각자 자기의 몫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생각을 하기에 꼰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