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스 바이 케이스
야근이 가장 가치있었던 사례
초임 때 첫 과에서 8개월 만에 옆 과와 업무가 조정되면서 옆 과로 옮겼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 있던 과에 C선배가 혼자 야근하면서 당시 초임인 내가 보기에 아주 중요한 보고서를 쓰고 있었다. 당연히 나는 일에 익숙해지고자 혼자 남아 자료를 보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던 C선배가 나를 부르더니 당시에 유행했던 보스턴 컨설팅의 SWOT 분석을 찾아보고, 연구개발 관련 업무를 담당하던 우리 국의 업무를 그 SWOT 분석 틀에 맞춰 초안을 만들어 보라는 부탁이었다. 나는 내 일을 멈추고 인터넷을 뒤져가며 SWOT분석 기법을 찾고, 그 틀 안에 하나하나 내용을 채워서 '납품'했다.
이미 6년 차 선임이었던 C선배의 눈에 1년 차인 내가 만든 자료가 맘에 들리 만무했지만, 그 내용을 조금 보완 수정해서 본인의 보고서에 추가했다. 그 후 완성된 보고서를 한 부 얻어 보면서 흐뭇해했던 적이 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맨바닥에 초안을 쓰는 것보다는 누군가가 초안을 써 주면 그 초안에 내 생각을 덧붙이는 것은 훨씬 쉽다. C선배도 혹시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그 일만은 아니지만 지금도 C선배와 아주 좋은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팀워크 vs 개인플레이
잠시 국제기구에서 근무했던 적이 있다. 그때 내가 몸 담고 있는 조직과 국제기구 업무의 차이가 확연하게 비교되었다. 우리 일은 대부분 혼자라기보다는 팀워크를 이루면서 과 전체가 하나의 조직처럼 일을 나누고, 각자 처리한 일을 다시 모아서 하나의 일로 완성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반면 국제기구는 각자 자기의 일을 하고, 그 일을 상사에게 리포팅할 뿐 직원들 간에는 서로의 일에 무심하다. 그래서 국제기구와 일할 때 상대방이 휴가라도 갈라치면,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인수인계해서 일이 계속 처리되게 하지만 국제기구에서는 그 담당자가 복귀할 때까지는 일이 스톱이다. 그래서 일 진행이 더디고 7~8월 휴가철에는 담당자와 연락하기도 어렵다.
우리나라, 내가 속한 조직에서의 일은 그렇게 팀워크가 요구되는 경우가 많다.
야근에 대한 단상
첫째, 야근은 안 할수록 좋다. 야근을 안 하겠다 다짐하면 일과 중에 일을 더 집중해서 하게 된다. 습관처럼 야근을 하게 되면 일과 중에 커피를 한잔이라도 더 마시게 되고, 다른 동료들과 시간을 더 보내는 경향이 있다. 어차피 야근을 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둘째, 개인적으로 약속이나 일이 있는데 상사와 동료들의 눈치 때문에 야근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굳이 MZ세대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일과 이외의 시간은 개인의 자유시간이며, 그 시간의 휴식은 보장되어야 한다.
셋째, 오늘의 주제와 맞닿아 있는데 같은 과에 선배들이나 동료들이 어쩔 수 없이 야근을 해야 하는 급한 일(이런 일이 일상이라 문제다)이 생겨서 야근을 한다면 적어도 나는 내 일이 없더라도 남아서 일을 끝낸 후에 함께 퇴근하며 동료의식을 다지는 것을 선호해 왔다. 각자 자신의 판단이지만, 그 선배와 동료들이 처리해야 할 일 중에는 내가 일정 부분 도움이 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것이다. 통계자료를 찾거나 보고서에 담을 참고자료를 검색해야 할 수도 있고, 메인 보고서를 선배가 쓰면 보도자료, 참고자료, 다른 과 직원들과의 연락, 하다못해 보고서에 오탈자를 잡기 위해 교정을 봐주면서 그 보고서 내용을 섭렵할 수 있는 기회도 있다.
물론 개인의 선택일 수 있지만, 적어도 조직생활을 잘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심이 있다면 내 시간을 투자해서 선배들과 상사의 마음을 얻는 수확을 노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꼰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