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부르크 왕궁과 오페라 하우스 사이
비엔나에 도착해서 에어비엔비를 구하고 대충 짐을 풀고선 주말에는 핸드폰 개통 등 소위 정착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시내 워킹 투어를 나갔다.
누구나 그랬을 테지만, 슈테판 성당 앞에서부터 시작해서 케른트너 거리, 오페라 하우스를 거쳐 호프부르크 왕궁, 빈 미술사 및 자연사 박물관을 천천히 소요했다.
그 길에서 만난 것이 파릇파릇한 신록들이 연한 초록색 빛을 뿜어내는 왕궁정원에서 걸음을 잠시 멈췄다.
왕궁 정원이 나의 걸음을 멈춘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다. 그냥 사람도 아니고 햇살 좋은 잔디밭 위에 심지어 비키니를 입고 누워서 낮잠을 즐기거나 담소를 나누거나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었다.
공공장소에서 비키니라니. 서울에서 온 지 며칠 안되던 나로서는 나름 문화적 충격이었다. 주로 해 나는 곳보다는 그늘을 주로 찾는 우리의 관성도 그렇지만, 다들 훌러덩 벗고서 선탠을 즐기는 모습이란. 한 마디로 낯설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비엔나 시내에는 저렇게 공원 잔디밭에 누워 햇살을 즐기는 곳이 여러 곳 있었다. 아니 내가 모르는 곳까지 라면 수없이 많을 수 있다.
3구에 있는 슈타트 파크, 도나우 강변.. 어느 곳이나 해가 쨍쨍 나는 날이면 자외선 아랑곳 않고 온몸으로 햇살을 받아들인다.
낯선 풍경이라 기억에 생생하다.
그리고 왕궁 정원 여기 저리를 거닐었다. 혹여 얼굴이 탈세라 그늘을 찾아다니면서 말이다.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였던 프란츠 요제프 1세의 동상이다.
뭔가 땅을 내려다보며 있는 폼이 깊은 고뇌에 빠진 것 같다. 한 때 유럽을 호령했던 오스트리아 제국의 경영이 주는 무게감을 느껴서일까.
또 한편에는 모차르트 기념비가 보인다. 꽃이 만개한 시기에는 동사 앞 높은 음자리표로 된 꽃들이 신선하다. 참고로 모차르트는 역병에 걸려 죽은 관계로 무덤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중앙 묘지에도 모차르트는 기념비만 있을 뿐 묘지가 없다. 묘지가 없는 대신 여기 저기에 자신의 기념비가 남아 있는 것을 본다면 모차르트는 어떤 생각을 할까.
그리고는 깔끔하게 가드닝 된 정원의 꽃들을 보면서 천천히 걷다 보면, 시간의 흐름을 잠시 잊고 그 꽃과 색감의 조화 속으로 빠져들 수 있는 여유가 절로 생긴다.
길지 않은 시간. 잠깐 짬을 내서 왕궁 정원을 들러보길 추천한다. 특히 맑은 여름날 꽃이 만개하는 시기에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