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바키아.
어릴 적 뉴스 내용도 잘 이해 못 하던 시절에 체코슬로바키아로 기억되던 곳이다. 어느 시점에는 과거 공산주의 정치체제로 묶여 있던 이 나라가 1993년 1월 1일에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각각 독립했다. 그중 하나가 슬로바키아다.
동유럽에 아주 조그만 나라지만, 우리나라 기아차 유럽 공장이 위치해 있고 비엔나에서는 차로 50분 거리에 있다. 그래서인지 비엔나 위성도시처럼 비엔나에 거주하면서 슬로바키아에 직장을 가진 사람, 아니면 반대로 슬로바키아에 거주하지만 비엔나를 상대로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이 많다.
슬로바키아의 수도는 브라티슬라바인데, 유럽 몇 개국을 다녀왔다는 자랑을 주변에 하고 싶다면 비엔나를 들릴 때 한 번은 들러보기를 추천한다. 기왕이면 중간에 동유럽 최대 아울렛인 판도르프(Pandorf)에 들러 쇼핑도 함께 즐겨도 좋다.
그런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로 당일 여행을 떠난다.
비엔나에서 브라티슬라바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비엔나 중앙역 근처에서 플릭스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저렴(8유로) 편하지만, 중앙역(Hauftbahnhof)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가는 것도 나름의 멋이 있다. 그 옛날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을 설악산으로 가면서 탔던 통일호 기차를 떠올리면서 말이다.
판도르프에 들러 쇼핑을 하거나, 브라티슬라바만 가기엔 시간이 아까워 근처 노이지들러제(Neusidler See)에 들릴 계획이면 당연히 렌트를 해서 가는 것이 좋다.
2019년. 코로나 전이라 기차 안에 서울에서 단체 관광을 온 중년 여성분들 한 무리가 같이 탔는데,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껴야 할 정도로 왁자지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분들의 옷은 등산복. 유럽 여행을 와서 트레킹을 할 것도 아닌데 등산복은 참 어색하다.
50여분을 달리면 브라티슬라바 중앙역에 도착한다. 한 나라 수도의 중앙역인데 우리나라 완행열차 중간 정착역처럼 작으면서도 사람들로 붐빈다. 다들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것이리라.
세밀한 디테일은 다르지만 동유럽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이다.
그렇게 역에서 걸어서 15분 여를 걸으면 브라티슬라바 한가운데 건물에 다다를 수 있는데, 이 건물(아마 시청사로 쓰이는 건물이 아닐까 싶다)이나 그 옆 광장에서 브라티슬라바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중세 유럽 어느 도시든 중앙 광장과 시청사, 성당이 모여 있는 곳이 그 도시의 가장 중심이다.
브라티슬라바에는 내가 못 찾은 것일 수도 있지만 마이리얼트립이나 유로자전거나라에서 제공하는 가이드 투어가 없었다. 글을 쓰는 지금 확인해도 차량까지 제공하는 당일 투어가 25만 원, 50만 원짜리가 있을 뿐 보통 3~5만 원 정도 하는 3시간 여 동안의 워킹투어는 없다.
다만 영어 듣기에 무리가 없는 분이라면 브라티슬라바에서 제공하는 영어 가이드 투어가 있으니 관심이 있으면 미리 검색해 보고 가면 이용할 수 있다. 난 당시 모르고 갔다가 우연히 가이트 투어팀을 만났고, 그 옆을 그냥 졸졸 따라다니면서 역사와 문화에 대해 귀동냥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무료다. 유로 가이드 투어는 투어 참가자들만 들을 수 있게 이어폰을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시간을 좀 거슬러 가기는 하지만, 브라티슬라바역에서 시내로 걸어가는 동안 지나쳤던 대통령궁이다. 그라살코비흐궁전이라고 한다. 바로크 양식으로 프랑스식 정원이 딸려 있다고 한다. 잠시 기념사진 한 장으로 만족한다.
다시 브라티슬라바 시내로 돌아와서 중앙광장, 흘라브네 광에서 한 방향으로 찍은 모습이다. 관광객용 붉은색 코끼리(?) 열차도 있다.
미카엘문은 구 시가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라고 한다. 1,300년경 마을을 둘러싸고 있던 중세 성벽과 함께 건축된 4개의 문 중 현재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문이다. 마치 우리나라 조선시대 4대 문 중 하나와 같이 성안으로 드나드는 사람들을 통제하던 곳이었을 것이다.
잘 보이진 않지만 미카엘 문의 유래는 첨탑 끝에 있는 미카엘 대천사상 때문이 아닐까 싶다. 6개 층 51미터 높이의 꼭대기에는 대천사 미카엘의 조각상이 잘 보면 보인다. 중세 그림의 많은 모티프 중 하나가 악마를 발로 밟고 칼을 높이 쳐든 미카엘 대천사라고 하고, 프랑스 몽쉘미셸 성 꼭대기에도 미카엘 대천사상이 있다. 물론 눈으로 볼 수 없고 홍보 영상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
미카엘 문 아래에는 재미있는 원판이 하나 있다. 가운데에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방향표지가 있고 그 바깥을 크게 둘러싸고 있는 금색 원이 하나 더 있다. 자세히 보면 세계 주요 도시의 방향과 거리가 새겨져 있다. 서울은 이 동판을 기점으로 해서 8,138킬로 떨어져 있다고 한다. 저 동그란 동판에 다른 도시들과 어깨를 견줄 만큼 서울은 이제 국제도시가 된 것 같다.
그 옛날 글을 읽지 못하는 고객들을 위해 간판 모양으로 해산물을 파는 레스토랑임을 표시한 것일까? 잘츠부르크 게트라이데 거리, 독일 로텐부르크의 중심 거리에 있는 간판들을 연상시킨다.
미카엘 문을 걸어 들어와 구 시가지를 거닐다 찍은 미카엘 문과 거리 모습이다. 작아도 유럽은 유럽이구나 싶다. 유럽 중세도시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요소, 건축양식, 벽과 지붕 색깔, 사람. 그 어느 하나 유럽임을 부정하지 않는 것 같다.
비엔나 19구를 주된 거주지로 살았던 베토벤이 브라티슬라바에서 잠시 머물렀나 보다. 루드비히 본 베토벤이라는 서명이 눈에 띈다. 비엔나 시내 그리헨 바이즐 이라는 오래된 식당 벽면에 있는 서명과 비슷해 보인다.
동유럽이니만치 음식 가격도 나름 착하다. 서유럽 물가의 약 70%가 비엔나 물가, 그 비엔나 물가의 약 70%가 동유럽 여러 나라 물가라고 하는 얘길 들은 적이 있는데, 서유럽 기준으로 약 절반 수준이니 가게를 찾아 로컬 음식을 즐기기에 참 부담이 덜한 것 같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여기저기 구 시가를 소요하다 보면, 어느새 나는 유러피언 같다. 몸도 마음도 아시안, 한국인이지만 왠지 하루 정도는 착각에 빠져도 좋을 듯하다.
브라티슬라바 오페라 하우스다. 비엔나 오페라 하우스에 비하면 앙증맞은 수준이다.
이렇게 거닐다 보면 어느새 추밀이라는 이름의 작업하는 사람(Man at Work), 브라티슬라바에서 가장 유명한 동상이자 관광 명물이다. 지하에서 일하다 땅 위에 팔을 짚고 턱을 괴며 잠시 수고 있는 작업 인부의 모습. 그 얼굴에는 힘들지만 행복해하는 옅은 미소가 보인다.
그의 머리는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 때문에 워낙 사람들이 많이 만져서 반질반질하다.
브라티슬라바 당일여행 1탄은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