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구 Mayer am PerrrPlatz
비엔나 19구에는 칼렌베르크 언덕이 있고, 그 언덕에는 포도밭이 열을 지어 있다. 포도가 재배되는 만큼이나 19구에는 비엔나 전통음식과 호이리게(그 해에 수확한 포도로 담근 포도주, 숙성이 덜되어 맛이 가볍다)를 대접하는 가게들이 많다.
다양하게 많이 다녀보면 좋겠지만 짧은 여정으로 비엔나를 다녀가는 여행객들이라면 그럴 시간 여유가 없다. 그런 여행객들 중에 혹시 호이리게를 즐기겠다는 일정을 잡았다면 나름 의미 있고 스토리텔링이 되는 호이리게를 고르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여행객들에게 꼭 맞는 호이리게가 있다. 바로 베토벤이 살았던 집을 식당으로 운영하고 있는 가게, Mayer am Pearrplatz이다. 이름 그대로 해석하면 Pearr 광장에 있는 Mayer 식당이다.
베토벤은 비엔나 19구에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살았기에 딱이 이 집이 베토벤이 살았던 집이라고 할 수없다. 브라티슬라바에 가도 베토벤 하우스가 있고 린츠에 가도 베토벤이 머물렀던 집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호이리게는 베토벤이 살았던 집들 중 하나에서 연 호이리게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다.
Mayer am PearrPlatz
내가 이 가게를 갔을 때가 4월 초라 아직 제대로 된 유럽의 맑은 날씨와 하늘이 아닌, 어둡고 약간은 침울하기까지 한 잿빛 하늘 가운데로 간간히 파란 하늘이 보이던 때다. 곧 저 구름이 걷히고 새파란 하늘과 밝은 빛이 위용을 자랑할 유럽의 여름이 될 것이다.
가게 입구에선 진심으로 환영한다(Herzlich Willkommen)이 적힌 간판이 보인다. 참고로 Willkommen = Welcome이니 글자로만 봐도 라틴어 어원 언어들은 서로 배우기가 쉬워 보인다.
당시 이 집은 나름 부잣집이었나 보다. 디귿자로 둘러싼 건물 가운데 정원이 있을 정도로 널따란 집이니 말이다. 그 가운데 정원은 식당 야외 테이블로 가득 차 있다. 이 가게의 상징색은 짙은 초록색인가 보다. 아마 19구가 산과 언덕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그런 것 아닌가 싶다.
이제 가게 안으로 들어가 보자.
가게 안은 알라 카르테(Al-a Carte)로 주문해도 되고, 여느 호이리게와 같이 뷔페식으로 차려진 음식을 사서 자기 테이블로 돌아오면 된다.
와인병들이 즐비한데, 이 가게의 브랜드를 붙여 파는 와인을 담는 병인 듯 보인다.
뷔페 진열장(?)에 가서 돼지고기 햄 큰 덩어리 하나, 수육 한 컷 주문하고 감자와 야채를 달래서 먹는다. 맥주 한 잔에 저 정도면 대략 20유로 내외로 나오니 그다지 비싼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오히려 베토벤의 숨결이 배어 있는 곳에서 즐기는 한 끼 식사. 그 정신적인 만족감이 주는 반대급부가 더 크다.
아주 오래된 친구가 제네바에서 비엔나로 가족여행을 왔는데, 그 친구 부인이 음악 교사라 베토벤을 엄청 좋아해서 하루 내내 19구에 베토벤의 발자취를 따라다니면서 대단히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낸 기억이 있다. 베토벤을 흠모하는, 어릴 적 운영, 영웅, 합창 교향곡 정도 들어본 수준의 그 누군가에게는 20유로와 바꿀 기억이라면 흔쾌히 바꾸지 않을까 싶다.
디저트로 비엔나커피나 티도 즐겨보면 좋다. 이 가게의 특징적인 커피 메뉴가 하나 있다.
베토벤이 가장 좋아했던 커피(Beethoven's Favourite Coffee)이다. 설명을 읽어보면 플로렌틴이라는 조그만 케이크 조각과 함께 나오는, 휘핑크림과 시나몬이 얹힌, 조금 강한 모카커피다.
커피 이름이 참 재미있다.
그 외에도 가게 안 스테인드 글라스도 볼만하다. 요한 슈트라우스, 주페, 오펜바하 같은 유명 예술가들의 얼굴이 스테인드 글라스에 담겨 있으니 이런 작은 디테일들도 하나하나가 스토리로 살아난다.
그렇게 베토벤 생가 호이리게 탐방은 끝이 나지만, 그 기억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살아 있으니 그 정도 지불할 가치는 있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