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3박 사일의 돌로미티 대장정(?)을 마무리할 에피소드이다.
계획했던 일정 중 가장 메인이었던 세체다. 겨울 스키시즌 준비로 곤돌라 운행을 중지해서 가보지 못했던 곳을 아쉬움과 함께 남기고, 마지막 날 일정으로 알페 디 시우시(Alpe di Siusi)로 올라갔다.
여기는 다행히 곤돌라가 멈추지 않은 곳 중 하나였다.
늦가을 풍경보다는 일단 '안구정화'를 위해 TvN '텐트 밖은 유럽'편에서 소개된 진정한 7월의 알페 디 시우시를 먼저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텐트 밖은 유럽'에서 방영된 알페 디 시우시는 정말로 여유로움과 야생화의 색감이 온 화면을 화사함으로 물들이는 곳이라 하면 정확한 표현일까 싶다.
아래 화사한 색감의 사진들은 TvN에서 방영된 '진정한' 알페 디 시우시의 본연의 모습이다.
야생화가 만발한 드 넓은 평원으로 가 본다.
축구장 8천 개 정도 규모의 초원에 만개한 야생화 밭. 그냥 넓다. 그리고 초록의 싱그러움이 우리의 눈과 마음을 정화해 주고 모든 삶을 잊고 자연 속으로 오롯이 침잠하게 만드는 능력자.
이런 표현들이 어울릴까 싶다.
그 속에서 트레킹을 하는 기분이란. 그것이 돌로미티가 가진 최고의 마력, 사람들을 끊임없이 찾아오게 만드는 매력 아닐까 한다.
초록의 초원과 멀리 높다란 바위산, 그리고 걷다 보면 보이는 야생화 천국. 곽선영의 멘트대로 어휘력이 부족할 따름이다.
그렇다 오스트리아 티롤도, 스위스 알프스도, 이탈리아 돌로미티도 다 그 속에 어우러져 한편을 지키고 있는 산장에서 자는 것이 제맛일 것이다.
물론 난 남들이 보면 아주 치밀하고 계획적이라고 하지만 정작 난 아주 미리미리 계획하지는 않는 게으름 병이 있어 산장 예약을 못했기도 했고, 당시 내가 갔을 때는 산장들이 다 운영을 하지 않던 시기였다.
알페 디 시우시에서 서쪽으로 보이는 산. 슐레른 산이다. 방송에서는 저 산 근처에 묵었는지 배경에 슐레른 산이 자주 보인다.
그리고 중간중간 쉬어갈 수 있는 '말가'라는 곳이 있다. 말 그대로 음료와 간단한 요기를 하면서 쉴 수 있는 공간이다. 말가라는 이름을 들어본 것도 방송을 통해서니 나의 여행 준비도 허당이었던가 싶다.
자 여기까지가 알페 디 시우시가 본연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모습이라면, 지금부터는 10월 중순 여름 시즌 막바지. 아니다 막바지라기보다는 이미 끝나고 겨울을 준비하는 그 가운데 모습이다.
색감부터 다르다. 물론 이 날은 날도 흐려 예전 트레치메나 라가주오이, 파소 가르데나 같은 느낌이 확연히 덜하다. 그래도 그 길을 세 시간가량 걸었다. 눈에 보이는 모습은 늦가을이나 마치 여름 한가운데 야생화 들판을 합성해 뒀다는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아침을 건너뛰었던 관계로 곤돌라를 내리는 지점에 있던 카페에 잠깐 들러 커피 한잔의 여유를 가져본다. 손수 뜬 같은 느낌의 커튼이 시골스럽다.
그리고 그 산장 옆에 있는 알페 디 시우시의 전경을 눈여겨본다. 그리고는 그날의 동선을 대략 짠다.
산장 앞 난간에서 보이는 모습이다. 아마 셀라(Sella) 산군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알페 디 시우시 기준으로 남동쪽 방향으로 보이는 바위 산군이다. 삼각형의 뾰족하게 생긴 바위군의 형세가 아주 멋지다.
알페 디 시우시를 가려면 오르티세이에서 곤돌라를 타고 산장에 내렸다가 다시 리프트를 타고 조금 내려가야 한다. 이 날은 이 쪽 리프트는 멈춰 있어 걸어 내려갔다.
다시 올라올 일이 살짝 걱정됐으나 이미 트레킹으로 '단련'된 몸이라 가뿐하리라 믿었다. 마지막에 그 믿음이 살짝 배신당한 느낌이 아직 기억에 남아 있다.
멀리 슐레른 산이 보인다. 그리고 호텔인지 산장인지. 애초에 여기서 머물 생각이 없어 알아보지도 않았으나 호텔일 것이다. '텐트 밖은 유럽'팀이 머물렀을 법한 위치 근처다.
내려와서도 셀라 산군을 자꾸만 돌아보게 된다. 그만큼 드넓은 평원 한쪽에 우뚝 서 있는 위풍당당한 바위 산군이라 그런가 보다. 사진빨이 잘 받는다.
이런 낙엽진 오솔길도 걷는다. 양재천 메타세쿼이아 길을 걷는 느낌인데, 양재천 도로가 도회적이라면 여기는 그 자체로 시골스럽다. 아늑하고 정겹고, 나를 오롯이 그대로 받아주고 인정해 주는 느낌이다.
Seiser Alm에 설치된 하트 모양의 사진대인데, 슐레른 산을 넣을 수 있게 위치가 잡혀있다. 내 얼굴은 차마 넣을 수 없었다. Seiser Alm이 '텐트 밖은 유럽'팀이 묵었던 곳인 것 같다.
나의 예리한 관찰력이 그 근거를 찾았다. 사진대를 바라보며 약간 왼쪽에서 찍으면 슐레른 산의 머리(?)를 넣어 찍을 수 있으니.
그렇게 슐레른 산을 향해 계속 걸었다. 그 사진이 그 사진이지만 이 각도 저 각도에서 본 다른 모습의 풍경들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정면이 아니라 서쪽에서 본 셀라 산군. 그 모습이 또 다르다.
두어 시간 걸었으니 당 보충시간.
커피는 이미 한 잔 마셨으니 이번엔 달달이로. 단 기운이 철철 넘치는 아이스크림이 담긴 아포가토 한잔. 그 위에 달달이 비스켓이 얹어진.
몸도 쉬고 살짝 찬 기운으로 식은 체온도 올릴 겸 따뜻한 카페에서 한참 머물렀다. 멀리 셀라 산군을 보며 따뜻한 카페에서 마시는 아이스크림 커피.
기억에 남을 만한 모멘트다.
한참을 쉬고는 다시 걷는다. 저게 다 야생화 군락 지였을 텐데 하고 상상하면서.
걷다 보니 이번엔 셀라 산군을 담을 수 있는 하트 사진대가 있어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한 장.
그렇게 세 시간여를 걷고 다시 오르티세이로 내려가는 산장.
잠깐 쉬면서 또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또 언제 다시 오랴하는 마음에서 인가 싶다.
겨울엔 저런 모습으로 스키를 타나보다. 스키와 바이크 렌탈샵이 있다.
오르티세이로 내려와서 마을을 잠깐 거닐어 본다.
여긴 식사, 숙박을 위한 곳이지 그 자체로 여행지라고는 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냥 돌로미티 여행의 한 거점 정도라고나 할까.
그렇게 3박 4일의 돌로미티 여행은 끝.
지금 돌로미티를 다녀온 지 3년 반이나 지난 시점에 올여름에 돌로미티 트레킹을 혼자 가서 진정한 돌로미티를 느껴보겠다고 작심했으나, 여러 어려운 여건 때문에 물리적으로 올해는 힘들 것 같다.
7월이 되면 내년 여름 마일리지 항공권을 광클해서 무조건 다시 가 보리라. 기다려라 돌로미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