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드레스덴처럼 옛 동독 치하의 도시를 가면 특이한 신호등을 볼 수 있다.
초록색 신호에는 중절모를 쓴 남자가 걸어가는 옆모습을, 빨간색 신호에는 팔을 옆으로 벌리고 서 있다.
오스트리아에 2015년부터 설치된 동성애자 신호등에 이어 나의 눈길을 끄는 신호등이었다.
이 신호등에 등장하는 중절모 쓴 남성의 이름은 암펠만이다. 독일어로 신호등을 의미하는 Ampel과 남자를 뜻하는 Mann의 합성어로 우리말로 굳이 번역하면 신호등 남자이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는 암펠만을 주제로 굿즈를 파는 가게도 있으니 그 유명세는 가히 짐작할 만하다.
암펠만이 세상에 등장한 데는 배경이 있다.
독일이 통일되기 전 베를린이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되어 있을 때 동독 지역에는 보행자를 위한 신호등이 없어 교통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났다고 한다. 동독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61년 교통 심리학자 칼 페글라우 박사에게 신호등 디자인을 의뢰한다.
칼 페글라우 박사는 보행자, 특히 주의력이 낮은 어린아이와 시력이 나쁜 노인들을 배려하여 아이들에게는 아빠나 주변에서 보는 익숙한 사람의 모습을 넣고 , 노인들을 위해서는 신호등에서 사람 모양이 차지하는 비율을 최대한 높여 신호등 색이 잘 보이도록 디자인했다. 그 결과 암펠만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뚱뚱한 배불뚝이 아저씨의 모습으로 태어났다. 그런 암펠만 덕분에 동베를린의 교통사고가 40%나 줄었다고 한다.
독일 통일 이후 암펠만은 철거 위기에 처한 적도 있었으나 시민들의 노력으로 철거를 막아 이제는 독일 암펠만이 명실상부한 독일 문화의 아이콘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그래서 암펠만은 통일 독일과 베를린의 상징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특히 통일 독일의 소통과 화합의 상징으로 2007년 베를린 G8 정상회담 때 마스코트로 사용되기도 했다.
독일의 분단과 통일의 역사와 함께한 암펠만. 베를린이나 드레스덴에 가면 그 의미를 기억했다가 암펠만을 영접해 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