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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엔나 보물찾기 Aug 15. 2022

유럽#9: 저가항공, 잃어버린 짐 클레임하기

화물로 부친 짐이 없어져 Lost 처리되면 항공사에 비용을 청구하자

나는 여행을 다니면 그 나라의 대표 맥주 전시장이 있으면 빼놓지 않고 들리는 걸 좋아한다. 미국에 있을 때는 콜로라도주 덴버에 있어서 Coors 맥주 공장이 근교에 있어 혹여나 손님이라도 오면 맥주 공장 투어는 빼놓지 않았다. 그 후에 유럽에 와서는 아일랜드 더블린에 있는 기네스 전시장, 잘츠부르크에 있는 스티글 전시장,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하이네켄 전시장을 다녔다. 비엔나에도 예거(Egger) 맥주공장이 있었는데, 코로나로 안타깝게도 가지를 못했다. 예전에 KBS 여행 예능인 배틀 트립에서 레드벨벳 슬기와 웬디가 크렘스 바하우 지역을 간 후 예거 맥주공장을 들린 적도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갔을 때의 일이다. 주말 동안의 짧은 여행이라 또 부지런히 다녔다. 홍등가도 둘러보고 야경을 즐기려고 보트 투어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하이네켄 공장 투어를 혼자서 갔다. 돌다 보니 특별해 보이는 기념품 마케팅에 눈이 가서 하나 샀다. 하이네켄 맥주 라벨에 내 이름을 새겨서 기념품으로 파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하이네켄이라고 생각하니 살짝 마음이 설렌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다. 내 마음은 나만을 위한 세상에 단 한병인 하이네켄이라 내심 병뚜껑을 따지 않은 그대로 보관하고 싶었다. 그래서 비엔나로 돌아오는 길에 백팩에 맥주를 넣고 탈 수는 없는 노릇이니, 과감하게 백팩을 짐을 부쳤다. 그런데 비엔나에 내려서 한 시간 여를 기다려도 내 백팩은 나오지 않는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고 Baggage claim으로 가서 가방이 안 나왔다고 얘기를 했더니, 이미 내가 타고 왔던 비행기에서 나와야 할 짐은 다 나왔으니 신고서를 작성하고 집으로 가서 기다리면 나중에 집으로 가져다준다 해서 기꺼이 집으로 왔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 여러 번 전화를 했으나 가방은 못 찾았다는 얘기만 반복할 뿐이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저가항공 특성상 내가 탔던 비행기는 암스테르담을 출발해서 비엔나에 들렀다가 다시 밀라노로 가는 비행기라 아마 밀라노 어디쯤에 가 있을 수 있다, 아마 백팩이라 중간에 짐 옮기는 사람들이 슬쩍했을 수도 있다는 이유가 내가 들은 설명의 전부였다. 그로부터 45일이 지난 후 난 짐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비용을 청구해서 275유로를 받았다.


유럽에서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돈을 받는 데는 무한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내가 거의 짐을 잃어버린 날로부터 석 달 여가 지나서 최종 275유로의 비용을 받은 과정을 다시 복기해 보았다.


1. Baggage claim에 가서 분실신고부터 하자.

대개 비행기 안에서 분실되거나 한 짐을 신고하려면 baggage claim 구역 한편에 항공사별로, 아니면 여러 항공사가 모여서 하나의 부스를 운영하면서 짐 트래킹과 분실신고를 받는다. 짐이 없어졌다면 절대 먼저 나가면 안 된다. 다시 돌아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출구로 나가기 전에 반드시 분실신고를 해야 한다. 그러면 종이와 이메일로 Reference number가 온다. 그 번호를 잘 메모해 둬야 나중에 온라인에서 비용 청구할 때 사용할 수 있다.

이때 중요한 팁. 잃어버린 가방 안에 든 물건들을 최대한 상세하고 꼼꼼하게 신고서에 적어두면 좋다. 나중에 보상 청구할 때 참고가 되기 때문이다. (항공사에서 이 최초 리스트를 고려하는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2. 이지젯(Easyjet) 트래킹 사이트에서 주기적으로 짐을 검색해 보자.


https://www.easyjet.com/en/flight-tracker


3. 45일을 기다리자.

아마 항공사마다 다르겠지만, 이지젯의 경우에는 delayed된 짐이 lost가 되기 위해서는 분실 기간이 45일이 되어야 보상을 청구할 자격이 생긴다. 그 이전에는 여전히 배송되지 못하고 지연된 delayed된 짐일 뿐이다.


4. 온라인으로 보상청구를 하자.

45일이 지나면 보상청구 권한이 생긴다.(You'll be eligible for compensation) 중요한 것은 얼마나 청구할 수 있느냐이다. 고객센터 안내문에도 쓰여있지만 보상 금액은 가방 안에 들어있던 물건과 구매한 것을 증명하는 영수증에 따라 다르다. 나의 경우에는 백팩, 에어팟, 겉옷, 속옷, 문제의 하이네켄 맥주 등이 있어서 일단 최대한으로 청구했다. 

인터넷에서 서치를 해 본 결과, 항공사에서는 내가 가방 속에 있었다고 신고(declare)한 물품들은 기본적으로 중고품으로 간주해서 내가 가액을 적어내더라도 일정 퍼센트 이상 감가해서 보상금액을 책정하고, 영수증이 있는 경우에는 영수증 금액대로 보상해 준다고 한다. 아마 면세점 같은 데서 물건을 살 경우에는 보통 영수증을 가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를 고려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나머지 물건들은 영수증을 보관하고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에 증빙을 못하면 자기네 나름의 규정으로 보상가를 결정한다고 한다. 

이때 보상 아이템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애초에 가방에 무엇이 들었었는지를 가장 잘 기억할 수 있는 시점의 분실 신고 때 제출했던 물건들을 기준으로 하지 않을까 싶다. 항공사도 기부천사가 아닌 다음에야 최대한 보상금액을 줄이려는 유인이 있기 때문이다. 


보상을 청구하는 사이트에서는 물건의 아주 디테일한 부분, 예를 들면 브랜드, 구매시기, 가격 등을 다 적도록 돼 있는데 정확할수록 좋다. 그래도 영수증이 있으면 최선이다. 나의 경우에는 가져간 바지 두 벌과 에어팟은 영수증을 보관하고 있었어서 최종 보상금액을 보니 거의 다 반영이 된 듯 보였다.


5. 온라인 보상청구가 끝났으면 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자.

보상청구를 마치면 또 한 달 여가 지날 때쯤 항공사에서 연락이 온다. 이때 보상금액을 제시하는데, 그 금액을 받을 거냐 말거냐를 선택하는 옵션을 준다. 확실치는 않지만 아마 보상 금액을 안 받으면 소송을 하라고 하지 않을까 짐작된다. 더 이상은 항공사도 방법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내 경우는 백팩, 에어팟, 옷가지 등등해서 275유로 정도면 나름 괜찮은 액수라 바로 수용하고는 보내준 양식을 기재해서 보냈다. 또 그 후로 한 달이 걸려 결국 통장에는 이지젯 환불 275유로가 찍히면서 가방 분실 사건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얻은 교훈은, 첫째 물욕을 버리자. 둘째, 유럽에서는 인내심을 가지고 느림의 미학에 빨리 적응하자. 맥주는 그냥 따서 마셨으면 백팩을 잃어버릴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유럽은 느림의 미학으로도 전체 사회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굴러간다. 모두가 느리면 그 자체로 괜찮다. 우리가 너무 빨리빨리에 젖어사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러지 않아도 사회는 다 그대로 스스로 살아 움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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