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엔나 보물찾기 Oct 12. 2022

옛날 유럽 아이들도 오징어 게임을 했을까?

브뤼겔의 '아이들의 놀이'에서 찾아보는, 어릴 적 동심을 자극하는 놀이


원래 어릴 적부터 미술이나 음악 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특히, 초등학교 때 미술시간은 보통 두 시간 연달아 있었는데, 그 시간은 어린 마음에 '고역'이었다. 아무리 정성을 들으려 해도 결과물은 스스로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던 나에게 비엔나와 유럽에서의 여유는 '유독 미술을 싫어하던' 나에게 미술을 대하는 태도를 다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클림트의 '키스'가 있는 벨베데레도, 뒤러의 '토끼'가 있는 알베르티나도 좋지만 비엔나 미술관 중에서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을 가장 좋아한다. 처음 빈 미술사 박물관을 갔을 때는 오디오 가이드(한글도 제공된다)에 의존하며 전체를 훑듯이 봤는데, 두 번 세 번 가면서부터는 점점 마음에 드는 그림을 오래(?) 감상하는 모드로 바뀌어 갔다. 그러던 중 브뤼겔의 그림 하나에 눈이 갔다. 브뤼겔의 대표작 '바벨탑'이 아닌 '아이들의 놀이'(Kinderspiele, Children's Games)라는 그림이다.


브뤼겔(브뤼허라고도 한다)은 한 마디로 정의하면 '네덜란드의 김홍도'다. 르네상스 당시 유럽에서는 왕이나 귀족, 돈 많은 상인 후원가들의 그림을 주로 그리던 것을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 농민들의 삶을 담은 풍속화를 많이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  


'아이들의 놀이'는 1560년에 그린 작품으로 한 작은 마을의 광장을 배경으로 하고, 230명이 넘는 아이들이 83개가 넘는 놀이를 하는 모습을 캔버스에 담았다.(Over 230 children are occupied with playing 83 different games) 마치 유럽판 게임 백과사전 같이 느껴진다. 이 그림은 나를 한 시간 넘게 잡고 서서 '옛날 유럽 아이들은 이렇게 놀았단다'하며 그 옛날 얘기를 들려주는 할머니의 목소리 같이 느껴졌다. 그 옛날 동양이나 서양, 아니다 굳이 옛날이라고도 할 것 없이 내가 어릴 적 놀던 놀이들을 보며 동심 한가득했던 그때의 놀이와 같이 놀던 친구들, 같이 놀던 동네를 떠올리게 만드는 묘한 마력을 가진 그림이다. 비엔나에 가면 이 그림을 보면서 내가 어릴 적 놀던 놀이들을 찾아보는 재미를 가져보면 여행이 한층 더 풍성해질 것 같다.


이 그림이 나를 한 시간 동안 잡아둔 것은 그 세부 디테일이다. 그림 속의 아이들이 무얼 하며 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연신 아이폰 카메라로 확대하며 사진을 찍게 했다.


내가 해 본 놀이: 굴렁쇠 굴리기, 말뚝 박기, 팽이 치기, 막대 균형 잡기, 철봉 매달리기, 등 타 넘기, 눈 가리고 잡기 놀이, 장대로 걷기


그림 가운데 아래에는 굴렁쇠를 굴리고 있는 두 아이가 있다. 어릴 적 시골 외갓집에 갔을 때 기억이다. 고무가 없는 자전거 바퀴에 긴 막대(끝 부분이 바퀴에 걸리게 만들었다)를 대고 빠르게 뛰어가면 바퀴가 굴러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놀이다. 이력이 붙으면 요리조리 방향을 바꿔가며 바퀴를 굴릴 수 있다. 아들이 커서 여행으로 낙안읍성에 간 적이 있는데, 한 켠에서 제기와 굴렁쇠를 발견하고는 어린 아들에게 마치 뽐내듯이 굴렁쇠 '신공'을 보여줬었다.


팽이치기는 기본이다. 아마 아들은 팽이보다는 메탈 베이블레이드 팽이를 먼 훗날 기억하겠지만, 나의 동심에는 끝에 구슬이 박힌 팽이, 팽이를 치던 줄 달린 막대, 그리고 팽이가 계속 돌도록 찰싹찰싹 때리는 기술을 연마하던 어릴 적 기억과 친구, 동네가 있다.


말뚝박기는 어느 예능에서도 한참 유행했던 놀이다. 워낙 유명한 놀이라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긴 막대를 검지나 중지 끝에 올려놓고 균형을 잡는 놀이도 내 기억에 있다. 우산, 교실의 밀걸레 등 긴 막대면 무엇이나 손가락 끝에 올리고 놀았다. 술래의 등 타 넘기, 긴 장대 위에 발을 올리고 성큼성큼 걷던 놀이도 기억에 있다. 그리고 철봉에 매달려 누가 오래 버티나, 철봉에 매달려 발로 친구 떨어뜨리기. 그 모든 놀이들이 그때의 장면들과 함께 스크린 샷처럼 기억에서 살아난다.


그림을 보다 보니 어느새 내 입은 '혜화동'을 흥얼거리고 있었다.

'오늘은 잊고 지내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일이면 멀리 떠나간다고. 어릴 적 함께 뛰놀던 골목길에서 만나자 하네. 내일이면 아주 멀리 간다고.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찾아가는 그 길.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어릴 적 넓게만 보이던 좁은 골목길에 다정한 옛 친구 나를 반겨 달려오는데. ~~'



브뤼겔의 광장 속으로 한걸음 더 들어가 보자

왼쪽에 어느 집 2층에서는 어린 소녀가 그네를 타고 있고, 그 옆에는 혹시 그 소녀가 떨어질 세라 손으로 바칠 준비를 하고 있는 아이가 있다. 아들이 릴 적 fisherprice에서 만든 '창틀용 그네'에 태워 밀어주던 기억을 되살리는 장면이다. 창가에는 마치 할로윈 파티에서 많이 쓰는 '스크림'처럼 생긴 가면을 쓰고 밖을 내다보고 있다.


그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한 아이가 두더지 구멍을 파면서 모래 놀이를 하고 있고, 그 모래 언덕에는 마치 위에 있는 아이가 언덕을 지키고 그 아래 아이가 언덕을 탈환하려고 하며 놀고 있다. 이 게임은 'King of the hill'이라는 게임이라고 한다.


그 오른쪽에는 두 아이가 긴 막대를 들고 서로 노려보고 있다. 마치 중세 기사들이 결투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 창 끝에는 바람개비 같은 것이 달려 있는데 결투가 아니라 뛰어가며 바람개비를 돌리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옆에는 울타리 난간에서 마치 말 탄 듯 즐거워하는 소년들이 셋 있다. 그 울타리 안에는 물구나무서기, 다리 잡고 앞구르기를 하는 아이들도 있다. 마치 아크로바틱 능력을 자랑하는 듯하다.


그 위 개울가에는 아이들 몇 명이 멱을 감고 수영을 즐기고 있고, 그 옆에 나무에는 아이 하나가 나무를 기어오르고 있다. 그 아래에는 세명의 소녀들이 플레어스커트 같은 치마를 돌리고 있고, 그 옆에는 두 아이가 큰 볼을 가지고 놀고 있다. 참고로 이 게임은 보체(bocce)라고 하는 공 굴리기 게임이다.


그 오른쪽에는 다섯 명의 아이들이 팽이치기를 즐기고 있는데, 그 와중에 그 위쪽 벽 옆에는 대변을 보는 듯한 아이가 있다. 팽이 치는 아이들의 오른쪽에는 마치 칼 든 강도가 뒤에서 목을 조를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시범을 보이는 아이들과 이를 지켜보는 한 무리의 아이들이 계단에 앉아 대단하다는 듯 입을 벌리며 탄성을 내뱉고 있다.


팽이 치는 아이들이 있는 건물 2층 창가에는 긴 줄이 매달린 막대를 창 밖으로 날리고 있는 아이, 바구니를 아래에 있는 누군가에게 전달하려는 듯 던지려는 아이가 있다.


그 오른쪽 현관 안에서는 빗자루를 손가락에 올린 채 균형 잡기 놀이를 하는 아이가 보이고, 그 아래에는 아이들이 철봉에 매달려 놀고 있다.


울타리 아래에는 두 줄로 늘어 앉은 아이들 사이로 두 명의 아이가 지나가는 게임인 것 같다. 앉은 아이들은 발로 지나가는 것을 방해하는 놀이인 것 같다.


건물 담벼락에는 머리에 두건을 뒤집어쓴 술래에게 '나 잡아봐라' 하듯이 한 무리의 아이들이 술래 주변에서 놀리고 있다. 어릴 때 집 안에서 수건으로 눈 가린 채 아이들을 잡는 놀이가 기억난다. 그 오른쪽에는 두 아이가 '모라'(Morra)라고 하는 손 게임을 하고 있는데, 마치 어릴 적 '손가락 게임'을 하는 것 같다. 양손 엄지를 모아서, 숫자를 0부터 엄지손가락을 다 합한 숫자까지 숫자를 외칠 때 엄지 손가락의 수가 외친 숫자와 같으면 그 숫자만큼 때리는 게임이다.


건물 한쪽 벽에서는 모자를 쓰고 새와 노는 아이, 비눗방울을 부는 아이, 그리고 공예품을 만드는 아이가 있으며, 그 아래에는 두 명의 여자아이가 무슨 동물의 뼈 같이 생긴 공기로 놀이를 하고 있다. 건물 안에는 두 소녀가 인형 놀이를 하고 있다.


가운데쯤에는 양쪽에서 두 명이 팔목을 사각형 모양으로 잡고 팔과 가슴 사이에 다리를 넣게 해서 아이에게 가마를 태워주는 모습이 보이고, 그 아래에는 말머리가 달린 막대를 가랑이 사이에 넣고 말 탄 듯 '이랴이랴'하는 아이도 있다. 그 옆에는 막대기로 똥을 헤짚는 아이와 피리와 북을 연주하는 아이들도 보인다.


굴렁쇠를 굴리는 남아 뒤에는 통나무 통 안을 들여다보는 여자아이가 있고, 그 위에는 무등을 타고 줄을 뺏는 한 무리의 아이들도 있다. 다시 그 위로는 타 넘기 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있다.


중앙 위쪽 건물 벽면에는 벽을 기어올라가는 아이가 보이고, 그 옆에는 싸우는 듯 서로 바닥에서 뒹굴고 있는 아이 둘이 있다. 그 아이들을 훈계할 세라 물을 뿌리려는 여성이 창 밖으로 양동이를 들고 있다. 그 위로는 꼬리잡기 놀이를 하듯 뒤쪽 옷자락을 잡은 아이들도 보인다.


중간 오른쪽에는 끝에 뭔가가 달려있는 막대를 들고 술래가 서 있고, 나머지는 술래로부터 도망가거나 술래에게서 막대기 끝 물건을 뺏으려는 듯 한 아이들의 무리가 있다. 그 아래에는 어떤 아이가 나무 위에 엎드린 채 망이 달린 막대기로 벌레를 잡으려는 듯하다. 어릴 때 곤충망으로 나무 위에 앉은 매미를 잡던 기억이 난다.


그 아이 왼쪽에는 사람처럼 생기기도 한 길쭉한 무언가를 들고 있다. 이 무언가는 볼라드라고 하는 빵이라고 하는데, 보통 크리스마스와 새해에 굽는 빵이다. 부모들이 크리스마스와 새해 전날에 아이들의 베개 밑에 볼라드를 깔아주고, 다음 날이 되면 아이들은 볼라드 빵을 들고 자랑하듯 거리를 돌아다니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가운데에는 다리를 벌린 아이의 가랑이 사이로 두 사람이 모자를 던져 누가 멀리 던지는지 놀이를 하는 듯하다.


가운데에는 큰 통나무 통 뒤에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아 있는데, 아래쪽에 있는 아이는 왼쪽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 같다. 아마 통나무 위에서 상대방을 먼저 떨어뜨리는 게임인 것 같다. 이 게임은 어느 예능에서 외나무다리에 앉아 베개 같은 물건으로 상대방을 쳐서 떨어뜨리는 게임과 비슷해 보인다.


그 아래에는 한 아이가 돼지 방광을 불어 풍선을 만들고 있는 것 같다. 그 아이의 오른쪽에는 말뚝박기를 하는 한 무리의 아이들이 있고, 그 오른쪽에는 소꿉놀이를 하는 것 같은 아이도 있다.


그 나무의 반대편에는 한 아이를 벌주는 듯하게 여러 명이 손과 발을 잡고는 나무에 엉덩이를 튕기는 듯하며, 그 오른쪽에는 두 아이가 무언가 벽돌 근처에서 놀이를 하고 있다. 그 위에는 한 아이의 모자를 뺏으려는 듯 여러 명이 둘러싸고 있는데, 가운데 있는 아이는 굉장히 괴로운 표정이다.


누구나 어릴 때 함께 놀던 친구들이 있다. 또 그들과 하던 구슬치기, 딱지놀이, 술래잡기는 물론, 오징어 게임으로 유명해진 오징어 가생,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뽑기 등의 놀이가 있다.


그 어릴 적 마냥 즐겁고 해맑던 그 시절 그 기억 속으로의 추억 여행은 이해관계로 얽힌 사람들의 틈 바구니에서 잠시 떠나 마음의 안정과 여유를 주기에 우리는 늘 그리워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탈리아: 포지타노 지나 아말피까지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