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실베니아주에 있는 피츠버그에 들어서면서 지도박사인 우리 아빠가 자꾸만 길을 잘못 들고, 주차 때문에 애를 먹었어요. 그런 아빠를 보면서 오랜만에 서울과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어요. 서울처럼 복잡하게 이어진 도로, 강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산책로와 그 위를 잇고 있는 다리들……아마 서울에서 한강 옆에 살면서 매일 놀이터에서 놀았기 때문에 피츠버그의 풍경들이 마치 서울에 있는 기분을 들게 하는 것 같아요.
피츠버그는 Steel city라고 불릴 만큼 철강산업의 중심지로 명성을 얻은 곳으로 다리가 많은 곳으로도 유명해요. 아마 많은 다리와 연결되는 복잡한 길 때문에 아빠가 길을 헷갈려하신 것 같아요.
우리가 묵은 호텔은 야구장과 풋볼 경기장 사이에 있는 하얏트 플레이스였어요. 경기가 없는 날은 사람도 별로 없고 가격도 저렴해서 아빠가 좋아하는 호텔이에요. 저녁때는 비가 왔지만 햄버거를 원하는 대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BAR에 가서 각자 이름의 버거를 만들어 먹었고, 이번에도 엄마와 아빠는 로컬 맥주를 마시면서 흥을 올렸어요. 저는 나만의 버거를 만든 것에 신이 났고요. 미국에 처음 왔을 때는 아빠가 우리를 대표해서 대부분의 메뉴를 주문했지만, 이제는 아니에요. 우리 가족은 각자 먹는 취향이 확고하거든요. 햄버거를 예를 들면, 아빠는 베이컨을 좋아하고 캐러멜 양파를 좋아해요. 엄마는 생양파와 아보카도 넣는 것을 좋아하고 베이컨이 들어가는 것을 싫어해요. 저는 빵과 고기만 있어야 하고요. 채소는 물론이고 웬만한 소스까지 빼고 나서야 진정한 나만의 스타일 버거가 완성돼요. 그래서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메뉴를 사수하기 위해 각자 주문하고 절대 서로의 접시를 넘보지 않는다는 무언의 약속이 시작됐어요. 돌이켜보면 아마 피츠버그에서 즈음부터.. 저는 제 음식을 Create 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은 햄버거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음식점에서 제 취향에 맞게 주문하는데, 저는 이렇게 각자의 스타일을 존중해 주는 미국 식당이 너무 편리하고 좋아요.
비가 그친 아침, 우리는 산책을 하기로 했어요. 강 옆으로 설치된 야구 동상을 하나씩 읽으며 걷다가 보면 앤디워홀 박물관이 나와요. 박물관에 도착할 때까지는 그동안 몰랐던 예술가, 앤디워홀에 대해 엄마가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기억에 남는 내용은 나와 잘 어울리는 디자이너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박물관을 둘러볼수록 이해가 됐어요. 위트 있는 작품이 많아서 나랑 어울렸다고 하셨겠지요? 미술관을 이렇게 재미있게 관람한 적은 처음이었어요.
핑크색 선글라스를 엄마가 저에게 건네주면서
“자, 이 작품 앞에서 이 안경을 쓰고 사진을 한번 찍어볼래? 그러면 그게 바로 작품이 되는 거야”
라고, 열정적인 설명 끝에 엄마가 제안 했어요. 선글라스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는 한번 엄마 말대로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 뒤로도 이것저것 해보자는 것과, 끊임없는 이야기가 신기하게 귀찮지 않았던 시간이었어요.
기념품 가게에서는 빗물에 색이 변하는 우산을 샀고, 엄마는 앤디워홀 작품이 그려진 티셔츠를 샀어요. 여행하면서 비가 한두 번 왔는데 우산을 펼치고 새로운 도시 위를 걷고 있으니 이번에도 작품이 된 것 같았지요. 그 옆에 앤디워홀의 작품을 입고 함께 걷고 있는 엄마 모습을 보니 대량생산으로 탄생된 또 하나의 작품이 완성됐어요. 휴대폰을 쥐고 앞장서는 아빠까지 합세하면 우리 가족의 투어는 새로운 팝아트의 탄생이었지요. 생각이 생각을 낳고, 작품이 작품을 탄생시키는 작업이 예술이라면 참 재미있는 일 같아요.
미술관 관람을 재미있게 마치고 밖으로 나왔더니 노란색 다리가 놓여있는 피츠버그의 모습자체가 예술 작품으로 느껴졌어요. 그리고 그 모습이 서울의 우리 동네와 닮게 느껴지기까지 하던 그 순간……! 피츠버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 여행은 우리가 50개 주에 대한 목표 없이 자유롭게 떠났던 여행이라, 이동하면서 들를 수 있었던 게티스 버그를 미련 없이 지나쳤어요. 펜실베이니아 주에는 남북전쟁의 전환점이 된 게티즈버그가 있고, 미국 독립선언과 헌법제정이 이루어진 필라델피아가 역사적으로 아주 유명하지만 이 때는 관심밖이었어요. 하지만 근처에 허쉬초콜릿 공장이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는 당장 초콜릿 먹으러 가자며 열을 올리기도 했다가 곧바로 모든 곳을 포기하고 다음 목적지를 향했던, 지금 생각하면 바람 따라 마음 따라 이동했던 여행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끝없이
“우리가 한국에서부터 피츠버그를 찾아온 일은 대단하지 않니?”
라고 혼자 되묻고는 하셨어요. 우리는 피츠버그를 왜 갔을까요? 특별한 이유가 없는 목적지였지만 우리의 50개 주 지도에서 펜실베니아주를 긁어낼 수 있는 시간이 되었고, 무엇보다 미술관이 재밌다는 것을 발견한 곳으로, 어디서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운 여행이었어요. 펜실베니아의 웰컴사인앞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면 우리 여행은 언제나 펜실베니아에서 처럼 Smile you are in! 즐거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