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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번째 여행: 미국여행, 처음으로 가야 할 곳

by 정윤호

우리가 미국으로 이사 왔을 때 정착하기 위한 엄마의 추진력은 단호하고 거침없었어요. 아빠도 그 어느 때보다 회사일에 정신없이 집중하셔서 우리는 각자 할 일 대한 존중을 확실히 했지요. 그중 제가 해야 할 일은 한국 공부를 이어서 하는 것이었는데, 그래도 이때까지는 할만했어요. 미국 학교를 등교하기 전이었지만 한국의 친구들과 매일 통화도 했고 미국에서 잘해보겠다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요.


아빠는 회사아저씨들의 여행소식을 듣고 우리도 여행을 가자는 제안을 여러 번 했지만 엄마는 모두 거절했어요. 우리는 현재 일상이 여행 중이라서, 또 여행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이었어요. 아직 팬데믹이 끝나지 않았던 때라 우리의 이삿짐을 누구도 기약해 줄 수 없는 상태였고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느긋이 기다리는 것뿐이었거든요. 하지만 이런 상황에 불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그때는 그렇게 보냈던 시간은 설렘과 호기심으로 가득 차 여행이 하나도 부럽지 않았어요. 한국과 비교하면 정말 큰 집이었지만 살림이라고는 아빠가 첫날 코스트코에 비장하게 혼자 가셔서 사온 거대한 텔레비전 한대가 살림의 전부였어요. 우리 가족은 텅 빈 커다란 집에서 가장 아담한 방 한 칸을 선택해 그곳으로 모두 모여 바닥에서 잠을 잤고, 박스를 식탁 삼아 밥 먹어야 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여행만큼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마침내 봄소식과 함께 기다리던 이삿짐이 도착해 집이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고, 엄마가 여행시작에 OK사인을 주셨어요. 목적지는 ‘미국에 살면서 딱 한 곳 여행을 갈 수 있다면?’에 대한 답변이었어요. 딱 한 번의 기회가 있다면 엄마와 아빠는 저에게 나이아가라폭포를 보여주고 싶었대요. 캐나다 쪽에서..! 미국에 사는 동안 가야할 곳, 꼭 한 군데라고 하는데 그게 왜 꼭 캐나다여야 하는지.. 이유는 한국에서 보다 미국에 있을 때 가보기 편하기 때문이라는데…. 어쨌든 결론은 캐나다에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가 선정됐어요.


2022년, 여전히 국경을 넘나드는 일은 매우 까다로운 일이었지만, 앞으로 펜데믹보더 더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 생길 수 도있다고 생각하면 복잡하더라도 추진하자는 것이 아빠의 의견이었어요. 저는 어리둥절, 이때는 막연히 나이아가라 폭포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을 뿐이에요. 그리고 이 여행을 통해서 나이아가라 폭포뿐만 아니라, 엄마와 아빠는 두분이 처음으로 함께 미국여행을 했을 때 봤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셨어요. 미국의 대통령이 있는 워싱턴 DC도 둘러보기로 했고, 아빠는 하루종일 스미스 소니언 박물관 구경을 하고 싶었는데 엄마가 거절해서 못했던 일을 저에게 함께 하자고 제안하셨어요.


우리 가족의 영 번째 여행은 무엇보다 미국에 생활에 대한 자신감으로 넘치던 때였어요. 그 어떤 시련이 찾아와도 우리는 강하게 맞서 헤쳐나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똘똘 뭉쳐있던 때. 이런 자신감 때문에 저는 기대와 달랐던 미국생활의 현실 앞에서 더욱 크게 실망하고 좌절하던 했었던 거에요. 그리고 대신 이렇게 미국을 하나씩 배워가며 진심으로 이해하고 나에게 맞게 적응하는 길을 찾을 수도 있었다고 믿어요.


아빠는 10년 전 엄마와 함께 했던 미국여행을 떠올리면서 영 번째 여행의 루트를 완성하셨어요. 뉴욕으로 날아가 버펄로로 이동 후-캐나다로 넘어가서 나이아가라 폭포를 구경하고, 피츠버그라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곳을 들렀다가 워싱턴 DC에서 백악관과 박물관들을 투어하고 돌아오는 일정이었어요. 우리가 캐나다로 넘어간 날은 미국-캐나다의 국경이 팬데믹으로 닫혔다가 열린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어요. 미리 알고 계획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뉴스를 들으면서 국경을 넘으니 우리의 여행을 환영해 주는 기분이 들어 더욱 신이 나서 돌아다녔어요. 두분은 예전에 도보로 국경을 통과 했었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차를 타고 통과했어요.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나듯이 국경을 통과하는 것이 신기하고 생각보다 많이 긴장됐어요. 버펄로에서는 당연히 최고레벨 맵기의 버팔로윙을 먹었고, 캐나다에서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아빠가 발굴해 놓은 초밥집에서 로봇의 서빙을 받으며 실컷 먹었어요.


그리고 나이아가라 폭포를 마주하던 ‘모먼트’는 정말 최고였어요.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상상을 하면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아침, 점심, 저녁, 밤의 경치를 모두 감상했고, 관광객이 적었던 덕분에 최고의 방에서 머물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잠들기 직전까지 폭포를 감상할 수 있었어요. 이곳은 캐나다였지만, 미국에서 꼭 여행해야 할 곳이라는 것에 동의할 수 있었지요.


이미 뉴욕주의 이야기는 소개했으니 나이아가라 여행은 여기까지만 소개하고 바로 펜실베이니아 주의 여행부터 시작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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