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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오리건

by 정윤호

오리건주는 시애틀 여행을 하던 중에 들른 곳이에요. 7살 겨울, 엄마와 함께 시애틀에서 일하고 있는 아빠를 만나러 갔어요.


시애틀에 도착했던 날은 저의 초등학교가 결정되는 날이었어요. 아빠를 만나고, 미국에 다시 여행을 오고, 내년 부터다닐 초등학교가 정해지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초밥을 먹으러 가는 일이 모두 하루에 일어났던 날이에요! 이 때는, 그 누구도 우리 가족이 50개 주를 정복하는 것에 집중해서 미국을 누비고 있을 줄 몰랐어요. 저녁식사 자리에서 오히려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면 학교를 착실히 다녀야 해서, 미국여행은 마지막이라는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나요.


서두가 길었지만, 포틀랜드 여행의 출발은 이런 이유로 모두가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시애틀까지 오느라 힘들다고 다른 곳에 놀러 가는 것을 거절했을 법한 엄마도 학교에 대한 한 가지 숙제가 해결돼서 그런지 아빠의 포틀랜드 여행제안에 기분 좋게 동의하셨어요.


오리건주는 우리가 처음으로 방문한 세금이 없는 주에요. 지금까지 여행을 돌이켜 보면 델라웨어, 알래스카, 뉴햄프셔, 오레곤 그리고 앞으로 여행할 곳 몬타나 주가 소비세금이 없어요. 미국에서 엄마가 장난감을 사주지 않을 때 내 돈으로 사겠다고 우기고 나면, 꼭 내가 확인한 금액보다 더 비싼 금액의 돈을 엄마가 요구하셨는데 그 이유는 Sales Tax 때문이에요. 표기된 금액에서 항상 약 9% 정도의 세금이 더해져 돈을 지불해야 하거든요. 그러니까 세금이 없는 오리건에서 장난감을 사면 9% 정도의 할인을 자동으로 받는 일이에요.


그때는 마침 블랙프라이 데이였고, 며칠뒤면 엄마 생일이에요. 저도 블랙프라이데이가 어떤 날인줄은 이미 알고 있어 장난감을 사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었지요. 게다가 저는 ‘초등학교 입학’이라는 축하받을 일을 최후의 수단으로 장난감 쇼핑에 임할 작정이었어요. 이렇게 우리 가족은 시애틀에서 출발해 포틀랜드에 도착할 때까지 약 3시간 30분 동안 처음으로 세금이 없이 쇼핑할 수 있다는 사실에 들떠 있었어요.


아빠는 엄마의 생일 선물을 골라 주셨고, 엄마는 즐거운 생일을 맞이하게 됐어요. 그리고 그 옆에서 저는 덤으로 핫휠박스를 얻게 됐어요.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조르기 전에, 아빠가 흔쾌히 사주셨어요. 그리고 오히려 더 사야 한다고 소비욕구를 자극하셨지요. 끝까지 해피엔딩인 것은 이때 사주신 트랙 장난감 덕분에 사이언스 페어에서 베스트 오브 페어의 트로피를 들었고, 파인우드 더비대회에서 챔피언을 기록했어요. 이 트랙장난감 위에서 저는 지금까지도 많은 실험들을 하는 중 이에요.


포틀랜드에서 우리는 플리마켓에도 가보고, 세계에서 가장 큰 서점도 지나고… 많은 것을 했지만 가장 핵심포인트는 쇼핑이었어요.


플리마켓은 지금까지 가본 중에 가장 크고, 물건도 풍성하게 있는 곳이었어요. 예술가처럼 보이는 상인들이 신기한 물건을 많이 팔고 있었는데 엄마가 물건값을 흥정하다가 주인아줌마에게 자신의 소중한 물건에 대한 가치를 깎지 말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어요. 다행히 엄마는 기분 상하지 않고 플리마켓의 상인들은 자신들의 물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넘기셨어요. 소금접시를 살 때는 포장하는데만 30분이나 걸렸는데…. 아마 제가 해도 그것보다는 빨리 했을 것 같아요. 오리건주의 사람들은 확실히 개성이 있었어요. 자신의 일에 뚜렷한 소신이 있다고 해야 할까요? 이것이 오리건 주에 대한 이미지가 됐어요. Portland Street Car라는 트램을 타고 여기저기 부지런히 돌아다녔어요. 하지만 쇼핑을 너무 많이 해서 서점에 도착했을 때는 책 쇼핑은 포기하게 되었어요.

일정을 마치고 찾아간 펍에서는 우리의 여행 역사상 가장 긴 기다림 끝에 치킨튀김 몇 조각을 받았는데 맛도 없고, 기분도 상할 대로 상했었어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번에도 세금이 없는 음식값에 위로받고 식당을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에요. 계산할 때마다 행복해하는 아빠 모습을 보면서 저도 영수증에 사인을 하면서 놀았던 기억이 나요.


계획대로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었지만 양손 가득 쇼핑가방을 들고 기분 좋게 포틀랜드의 시내를 누비고 다녔어요. 그러다가 크리스마스트리 점등행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우리는 구경하기로 했어요. 30분 정도 크리스마스 캐럴을 다 함께 부르면서 불이 켜지길 기다렸어요. 그때 부른 크리스마스 캐럴은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다리가 아파지려고 할 즈음 시작한 Twelve days of Christmas는 처음 듣는 캐럴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노래였어요. 계속 반복되는 선물이 12일째까지 갔다가 다시 12일째에서 첫 번째 날까지 내려오는 길고 긴 노래였어요. 다행히 쇼핑으로 기분 좋은 우리 가족은 불평 없이 처음 듣는 그 긴 캐럴을 끝까지 따라 부르며 점등행사를 즐겼어요.


미국에서 산다는 것은 캐럴을 다 같이 즐겁게 부를 수 있는 것과 같은 일이겠지요?


내년 크리스마스를 내가 또 미국에서 보내게 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기대로 채운 크리스마스였어요. 그것은 엄마도 아빠도 마찬가지였대요.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우리 가족은 그 뒤로 팬데믹이 있던 2020년 한 해만 빼놓고 올해 2024년까지 5년 연속 미국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답니다.


오리건주는 저에게 동화 같은 곳이에요. 세금이 없어서 큰 장난감 선물도 아빠가 흔쾌히 사주시고, 그 장난감 덕분에 미국학교에서 주인공의 기쁨도 누리고, 점등행사 때 빌었던 소원처럼 미국의 크리스마스를 그 뒤로도 즐길 수 있게 이루어 준 곳. 이제 곧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 오면 슬픔이 밀려올 것 같아요.


그때 다시 포틀랜드의 크리스마스트리로 찾아가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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