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타나 주는 공항부터 굉장히 멋진 자연의 색감을 갖고 있고,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지요. 보즈먼은 작은 도시 같았지만 생동감이 넘치는 분위기였어요. 보즈먼 공항은 옐로스톤을 가기 위한 통로답게 공항에서부터 감동스러운 장면이 창밖으로 펼쳐졌어요. 국립공원이 싫다고 외치는 저도 비행기에서 내린 순간 눈앞에 펼쳐진 모습에 감동해서 쉴 새 없이 떠들기 시작했거든요. 지난여름 친구와 함께 요세미티 트레일 투어에서 했던 퀴즈,
최초의 국립공원은?
“옐로스톤!”
눈앞에 마주하기 전부터 공항의 분위기에 압도당해, 그 답을 영영 잊지 못하게 됐어요.
옐로 스톤 국립공원을 가기 전 잠시 보즈먼에 있는 카페에 들르기로 했는데 저는 이곳에 제 가방을 놓고 오게 됐어요. 카페에서 음료수를 마시고 옐로스톤을 향해 1시간쯤 도로 위를 달렸을 때 가방을 놓고 온 것을 발견하고 다시 돌아가게 된 곳이 보즈먼이에요. 여행을 하면서 이곳에 언제 다시 오게 될까?라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 가방을 깜빡하고 오면 생각보다 빨리 다시 갈 수 있다는 것을 배웠어요.
그렇게 조금 돌아 도착한 옐로우스톤은 초입이 굉장히 꼬불꼬불했어요. 말로만 듣던 대로 동물들이 차도를 건너는 일은 평범한 일상이었지요. 온천수가 흐르는 물을 만져보니 정말 따뜻했고, 여기저기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모습을 만들어 준 쌀쌀해진 날씨에 감사하게 됐어요. 엄마는 고향에 온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온천과 산이 둘러싸인 고향과 비슷한 분위기라고 친근한 풍경에 (물론 미국이 훨씬 거대하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반가워하셨지요.
평소 걷는 것을 싫어하지만 한적한 옐로우스톤의 트레일을 따라 걷는 시간은 어느 때보다 재미있었어요. 소복이 쌓인 눈 위에 나의 50번째 주라는 것도 새겨 보고, 둘째 날에는 쇼핑백을 사서 썰매도 탔어요. 신나게 썰매를 타는 나를 가장 부러워한 것은 그곳에 살고 있는 사슴들이었고 저도 어느새 동물들이 무섭지 않았어요.
몬타나주는 미국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낮은 곳이라고 해요. 그래서 사람보다 동물의 수가 더 많은 곳이라는 농담을 자주 하는데 그것이 매 순간 진담으로 다가왔어요. 여름이었다면 훨씬 북적했을 옐로 스톤을 한적하게 즐겨서 더욱 그렇게 느낀 것 같아요.
스카이시티라는 곳에 숙소를 잡았어요. 이름과 닮은 곳이에요. 산 중턱에서 새로운 맛의 프라임도 발견하고, 산자락 아래의 마을에서 올려다봤던 산의 꼭대기까지 올라가 봤어요. 상상이 잘 되지는 않지만 아빠는 스노보드를 즐기는 겨울스포츠 마니아라고 해요. 그래서 산꼭대기까지 연결된 슬로프를 보고 다시 이곳에 올 날을 상상하며 즐거워했어요. 정상에 도착해 보니 눈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여기저기서 스키장 오픈을 위한 공사가 한창이었어요. 정상에 올라본다는 것은 멋진 일이 지만 생각보다 아주 특별한 것이 아닌 것 같기도 해요. 그곳에는 늘 또 다른 일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이동하면서 우연히 발견한 고스트 타운도 인상적이었어요. 골드러시 시대를 뒤로하고 고스트 타운이 된 곳이래요. 역사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여행 같아요. 정상이 내 발아래 있다가도, 어느새 달리다 보면 다시 꼭대기를 올려다보는 이번 여행. 목적지를 향해 달리다가 다시 되돌아가고, 싫어하던 국립공원이 너무 재밌어서 또 놀러 가자고 부탁하고…... 앞으로도 들쭉날쭉, 하루하루를 미국에서 지내겠지만 매 순간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하나 잊지 못할 일이 있었어요. 옐로스톤을 향하기 전 늦은 아침을 먹으러 타코벨로 향했을 때 일이에요. 그곳에서 만난 가족과 짧은 대화를 했는데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그 가족은 네브래스카의 오마하에 살고 있었어요. 아빠와 내가 지금도 이름을 헷갈려하는 “오마하”.
그날 아침은 그동안 아빠 없이 동네에서 먹은 타코벨이 너무 맛있어서 꼭 이 맛을 아빠한테도 소개해 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옐로스톤 가는 길에 있는 아주 작고 작은 타코벨을 찾아가게 됐어요. 타코벨에는 손님이 한 팀이 더 있었어요. 키오스크에서 주문하는데 생각보다 한국식 영어로 들리는 억양이 신기해서 계속 귀를 기울이게 됐었지요. 몬타나의 억양은 한국식 영어와 참 닮아 있다고 생각할 즈음 진짜 한국말이 들리기 시작했어요. 한국 아줌마와 미국아저씨가 결혼해서 현재는 오마하에서 살고 있고, 아저씨의 엄마까지 세분이서 로드트립으로 친척을 만나러 아이다호까지 가는 중이라고 했어요. 네브래스카 출신 아저씨는 한국에서 10년을 살아서 한국말도 아주 잘하셨지요. 반가운 마음에 우리에게 먼저 인사를 해주신 아저씨께 우리의 여행을 짤막하게 소개하니 왜 네브래스카가 좋았는지 진심으로 궁금해하셨어요. 그 당시 많은 주 들중에서 클래식한 느낌이 진한 중부지방 여행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있었고 여운이 길게 남아 좋아한다고 이야기했더니 한국아줌마께서는 산호세에서 즐길 수 있는 많은 아시안 음식과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우리의 삶을 조금 부러워하셨어요. 서로의 미국 생활과 여행을 응원하면서 인사를 하는데 아빠는 반가웠던 마음에 무의식적으로 다음에 보자라는 인사를 할 뻔했어요. 우리 가족의 50개 주 여행을 처음으로 낯선 사람에게 소개한 것이었는데 내가 여행했던 다른 주의 사람과 여행 이야기를 하니 반가움과 남모를 친근감이 커졌던 건 사실이에요. 아빠는 무안한 상황을 어떻게든 바꿔보려고 이야기를 만들었지만 엄마와 제가 한참을 놀렸어요. 그런데 그 뒤에 옐로 스톤 주차장에서 그 아저씨네 가족 차를 또 봤지 뭐예요! 미국이 넓기는 하지만 인연은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혹시 오마하 아줌마나 아저씨가 우리 이야기를 보게 되면 또다시 만나는 기분이 들겠지요?
여행을 뒤돌아보며 글을 남기고 있는 지금, 우리가 오마하를 여행하면서 바비큐를 신나게 뜯고 있을 때 어쩌면 그 아저씨네 가족도 옆에서 바비큐를 즐기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국은 정말 커서 모든 주가 다른 나라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만큼 드라마틱한 일도 많이 생기는 곳이니까요.
아직 미시건 주와 워싱턴 주 이야기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몬타나 주에서 50번째 주 방문 축하 파티를 했어요. 결정을 잘 내리지 못하는 엄마가 선택한 곳으로 어두운 밤에 도착한 식당은 소박하고, 캐주얼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생각보다 고급스럽고 독특한 분위기의 식당이었어요. 예약 없이 왔다는 우리에게 마지막 테이블을 안내해 줬고 안으로 들어서니 모두가 행복해하는 작은 식당이 마음에 들었어요. 저는 그곳에서 50번째를 기념할 메뉴를 고민하다가 바이슨 스테이크를 선택했어요. 좁은 식당에 손님 들로 꽉 차있는 상황이 우리 테이블 너머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른 세상에 있는 듯 한 느낌이 들게 했어요. 우리는 서로에게 집중하며 그 순간을 마음껏 즐겼어요. 엄마가 한껏 꾸미고 오지 못한 옷차림에 속상해하셨어도 그 순간만큼 우리 가족이 앉아 있던 테이블은 어떤 가족보다 밝게 빛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오는 길에 봤던 밤하늘의 별빛이 그 어떤 국립공원에서 올려다본 밤하늘에서 보다 환하게 빛나고 있던 것처럼 말이에요.
*여행처럼 예상할 수 없는 일로, 저기 목적지가 보여도 잠시 쉬었습니다. 조금 늦고, 들죽 날죽 하지만 남은 이야기 끝까지 기록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