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로이트 공항에 도착하면 아빠는 늘 신나 보여요. 나와 아빠는 걸어야 할 시간이 오면 최소한의 에너지를 이용해서 효율적인 발걸음으로 움직이는데 이곳에서 만큼은 아빠가 걷는 일에 에너지를 많이 할애하는 곳이에요. 왜냐하면 디트로이트 공항에는 한눈에 볼 수 있는 일자로 쭉 뻗은 공항트램이 2층에 있기 때문이에요. 트램을 타러 가는 길은 아빠가 여행 중에 가장 들뜨는 시간이거든요. 하지만 엄마는 눈에 보이는 곳은 걸어가야 한다며 항상 혼자 걸어서 이동해요. 어느 날은 누가 더 빠른지 시험을 해봤어요. 결과는 당연히 엄마의 승. 그래도 아빠와 나는 디트로이트 공항에 오면 무조건 트램을 타요. 한 번은 좋아하는 사탕가게가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사탕을 사서 엄마를 만났어요. 엄마는 내 손에 들린 사탕을 보고는 엄청 크게 화를 내셨어요. 운동도 안 하고 사탕까지 사 왔다고…… 아빠는 디트로이트 공항에 오면 신이 나지만 매번 엄마가 화를 낸 이야기를 꺼내요. 아빠도 그게 그렇게 섭섭했나 봐요. 그 뒤로 아빠와 나는 꼭 트램만 탔어요, 사탕 가게를 지나치면서 엄마가 화낸 이야기를 꺼내면서 말이에요.
하지만 미시간 주를 가기 위해서 이번에 우리는 로드트립을 선택했어요. 시애틀에서 기차를 타고 시카고 역에서 내려, 내가 좋아하는 빌딩들을 보고 두 분의 유년시절 영웅, 마이클 조던의 소울을 찾아서 시카고 불스 농구 경기를 봤어요. 이때 ‘나의 유년시절’에서 시카고 불스팀이 최악의 팀으로 남겨지게되었어요. 경기시작전 우연히 선수사인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왔고, 급히 옆에 있는 또래 남자아이에게 매직을 빌리면서 우리 차례를 기다렸지만 정확히 나와 그 친구 둘만 빼놓고 모든 사람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들어가 버렸거든요.
왜?
저지를 입고 있지 않아서?
내가 아시안이라?
옆에 아이는 백인이었는데?
우리가 서있는 곳에 나쁜 저주라도 내린 것인가?
왜? 산타할아버지가 얘네 둘은 반성 좀 해야 한다고 사인을 준 건가?
설마 진짜 우리 둘에게만 사인을 안 해 줄까?
많은 질문들을 수백 번 수천번 던져봤지만 답은 알 수 없었어요. 난 그 자리를 떠났고, 나에게 매직을 빌려주려고 하던 친구는 끝까지 남아 있었지만 결과는 나와 같은 유년의 추억을 간직하게 된 친구가 됐어요. 시카고 불스는 나에게 최악의 팀이에요. 워리어스 팀과의 경기도 아닌데 보러 온 것부터가 별로였어요. 하지만 경기장에서 우리 가족을 엄청나게 줌인해 주는 카메라 아저씨 덕분에 엄마와 아빠는 다시 불스의 ‘덕질’을 계속하기로 했대요……저는 아니에요. 여전히 NBA 하이라이트를 볼 때마다 나오는 그 선수들은 절대, 영원히 응원하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시카고를 뒤로하고 미시간주를 향해 달리는 길은 절대 섭섭하지 않았어요. 활기찼던 밀레니엄파크, 화려한 빌딩과 반짝이는 도시. 딱 내가 좋아하는 곳이지만 언젠가 그 선수를 만나면 꼭 묻고 싶어요. 그때 가장 착하고 예의 바르게 기다리던 나와, 내 옆에의 아이. 왜 우리 둘에게만 사인을 해주지 않았냐고!!?? 엄마도 속상했던지 아빠한테 볼멘소리를 하셨어요. 미국은 이런 나라라고, 예의 바르게 내 차례를 기다리면 누구도 손 내밀지 않는…… 내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유난스러워 보여도 팔을 뻗고, 소리를 내야만 이룰 수 있는 곳이라고 말이에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는 단 하나의 아쉬움도 없이 시카고를 박차고 나와 디트로이트를 향해 달렸다는 것이에요.
사실 디트로이트는 아빠가 가장 걱정한 곳이었어요. 여행 준비를 하면서 호텔가격이 지나치게 저렴한 사실을 발견하고, 그곳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이미 체감하셨다고 해요. 대안으로 도심 옆에 앤 아버(Ann Arbor)라는 대학가에 숙소를 잡기로 결정했어요. 다행히 도착한 곳은 위험해 보이지 않았어요. 맛있는 한식당도 가까이 있었고, 마침 그 대학은 엄마가 좋아하던 드라마 주인공이 다녔던 학교라며 미시간주립대학교 투어를 기대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정말 학교를 구경하는 일은 싫었어요. 그래서 또 한바탕 혼났어요. 미시간 주에서는 혼날 일이 많은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엄마가 저에게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하기 위해 저를 학교에 데려갔다고 생각했거든요. 엄마는 그런 저에게 반나절 이상 화가 나있었어요. 누구도 엄마의 화를 풀어주지 못했어요. 그리고는 알게 됐어요. 엄마가 대학가 구경을 좋아하는 이유를.
나의 공부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요. 엄마는 대학 때 유학 가는 친구들을 너무 부러웠대요. 지금 생각하면 핑계라고 설명하셨지만 그 당시에는 유학을 갈 수 없었대요. 돈도 없고, 아무리 공부해도 영어를 너무 못했으며, 그중 가장 중요한 ‘용기’가 제일 없었대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대학가에 오면 후회가 남고, 그때 하지 못했던 시간들이 궁금해 학교를 둘러보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해요. 아마 아빠랑 결혼하지 않았다면 유학을 갔을 것이라고 해요. 그즈음 학비를 다 모았는데 아빠가 나타나서 결혼을 선택했대요. 결혼하고 유학을 오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인생은 계획처럼 되지 않는다고, 학교를 둘러보며 아직까지도 나의 진학보다는 엄마가 진학할 궁리를 더 많이 한다고 착각하지 말라는 톡 쏘는 한마디를 남겼어요. 그리고 아빠의 응원으로 영어공부를 해서 미국에서 나를 이만큼 키울 정도의 실력을 겨우 만들었던 것이래요. 엄마와 아빠는 나보다 영어를 훨씬 못하는데……이 대화를 통해 엄마의 화가 풀렸지만 공부잔소리가 아니라는 것이 조금 어색했어요. 그래도 우리는 다행히 다음 목적지 헨리포드 자동차 뮤지엄을 즐겁게 관람했어요.
헨리포드의 공장투어를 가장 기대 한 사람은 나였지만 의외로 엄마도 좋아하는 요소가 많았어요. 공장의 옥상녹화 사업을 최초로 시도했다는 이야기도 듣고 F-150의 생산공정을 둘러봤어요. 이 트럭은 내가 어릴 적 항상 태워달라고 조르던 트럭으로 지금은 우리 엄마의 드림카가 되었어요. 더 이상 나의 드림카는 아니지만 추억이 있는 자동차의 생산과정을 보니 잊혔던 애정이 다시 생겼어요. 투어 해주는 가이드 할아버지는 오래전 공장의 생산라인에서 일하셨다고 하는데 친척들까지 모두 포드차를 할인받아서 살 수 있는 좋은 복지혜택이 있다고 해요. 그래서 가족들은 대부분 포드차를 타고 다닌대요.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빌딩 꼭대기층에 헨리 포드의 증손자 윌리엄 클레이 포드 주니어가 회장이 되어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자동차의 역사가 온몸으로 느껴졌어요.
디트로이트는 거의 포드의 도시라고 해도 될 만큼, 모든 곳에 헨리 포드가 쓰여있었어요. 회사, 공장, 도서관 등등. 도시의 이름을 헨리 포드로 바꿔도 될 것 같았어요. 도심에는 GM의 빌딩이 강렬하게 서있긴 했지만 그 빌딩도 포드가 선물한 것이라는 말이 있대요. 포드가 경영난으로 헐값에 GM에 매각한 빌딩이라 그런 말이 생겨난 것으로 그만큼 아직까지 포드의 역사가 유산으로 남겨져 있는 곳이었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기 위해 몰려들고, 2차 세계대전 때에는 여자들이 나서서 자동차 공장에서 무기를 생산하기도 했던 곳. 강이 가로지르고 있으며 두 개의 영역으로 나누어진 미시간 주의 지도가 우리나라와 한강을 떠오르게 하며 익숙하게 느껴졌어요. 강건너 보이는 캐나다가 더욱 가까이 느껴졌어요. 여행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도 모두 친절했지만, 한순간에 무기를 만들 준비가 되어있는 강인함도 느껴졌어요.
여행 끝, 다시 디트로이트 공항으로 향했어요. 또 공항트램을 타느라 즐거웠지만 미시간 주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트램을 타게 돼서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