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주 하면 저에게는 시애틀이에요.
4살, 시애틀 공항에 처음 내렸을 때는 밤이었어요. 아빠는 올라가는 방향의 에스컬레이터 끝에서 엄마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난 에스컬레이터가 끝까지 올라가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씩씩하게 계단 끝까지 걸어 올라갔어요. 수학 공부를 하지 않고 살던 시절이었지만 에스컬레이터의 속도와 내 다리의 속도가 합쳐지면 더욱 빨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요즘 인기 있는 제이미처럼 나에게도 이런 수학의 영재적 모먼트가 있었는데 학원을 다니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그 대신 도착한 시애틀에서는 엄청난 일들이 일어났어요. 현재 12살 반 인생의 많은 부분을 채운 역사적인 순간들로……
워싱턴주가 있다는 것은 시애틀에 가게 되면서 알게 됐어요. 워싱턴 DC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워싱턴주. 모두가 몇 달 동안 지속적으로 내리는 비 때문에 우울한 곳이라고 추천하지 않는 곳이지만 그 컴컴한 밤 같은 날씨 안에서 난 어느 때 보다 즐거운 일이 많았어요. 지금은 익숙한 일이지만, 처음 시작해야 하는 날, 나는 워싱턴 주에 있었어요. 드넓은 잔디에서 축구공을 차고, 다시 인사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난 곳. 소복이 쌓인 눈의 무게로 부러진 나뭇가지를 넘어와 평평한 곳에 자리 잡고 엄마, 아빠와 함께 눈밭을 뒹굴면서 놀던 일. 처음으로 좋아하는 자동차 경주 게임을 경기장에 찾아가서 보고, 밤늦게까지 어두워지지 않는 여름 햇빛을 즐기기 위해 맥도널드 드라이브 스루라도 하겠다며 야식문화에 참여하기 시작한 날. 그리고 그 밤의 간식을 위해서 인생처음으로 줄넘기를 100번 넘은 어느 날.
모두 시애틀에서 처음 시작했어요.
내가 살았던 곳은 아니지만 50개 주 중에서 가장 많이 여행하고 머물렀던 곳이에요. 하지만 이번 기차여행을 출발하면서 일단 이별식을 하게 됐어요. 당분간 우리가 워싱턴 주에 또 놀러 올 일은 없을 테니까요. 아쉬움에 시작한 시애틀의 추억이야기는 하염없이 흘러나왔어요. 기차시간이 넉넉한 만큼 여유를 갖고 회상한 장면들은 아주 빠르게 오랜 시간 동안 이어졌어요. 엄마보다 커진 나를 포함해 좁은 기차칸에 세 명이 웅크리고 앉아 이야기를 하다 보니 미국에서 시간만큼은 정말 쏜살같이 지나간 것 같아요.
미국에 있는 동안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을 시애틀에서 보냈는데 항상 눈이 올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어서 난 시애틀의 날씨가 너무 좋아요. 그리고 올해는 드디어 기차에서 인생처음으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맞이했어요. 식당에서 제 이야기를 듣게 된 아줌마가 놀라워했지만 캘리포니아에서 왔다고 했더니 이해해 줬어요. 어느새 캘리포니아 사람이 다 된 기분이었어요.
우리 가족이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방법은 벨뷰의 시내에서 퍼레이드를 보고, 딘타이펑 ‘만댕이‘를 만나고, 럭키 스트라이크에서 열정을 불태우며 오락을 하는 것이에요. 첫해에는 스페이스 니들에 올라갔지만……그곳에서 처음으로 나의 고소공포증을 발견하고 엄마, 아빠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순간이 됐어요……. 그 날 이후, 시애틀에 자주 놀러 가도 더 이상! 아무도! 스페이스 니들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지는 않아요. 그 대신 우리는 맞은편에 있는 케리공원을 찾아 스페이스 니들을 감상해요.
오후 4시만 돼도 밤이 되어 어두운 빗속을 뚫고 놀러 다녀야만 했지만 그 덕분에 난 항상 부지런해졌어요. 도넛을 먹으려면 아침 일찍 움직여야 내가 원하는 맛을 먹을 수 있다는 것도 배웠어요. 파이크 플레이스에 가면 껌으로 풍선을 불 줄 모르면서 풍선껌을 꼭 챙겨 씹고 껌월에 꾹 눌러 붙이는 놀이를 하던 곳. 지금은 어느새 내 얼굴만 하게 풍선을 불어 벽에 붙이고 와요. 스타벅스 일호점에서는 떳떳하게 내 음료도 주문할 준비가 되어있어요. 그리고 더 이상 레드몬드에 있는 마이크로 소프트 본사를 방문해 게임할 필요가 없어요. 우리 집 거실에는 나의 엑스박스가 있거든요.
킥보드만 있다면 누구보다 씩씩하게 그린레이크 한 바퀴를 완주하던 내 모습이 가물가물 하고, 지금은 절대 할 수 없는 스케이트 파크에서 킥보드 곡선을 그리며 넘나 들었던 시간. 그 공기만큼은 생생하게 내 볼에 남아 있어요.
시애틀의 놀이터는 달랐어요.
나보다 어린 동생부터 내가 만날 일 없는 아주 큰 형, 누나들까지 모두가 함께 달려 나와 뛰어놀았던 곳. 내가 여행을 왔는지, 한국에서 왔는지 신경 쓰지 않고 나를 가운데 태워 빙그르르 돌려주는 형, 누나. 그리고 나도 그 안에서 경험치가 쌓이면 새로오는 아이들에게 자리 한편을 내어주고 함께 빙글빙글 돌아가는 시간을 즐기는 곳. 9시간 걸려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놀이터에 처음 와서 어색한 내가, 한 시간만 지나면 주인공이 되어 놀 수 있는 놀이터가 시애틀이었어요. 우울증 인구 1위 도시로 유명하다고 하지만 내가 찾아간 곳은 모두가 서로의 시간을 아껴주면서 즐겁게 지내는 곳이었어요. 그리고 어느새 내가 이렇게 뺑뺑이를 돌려주는 형아가 되어 있어요.
산호세에서 이겨내야 했던 속상한 일들은 시애틀의 아름다운 추억을 먹고 끝까지 용기내며 다시 나만의 이야기로 쓸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번 미국생활을 하면서 만들었던 추억들은 또 다음 시간의 나를 튼튼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해요.
50개의 주를 모두 돌아보면서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장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알게 됐어요. 우리의 첫 여행에서 엄마가 주소하나 들고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에 그토록 설레어했던 감정을 저는 마지막에 다시 마주한 워싱턴 주에서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게 됐어요.
‘땅따먹기’ 프로젝트를 마치고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TOP3 놀이를 해요. 가장 좋았던 곳, 다시 가고 싶은 곳, 살고 싶은 곳 등등. 끊임없이 나오는 TOP3 놀이에 답은 얼추 정해 져 있고, 때때로 서로 엇갈리는 답에서도 재미를 찾고 있지만, ‘우리가 다시 미국에 온다면 살아야 할 곳’에 대한 답은 시애틀로 변함없어요.
이번 기차여행을 위해 다시 찾은 시애틀에서 우리는 또 크리스마스 퍼레이드를 봤어요. 엄마가 공연하는 아줌마 한 분을 열심히 찍어서 같이 봤더니 정말 에너지 넘치게 춤을 추고 있었어요.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든, 바로 저 ‘아줌마’처럼 신나게 살아가면 그곳이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무대가 되는 것이라는 뻔한 설교가 식사시간 때 나왔지만… 저도 Two hundreds Percent 동의할 만한 장면이었어요.
내가 있는 곳은 중요하지 않아요. 서울에 있는 유치원 친구들이 우표 한 장으로 내가 있는 곳까지 편지를 보내 주고, 워싱턴 주의 어딘가 점을 찍어 서울의 친구들에게 답장을 보냈던 그날처럼. 내가 변함없이 어딘가에 서 있다는 것이 가장 멋진 순간이라는 것을. 땅따먹기를 위해 정조준했던 돌이 잘 못 튕겨서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더라도 멈춘 곳에서 시간을 만들어가는 것은 내가 주인공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