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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로암 Sep 27. 2024

괜찮은 중학생

 공부를 하면 성적이 오른다는 것은 상식 같지만 공부를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게 오히려 평범하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보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가 훨씬, 훨씬 많다. 100명 중에 4명보다 96명이 24배로 많다. 그러나 96명의 아이들에게는 발언권이 없다. 4명의 아이들이 하는 말을 잘 듣고 따라 해서 4명 안에 들어가면 그제야 발언권이 생긴다. 세상을 향해 말할 권리가 생긴다. 발언권이 없는 내가 9등급 8등급 7등급.. 아이들도 노력하고 있다고 말해봤자 아무도 안 듣는다. 부모님도 안 듣고 당사자인 아이들도 안 믿는다. 노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수학이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 그들의 수학을 어찌 비난할 수 있나. 그러나 세상은 그들의 수학에 대해서 놀리고 웃느라 그들이 수학에 바친 노력은 보지 못한다. 수학은 냉정한 숫자로 만들어진 결론에 높은 벽을 치고 그 안에 담긴 피땀눈물을 잘 보여주지 않는다. 정말이지 차갑다.      

 

 K는 수학시험을 치고 와서 50점을 받았다고 했다. 정말 기뻐하며 축하해 줬고 속으로 운이 되게 좋았나 보다 생각했다. K는 식을 제대로 쓸 줄 몰랐고 문자와 숫자사이의 의미를 파악할 줄 몰랐으며 분수에 대한 두려움을 한가득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겨울에서 봄이 올 동안 등호를 써라, x를 써라, 수식을 써라, 그리고 분수연산을 반복했다. 조금씩 자리 잡혀가고 있었지만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에는 아직 부족했다. 그런데 50점이라니!      


 학교에서 성적표가 발송된 며칠 뒤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K의 실제 수학점수는 25점이었다. 어머니는 충격을 받았지만 나는 그 점수가 50점보다 훨씬 납득이 되었다. K의 다른 과목 점수는 중상위권이어서 어머니의 충격은 더 심한 듯했다. 기초가 부족했고 많이 메꿨지만 그래도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다. K에게 부족한 것은 시간뿐만은 아니었지만.. 어머니는 그날부터 매일매일 K의 숙제를 점검하고 매일매일 내게 K의 학습상황을 묻는 문자와 전화를 하셨다. 그렇게 2주일이 지났다.     


 함수의 기초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K를 남겨서 하나하나 다시 가르쳤다. K는 네네 하면서 잘 듣고 문제를 풀었는데 마이너스에 발목 잡혀 계속 틀리고 다시 풀었다. K의 얼굴은 빨개지다가 검어졌다. 원래 수업시간보다 30분을 넘기자 K의 뇌는 과부하가 걸려 아무것도 들어갈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음을 감지했다. K의 두 눈에 찰랑찰랑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오늘은 이까지 하자라고 말하자 혼자 우는 것에 익숙해 보이는 녀석은 있는 힘을 다해 눈물을 참고 얼른 가방을 챙겨 문을 열었다. 나는 K의 팔을 잡았다.  

   

K야 괜찮아?

괜찮아요

안 괜찮아 보여

괜찮아요

.... 안 괜찮아 보여. 이야기 좀 하고 가자.

.... 괜찮아요....


K는 내가 팔을 잡고 책상에 앉히자 못 이기는 척 앉더니 눈물을 주르륵 흘리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눈물을 보이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K의 손등을 내 손바닥으로 덮었다. K는 이제 제일 서러운 방식으로 울고 있었다.      


 K를 울게 만든 것은 갑자기 공부압박을 시작한 엄마도 갑자기 숙제를 많이 내주는 공부방 선생님도 아닌 자기 자신일 것이다. 학교에서 공부방에서 설명을 여러 번 들어도 문제를 풀 수 없는 자신이 한심하고 괴로워서 차오르고 차오르다가 넘쳐흐른 것일 테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고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더 절망스러워졌을 것이다. 그 절망을 누구도 공감해 줄 수 없어서 더 외로워졌을 것이다. 외롭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도 않고 위로받고 싶지도 않았지만 아직 K는 열다섯 살 미천한 중학생일 뿐이고 그건 자신을 들키지 않기엔 조금 어린 나이니까.     


 무슨 말을 걸어도 괜찮아요를 반복하던 K는 조금씩 호흡을 되찾았다. 숨을 크게 몰아쉬고 진정이 된 K를 집에 보내고 공부방으로 들어오자 공부하고 있던 열여섯 살 미천한 중학생들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잘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는 청소년에게 부정적인 자아상이 생길까 봐 걱정이 된다고 했다. 중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안타까워했다. 잘하고 싶은 마음과 실제 능력과의 차이가 발산하는 지층처럼 벌어지면 그로 인해 발생한 위치에너지에 파괴적인 결과가 생길 수도 있다. 나는 그것이 너무 걱정된다고 말했다. 중학생들은 자기들은 걱정 말라며 하하하 웃었다. 그래 새끼들아.     


수업이 다 끝난 깊은 밤에 K에게 카톡이 왔다. 

선생님 숙제 두 장 내주셨는데 한 장만 해도 되나요?

그래. 된다.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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