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Y는 좀 더 조용하고 얌전했다. 좀 더 단정한 글씨로 어려운 문제를 깨끗하게 풀었다. 속도도 빠르다. Y에게 물었다.
-이야 잘한다이~ 공부 어떻게 했냐?
내 공부방보다 공부를 더 많이 시키는 선생님을 찾아 떠나간 학생이 돌아온 건 처음이다.
대개 야망이 있는 아이들이 더 많은 학습량과 더 빠른 선행과 더 깊은 심화를 향해 나아가기 때문이다. 야망이 있는 자는 뒤돌아보지 않으니까.
돌아온 Y는 내 눈을 보고 말했다.
-선생님. 저 죽을 뻔했어요.
그래 죽을뻔했겠지. Y와 같은 6학년의 아이들은 아직 6학년내용을 하고 있는데 Y는 지난 1년 반 동안 6학년 끝내고 중1 1학기를 세 바퀴 돌았단다. 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가 있는 거지?
-매일 두세 시간씩 잡혀있었고요. 숙제도 너무 많았어요.
-숙제를 안 해가면 어떻게 되는데?
-남아서 해야죠.
-너도 남아서 했어?
-아뇨. 안 남으려고 열심히 했는데... 근데 죽을 거 같았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야망 있는 선생님은 애를 두세 시간씩 잡아서 공부를 시키지만
나는 야망이 딱히 없어서 뭐 생각나면 한 번씩 남기거나 가끔 부모님께 일러바치거나 한다.
공부방에서 공부하는데 뭐.
제법 느슨하게 굴러가는 나의 공부방.
야망도 없지만 체력도 없어서요.
-근데.. 네가 죽을 만큼 힘들게 공부해서 이렇게 실력이 쌓였는데..
다시 중1 거 해야 되는데 아깝지 않겠냐?
-괜찮아요. 저 이해 못 하고 넘어간 거 많아요. 다시 해야 돼요.
-(이럴 거면 선행 왜 하냐고 진짜)... 그래..
꾸준함은 힘듦과 친구가 아니다.
둘은 절대 친해질 수 없다. 누구 하나가 죽어나가야 되는 관계다.
꾸준하게 힘들면 생명이 위험하다. 당장은 안 죽어도 어디가 고장 난다.
아동학 전공자로서 아동을 고장 나게 할 순 없잖아.
하지만 Y의 향상된 실력을 보니 나의 굳건한 믿음이 정말 옳은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은 해봐야겠다.
1년 반동안 나는 절대로 Y를 이렇게 만들 수 없었을 텐데..
가능성이 있는 아이를 나의 느슨함으로 나태하게 만든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이럴 땐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된다.
-지금이 딱 좋아요!
-숙제 더 내주지 마세요!
-이 정도가 딱 적당하단 말이에요!
그래 이런 아이들이 모인 곳이 내 공부방이지.
죽지말고 적당하게 공부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