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니는 그냥 외삼촌네 토마토밭 이어받는 게 어떻노
-선생님 그건 저를 무시하는 발언인가요?
-아니 새끼야 저번에 갖다 준 토마토 진짜 맛있던데 이건 일반적인 토마토가 아니야!
엄청난 토마토라고! 나는 평생 이런 신선하고 꽉 찬 토마토 처음 먹어봤다고! 너야말로 토마토 무시하는 거냐! 수학 가지고는 안 되겠으니까 멋쟁이 토마토 키워보라는 거지
-선생님 전 토마토 키우기 싫어요 그니깐 토마토 키우라고 하지 마세요
-토마토마토마토마토마토마토
C는 그때까지 내가 가르친 아이들 중에 수학을 제일 못했다.
압도적이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못할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못했다. 매번 놀라웠다.
하지만 C는 늘 내게 질문했다
-이게 왜 그렇죠? 왜 이렇게 되는 거죠?
-이까지는 이해됐어요. 이다음은 다시 설명해 주세요
-음.................................................................................................................................?
깨달음의 아! 는 별로 나오지 않았고 나온다 하더라도 다음날이면 아! 는 흔적도 없었다.
수학을 못했지만 수학을 잘하고 싶은 마음은 컸기에
늘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괴로워했다. C의 눈빛에는 순수한 열등감이 늘 찰랑거리고 있었다.
-전 수학도 못하고 키도 작고 얼굴도 잘생기지 않았어요.
-하지만 성실히 공부방에 다니고 키 크려고 줄넘기도 하잖아.
-맞아요. 근데 그래도 수학은 못하고 키도 작아요.
-수학 못하고 키 작아도 토마토는 키울 수 있어.
-....... 토마토 싫어요
-토마토마토마토마토마토마토마토마토
계속되는 C의 열등감 어린 한탄을 듣기 힘들어진 아이들이 C를 위로하는 말을 해주다가 해주다가(선생님 그만 좀 토마토 거려요) 지칠 무렵 누군가의 입에서 그럼 C의 장점을 찾아보자는 말이 나왔다.
C는 목소리가 좋았다.
매력적인 동굴목소리였는데 톤도 높이도 동굴성도 매우 적당했다. 변성기임을 감안해도 좋았고 변성기가 지나면 더 좋아질 가능성이 있었다. 아이들도 다 동의했다.
-니는 여자 만날 때 전화로만 이야기해라
-제가 여자를 만날 수 있을까요?
-응 전화로만 이야기하면. 전화로 토마토의 생장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지
C가 수능을 치고 얼마 후 찾아왔다. C는 성우가 되려고 연기과에 지원했고 합격했다고 했다.
공부방 밖에서 C가 나와 대화하는 소리를 들은 중학생들이 말했다.
-와 목소리 좋다~
-정말 좋다~
토마토는 포기했냐고 물으니 C는 웃으며 토마토는 자기 길이 아니라고 했다. 더 이상 내가 토마토로 놀릴 수 없도록 자신의 멋진 목소리를 길로 만들어 나갈 C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나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는 머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