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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앗줄

잡아라 꼭 잡으라고

by 파로암

요즘 학원은 교육이 아니라 보육이네요

그냥 탁아소에요.

재미있게 즐겁게 공부하면서 어떻게 성적을 올린다는 건지.

학원다니는 애가 공부가 힘들지 않고 재밌다고 하면 당장 끊으세요.

공부가 힘들어야 성적이 오르죠.


탁아소

이 경우 탁아소란 한심하고 무책임하다는 뜻의 욕이다. 중학생이 되어 첫 시험을 치고 충격받은 아이들에게 노는 학원에 다녀서 그렇다고 한다. 시간과 돈이 아깝다며. 고등학생이 되어 첫 모의고사를 치고 생각지도 못한 등급을 받은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고등부학원선생님이 하는 말이다. 어릴 때 놀아버릇해가지고 학습량과 난이도가 올라갔을 때 감당을 못하는 거라며.


그게 아냐! 그냥 머리가 안좋은 거라고! 멍청이!

고등수학의 학습량과 난이도를 쳐내지 못하는 아이들은 선행을 몇 바퀴 돌려도 못한다. 학습능력은 철저히 너무나도 잔인하게 유전이 결정한다. 어차피 결정되어 있다면 즐겁게 공부해야지.

나의 탁아소 같은 공부방의 목표는 중학교 때 수학공부를 포기하지 않는 것. 해당학년의 기본개념을 충분히 시간들여 익히는 것. 선행은 절대악이며 심화는 후춧가루 뿌리듯 약간만. 정도를 벗어난 노력은 최상급발암물질이다. 나는 암에 걸리고 싶지 않고 나의 사랑스런 고객님들도 암걸리게 하고 싶지 않다. 편하게 가자고. 고등학교 가서 해보고 안되면 그때도 될만큼만 하라고.


특히 2024년에 아이들 성적을 많이 올렸다. 중학교 첫시험에서 충격을 받은 아이들이 소개로 줄줄이 들어왔다. 다른 학원들은 다 선행을 나가서 다닐 수 있는 학원이 없어서 걱정했는데 선생님은 정말 동앗줄이에요~ 하면서 줄줄이 들어왔다. 덧셈뺄셈도 제대로 안됐고 x와 y를 쓰는 것도 어색했고 분수연산은 틀림없이 틀렸고 수식을 제대로 쓰지도 못했다. 다행히 다들 공부에 대한 의지는 있어서 하나하나 가르쳤더니 쫍쫍 흡수했다. 한번 시험을 망친 아이들의 위기감은 내게도 아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었다. 아이들 속에 꼬물거리던 수학에 대한 애증이 평범한 감정으로 바뀌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들은 수학에 대해서 사람취급을 못받았는데 이제 사람취급을 받는다며 내게 감사함을 표했다. 불가촉천민에서 평민이 된 것이다. 나의 운영방침이 탁아소의 그것이 아니었다면 이 아이들은 마음을 열지 못했을 것이다.


힘들이며 공부하지 않아도 평민 정도는 될 수 있다. 브라만들이 피를 토하며 1등급이 되기 위해 또는 유지하기 위해 잠을 줄이고 밥을 위에 쑤셔넣고 뇌를 학대하며 지식을 집어 넣을 때 평민들은 게임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부르고 정치에 대해 토론도 하며 시간을 낭비하고 삶을 허비한다. 생각나면 학원숙제도 좀 하고. 이게 정상이지.


무리하고 싶지 않다.

내 공부방을 탁아소라 비난하는 브라만원장님들이 존재하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겠다. 꼭짓점의 브라만들에게 비록 지배당하겠지만 평민들은 쪽수가 많다. 불가촉천민들의 동앗줄이 되어서 평민으로 끌어올려주겠다.

수학 못해서 숨어서 울고 있는 불가촉천민들여 내게로 오라.


평범한 햇빛이 비치는 아늑한 수학의 들판으로 데려가 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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