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시험지가 내 책상에 놓인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내쉰다. 1번을 본다. 1번은 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개념을 물어보는 기초문제이다. 여기서 많이 헷갈린다고 선생님이 OX 문제를 잔뜩 만들어줬다. 하나라도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했다. 조금이라도 헷갈리면 안된다고. 미심쩍은 부분이 하나도 없이 모든 곳이 환하게 밝아야 한다고 선생님이 그랬다. 그 밝은 개념들을 다시 뒤적거려 보기 중에 옳은 것을 골라내야 한다.
그 뒤로 단순계산 문제가 이어진다. 개념을 이해하고 문제를 풀 수 있으나 계산실수 때문에 틀려서 선생님에게 자주 뺨을 맞았다. 구구단을 틀리고 더하기를 틀리고 빼기를 틀렸다. 나 자신이 싫어지려고 할 때 선생님이 뺨을 때리는 바람에 선생님을 싫어할 수 있었다. 나 자신을 싫어하는 것보다 선생님의 손을 싫어하는 것이 멘탈에 더 좋다. 선생님 손길이 남아있는 뺨을 느끼며 계산실수한 부분을 고쳤다. 숫자 하나하나를 허투루 보지말라고 걔들이 가진 의미를 소중히 다루라고 선생님이 귀에다 속삭이기도 하고 고막이 튕길 정도로 크게 말하기도 했다.
이윽고 응용문제가 나온다. 교과서에서 본 문제이지만 숫자도 바뀌고 내용도 조금 다르다. 머리의 엔진이 RPM을 올리는 것이 느껴진다. 이 느낌이 좋다. 손이 저절로 움직여 식을 세우고 있다. 이게 맞나 싶은 순간 답이 나온다. 흉측하게 생긴 답이다. 의심스럽다. 나의 뇌가 제대로 움직인것인지 출제자의 의도대로 움직인 것인지 무척 의심스럽고 저 기괴한 몰골이 의심스럽다. 다시 풀어보고 싶지만 아직 남은 문제가 많다. 선생님이 일단 끝까지 다 풀고 새로 풀어야 한다고 했다. 찝찝한 마음을 한쪽구석에 몰아넣고 다음 문제로 넘어간다.
생전처음보는 문제다. 이렇게 생긴 그래프를 본 적은 있지만 이 그래프에서 유도되는 함수식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래서 이걸 어쩌란거지? 건드린 적 없는 전두엽의 어느 부분을 건드려야 한다. 내 신경전달물질이 그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믿어. 네가 공부한 시간을 믿어. 네가 반복한 문제지의 두께를 믿어. 네가 믿을 건 너의 성실함뿐이야. 너의 머리를 믿지 마. 네 머리 별로 안좋거든. 네가 쌓아온 시간을 믿는거야. 그건 힘이 무척 세다고. 흔들리는 머리를 붙잡고 나의 시간을 믿고 다시 한번 문제를 읽어본다. 꾸역꾸역 지금까지 밀어넣은 수학에서 뭐라도 잡혀 나오길 기대하며 머릿속을 휘저었다.
마지막 문제를 풀다가 포기하고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니 시간은 아직 좀 남아있다. 넘긴 문제들을 다시 봐야한다. 아직 머릿속 엔진은 잘 돌아간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 사락사락 시험지를 처음으로 돌린다. 못풀었던 문제들을 다시 본다. 아까 막혔던 부분에서 다시 고민한다. 이것저것 숫자를 써보고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어본다. 뭐라도 나와라 기대하면서.
시험이 끝났다.
옳은 것 3개를 골라야 하는데 2개는 맞고 1개는 틀렸다.
9×7=64로 계산해서 틀렸다
모양도 흉측한 분수 답이 아무래도 이상해서 고쳤더니 그 흉측한 게 정답이었다.
머릿속을 끝까지 헤집어 어떻게든 풀었지만 처음부터 방향을 잘못 잡았다고 선생님이 그랬다.
선생님은 내 시험지를 보고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리고 RAP을 시작한다.
야이새끼야 전부 여러번 풀었던 문제잖아 새끼야
내가 하지 말라고 한 짓을 다 했네 새끼야
이놈의 새끼야 내가 가르친 새끼야
아이고 세상에
얼굴이 벌개진 선생님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고갱님. 이제 2차고사 준비하셔야죠.
네 그러믄요. 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