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신라의 달밤 165리 걷기 대회

걷기를 포기

by 파로암





23회 대회는 6월에 열린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신청해서 번호가 빠르다.


4번!


출발구역에서 5번 참가자를 발견했다.














어 저 4번이에요 반가워요


저도 반가워요


이번이 몇 번째 참가세요?


전 열한 번째요


우와 전 두 번째예요














11번이나 참가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부럽고

미치게 부럽고 나도 그랬으면 좋겠고.


왜냐하면,




























불과 두 달 전 상태가 이랬기 때문이다.


대동맥이 터지는 바람에 급사할 뻔했는데

여러 행운이 겹쳐 살았다.
















22회 대회 참가 이후 척추(분리증으로 인한 협착시작)와 무릎(인대염증)도 안 좋아져서


대회참가가 불투명했지만 포기하더라도

해보자 싶어서 얼른 신청해 버렸는데


척추와 무릎이야 물리치료 도수치료로 어떻게 한다 쳐도


대동맥이 터질랑 말랑 목숨줄을 쥐고 왔다 갔다 하니

어쩔 수 있나.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심장혈관 흉부외과 의사가


맥박 100 이상 활동은 절대 금지


40분 이상 걷는 것 금지


그 외 운동 절대 금지


지금도 죽을뻔하고 있는 중이니까


금지. 금지. 금지.








대동맥박리는 향후 생존율도 낮아서


에라이 어차피 디질거 실컷 걷다가 디져불까 싶다가


그러면 가족친지 및 친구들이 나를 때려죽이겠구나 싶어서 의사의 말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대회를 취소하지 않았다는 말을 꺼내면 모두가

나를 비난하고 핍박하고 구박했다.


내게는 서러울 권리가 전혀 없다.


내 목숨이 내 목숨이 아니란 말이여.



































생각보다 대회에 대한 집착이 질겨가지고


결국 취소를 못하고 대회에 와버렸다.


5번 참가자님도 대회가 너무 재밌어서

계속 참가한다고 하셨다.








오전에 비가 많이 왔지만 오후엔 날씨가 좋았다.


저 파란 하늘을 보았니.










블로그에서 알게 된 사부작 걷기의 달인을 만날 수 있을까 기대를 하고 왔는데


운 좋게 만나서 인사를 할 수 있었다.




분 덕에 알게 된


오륙도 투나잇 대회도


밀양 100km 대회도


태안 걷기 대회도


제주도 한 바퀴 대회도


3.1절 걷기 대회도 모두 나가고 싶었다.














그렇게 걸어온 사람들이 바로 저기 우글우글 있는데


나는 왜 못하는 거지


나는 왜 못하는 거야











... 살아는 있잖아...


서방이 위로했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부러웠다.


나는 10km조차 걷지 못하는데...




사실 2024 대회 때 66km 배번을 달고 걸으면서


30km 참가자를 놀렸었다.


그깟 30km 하면서.


나는 이제 10km조차 걷지 못하는데 말입니다.










원래 배번표와 간식과 만파식적만 받아서 갈 생각이었는데


막상 오니까 걷고 싶어서 서방과 딜을 했다.








3km만 걷고 포기할게.


안돼.


그럼 1km.


알았어.


































66km 참가자들 속에서 걷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찍히지 못할 체크카드를 받고


완주하지 못할 걸 알면서


완주를 응원해 주시는 분들의 파이팅에 답을 했다.




파이팅!!!


완주하세요!! 네!!!








저 멀리 걸어가는 참가자들이 보인다
















서방과 같이 오지 않았다면 계속 걸어갔을 것이다.






목숨을 걸고서.





내 아이들의 엄마의 목숨을 걸고.


내 서방의 부인의 목숨을 걸고.


내 엄마의 딸의 목숨을 걸고.


내 언니의 동생의 목숨을 걸고.


내 친구들의 친구의 목숨을 걸고서.








하지만 서방은 정확히 1km 되는 지점에서 나를 낚아챘고


나는 아직 시작의 열기가 가득한 대열에서 빠져나와

미련이 가득한 손으로 배번표를 가방에서 뗐다.










아무것도 찍히지 못한 체크카드.


















소리 내어 울고 있는 내게 서방이 말했다.


완치되면 같이 와서 걷자.




친구에게 메시지가 왔다.


포기하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야.




신라의 달밤 165리 걷기 대회는


작년에는 완주의 기쁨과 대회의 즐거움과


극심한 다리통증을 주었고


올해는 포기의 용기에 대해 가르쳤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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