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 갉기

사과를 받지 않고 용서를 하지 않는다.

by 파로암

도영아 네가 지금 해야 할 일이 뭐야

-사과요!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나는 네 말을 믿지 않아. 너는 다시는 안 그렇겠다는 말을 십 년 동안 계속 자주 해왔을 거야. 그리고 그 행동을 다시 했겠지. 넌 사과를 습관적으로 해. 왜냐하면 네 말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야. 난 네 말을 믿지 않고 앞으로도 믿을 생각이 없어. 너는 여기 다니는 동안 아니 죽을 때까지 나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할 거야. 그게 무슨 의미인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줄게.


앞으로도 공부방에는 이런 일이 일어날 거야. 비누를 몰래 갉아놓는다던가. 그러면 나는 너부터 의심할 거야. 넌 아니라고 하겠지. 하지만 나의 의심은 확실한 범인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너를 향해. 내 의심을 벗어나기 위해 네가 어떤 말을 해도 어떤 행동을 해도 쉽게 거둬지지 않을 의심을 너를 향해 쏘아 올리겠어. 그게 네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야.


넌 나에게 물었지. 공부방을 하면서 어떤 때가 가장 힘들었냐고. 난 너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대답하지 않았어. 대답의 지체와 불확실성이 너를 괴롭힐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그랬어. 지금이라도 네 물음에 대답해 보자면 내가 공부방을 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은 가차 없이 떠나간 아이에게 붙여놓은 정을 떼는 일이야. 그에 비해 거짓말하는 아이를 괴롭히는 것은 아주 즐거운 일이지. 지금처럼. 아주 재미있고 즐거운 일이야. 네가 내게 재미를 주었다고 해서 너를 용서한다는 건 아냐. 그건 불가능해.


네 어머니가 내게 문자를 보내셨어. 죄송하다고. 아들을 잘못 키워서 죄송하다고. 아니야. 네 어머니는 아들을 잘못 키우지 않았어. 네 어머니가 내게 죄송할 일은 전혀 아무것도 절대적으로 없어. 네 어머니는 원래부터 좋으신 분이고 네가 사회 안에서 잘 자라날 수 있게 애쓰고 계셔. 너는 올바른 어머니의 보호 속에서 거짓말을 내게 최소한 3번 했어. 내 불신은 오로지 너를 향할 뿐 너의 어머니를 향할 수 없어. 내가 긁힌 비누를 3번 봤고 너는 3번 부인했지. 왜냐하면 쉽게 용서받았기 때문이야. 난 네게 용서받지 못함을 가르쳐야겠어. 이제 너는 어떻게 해야 할까.

도영이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저 눈물이 흐를까. 도영이는 숨을 들이마시며 눈물을 다시 집어넣는다. 흐르지 않는 도영이 눈 속의 눈물을 보며 저걸 콸콸 흐르게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다시는 잊지 못할 만큼 펑펑 울게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도영이는 이미 3년쯤 전에 그렇게 울었을 것이다. 나는 도영이를 그렇게 울릴 수 없다. 더 어릴 때는 가능했을 테지만 이미 도영이는 십 년을 살았다. 늘 활기차게 떠들던 도영이의 입은 굳게 닫혔고 쉴 새 없이 그림을 그리던 손가락도 멈췄다. 도영이를 가만히 조용하게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어려운 일을 했다. 다음도 할 수 있다. 지금 움직이는 건 저 작은 머리통 속. 10년을 산 아이의 머릿속에 도대체 무슨 생각이 떠올랐을지 전혀 알 수 없다.


비누를 사 와. 네가 긁어놓은 건 내가 아니라 비누니까.

.... 비누 어디 팔아요?

편의점에도 팔고 슈퍼에도 팔고 마트에도 파는데 마트는 혼자 가기 좀 멀지?

... 올리브영에도 팔아요?

응. 팔 거야. 돈은 있어?

.. 네... 카드도 있고 돈도 있는데... 비누 얼마해요?

3000원쯤? 네가 비누 사 오면 비누값은 내가 줄 거야.

엄마나 누나가 아니라 네가 사야 해.

저기 오늘은 학원이 많아서 힘들고요. 내일 사 올게요. 선생님.

내일 수업은 없지만 기다리고 있을게.


다음날 나를 찾아온 도영이는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주섬주섬 비누 2개를 꺼냈다. 늘 집에서 쓰던 분홍색 장미향 비누였다. 내 눈을 보지 않고 비누를 내밀었다.

얼마야?

3000원이요. 제가 거기 있는 것 중에 제일 비싼 거 샀어요.

나는 지갑에서 천 원짜리 세 장을 꺼내어 도영이 손에 쥐어주고 도영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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