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라는 말을 하기가 싫습니다. 공부는 아무래도 누군가에게는 전혀 쓸모없는 짓입니다. 너무나 고통스럽고 해 봤자 소용없는 짓입니다. 그렇게 힘들게 공부해서 수학 12점 받아오는 아이에게 돌아오는 것은 공부방 수업료를 결제하는 부모님의 한숨과 안타까움과 혹은 분노 또는 자학입니다. 아무리 과정이 중요하다 한들 수학 12점은 어떤 방향으로든 세상의 인정을 받을 순 없습니다. 나름대로 공부한 거라고 해도 아무도 믿지 않고 그저 놀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문제를 푸는 아이들에게 생각을 제발 좀 하라고 합니다. 그 아이들의 뇌 속에 들어가 뉴런을 하나하나 연결해주고 싶습니다. 그게 공부방에서 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각 머리당 뉴런은 천억 개 있고 그것은 하늘의 별과 맞먹는 수치입니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외부적인 자극을 주는 수밖에 없는데 내적동기에 비하면 외부자극은 장수말벌과 콩벌레정도랄까요. 나는 한없이 아이들에게 콩벌레를 던집니다. 툭. 툭.
아이들은 가끔 내 말에 큰 영향을 받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교육 관련종사자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의 무게를 아는 교육 관련 종사자는 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무게를 가끔 공중에 띄워버리고 아이들을 조롱하고 놀리고 그들의 미천함을 일깨워줍니다. 그만둔 고객님들 중에는 하도 미천하다 그래서 그만둔 아이도 있을지 모릅니다. 나는 모르죠. 말을 안 하니.
내일 영어시험인 나의 자식이 시험범위인 5과 6과 중 5 과를 다 했다며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언니와 신이 나서 뭐를 깼니 안 깼니 다 깨부수고 있습니다. 정말 즐거워 보입니다. 옆 수학집 딸내미는 서울대도 가고 연세대도 가고 그래서 아주 손님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는데 우리 수학집 딸내미는 눈동자가 동그랗고 귀가 쫑긋한 토끼가 되어 어두운 세상을 다 때려 부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새끼들에게 선언했습니다.
이제부터 공부잡도리는 하지 않겠다.
그러나 중학생에게는 6과 안 하냐고 고등학생에게는 학원 숙제 좀 하라고 했습니다. 말을 하는 순간에도 그런 종류의 말이 공기를 떨리게 하는 것이 싫습니다. 공부하라고 공부방 보내놨더니 공부방 선생님이 공부하라 소리 하기를 싫어하면 어쩌잔 말입니까. 아. 근데 내 새끼든 남의 새끼든 멱살 잡고 끌고 오는 일은 너무나 힘듭니다. 숨이 차고 맥박이 빨리 뛰고 혈압이 오릅니다. 모두 의사에게 금지당한 일입니다.
공부하라는 소리가 싫은 것은 그 소리를 해서 좋은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못하니까 또는 안 하니까 잔소리가 나오는데 그렇다고 드라마틱한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오히려 관계를 망치고 기분을 망치고 가끔 정도가 심했다면 살인까지도 일어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대에 누워 놀고 있는 내가 낳은 학생들을 견디기가 힘들어요. 매일매일 내 속에서는 해야 해 말아야 해 둘로 분열된 부모의 자아가 격렬히 싸웁니다. 싸움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허구한 날 처싸우는 건 무척 힘듭니다
토요일 아침에 아이들을 깨워서 도서관에 갑니다. 나는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고 자식들은 공부를 합니다. 두세 시간 하고 나면 모두가 지칩니다. 지구력은 나도 없고 쟤들도 없고 유전적으로 없습니다.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와 모두가 잠이 듭니다. 그렇게 몇 번의 토요일을 보내고 나니 자식이 말합니다.
- 다음 주에도 가?
-응
자식은 가기 싫은 표정입니다. 저 표정을 본 내 표정도 싫은 표정입니다. 모두가 싫은데 그래도 해야 하고,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게 그나마 어른이고 부모인 나의 역할이라는 것이 싫습니다. 쥘 수도 버릴 수도 없어 어정쩡하게 서있는 자신이 싫어지려 합니다.
아이들이 자라는 것이 좋았습니다.
1살 3살일 때는 아이들도 나도 자주 엉엉 서럽게 울었고 13살 15살 일 때는 아이들도 나도 전혀 울지 않았습니다. 빨래를 개고 설거지를 하는 등 실용성이 생겼을 때는 신기했고 논리적으로 타당한 주장을 펼쳤을 때는 무척 기뻤습니다. 그 주장이 나에게 반박하는 거라 해도 말이지요. 더 지적인 능력을 갖추고 내 말문을 턱 막히게 하면 좋겠습니다. 내가 읽지 않은 플라톤의 국가론을 들고 있는 자식이 너무나 좋습니다. 모든 분야에서 나를 능가했으면 좋겠습니다. 내 잔소리 없이 말이지요. 지적 능력을 갖춘 딸이 갖고 싶어요. 강요 없이 말이지요. 자연스럽게.
강요하는 것과 강요당하는 것을 제일 싫어하기 때문에 강요해야만 하는 지금 상황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3년 반. 파도 아래로 몸을 낮추고 스르륵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 공부하라는 말을 하기가 너무나 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