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재의 친환경활동

by 파로암

민재는 전등을 잘 끄고 절전멀티탭을 사용하고 10km 정도는 걸어 다니고 그 이상은 자전거를 탄다. 플라스틱보다는 유리용기를 좋아하고 장 보러 갈 때는 장바구니를 꼭 챙긴다. 물티슈는 쓰지 않는다.


민재의 옷장에는 옷이 별로 없다. 옷이야말로 집을 어지럽히는 주범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옷은 갈아입을 때마다 신경을 써서 정리하지 않으면 집안을 먼지투성이로 만들고 관리도 매우 까다롭다. 민재는 옷을 살 때 매우 신중하다. 머릿속에서 자신의 생활패턴에 어울리는 옷을 결정하는데 몇 달이 걸렸고 그에 맞는 옷을 고르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맞는 옷을 겨우 찾아내어도 가격이 안 맞으면 다시 시간을 충분히 들여서 고민했다. 한번 산 옷은 몇 년을 입었고 그래서 늘 비슷한 껍데기로 다녔다. 민재는 신발은 최소 6 계절을 신는다는 원칙이 있다. 러닝이 취미인 자들은 6개월에 한 번씩 새 신발을 사야 한다고 하지만 민재는 닳은 운동화를 빨아서 계속 신었다.


민재는 화장품도 거의 사지 않는다. 민재는 여기저기서 받은 화장품들을 바른다. 어느 때는 아이크림을 온 얼굴에 펴 바르고 어떤 때는 비싼 영양크림을, 때로는 굴러다니던 샘플을 쓴다. 정말 바를 것이 없어서 올리브영에 가서 로션을 사러 가는 민재의 얼굴은 며칠간 로션을 바르지 않아 버석버석했다. 로션을 사고 난 다음날 친구가 좋은 거라며 로션인지 에센스인지 앰플인지를 주었다. 민재는 거울 앞에 놓인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고도로 발달한 친환경활동가는 거지와 다를 바가 없다고 했다.

민재는 거지가 아니지만 가끔 거지 같다고 느낄 때는 있었다. 누군가가 친환경활동이라며 엄청 뿌듯해하며 하는 활동을 민재는 이미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 민재는 자신의 좁은 집과 적은 수입이 만들어낸 강제적인 친환경활동이 씁쓸했다. 집이 좁아서 옷을 많이 놔둘 수 없기에 옷을 살 수 없고 뭔가 살 돈이 없기에 안 샀던 것이다. 민재의 집이 넓고 수입이 많았다면 민재는 친환경활동을 이렇게 자연스럽게 했을까. 미니멀리스트가 되어 닳은 신발을 신고 5년 된 바람막이를 입었을까.


민재는 여가시간을 주로 걷거나 읽거나 쓰거나 그리는데 보낸다. 모두 돈도 들지 않고 탄소발생도 거의 없는 환경에 매우 좋은 취미이다. 나무를 온통 베어낸 잔디밭에서 매번 선명한 새 옷을 입고 캐디를 부려가며 겁나 비싼 도구들을 휘두르고 다니는 사람들과는 대화할 일이 별로 없다. 가끔 골프인들과 대화를 나누면 결코 통과할 수 없는 벽을 더듬게 된다. 골프인들이 친환경어쩌구 하는 말을 들으면 민재는 가만히 그들을 비웃는다. 지랄하네. 하지만 그걸 입 밖으로 내진 않는다.


민재는 소파와 냉장고와 침대와 이불과 차를 수시로 바꾸는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 거위털이불이 너무나 따뜻하고 가볍다는 친구의 강아지는 직접 만든 수제 소고기육포를 뜯고 있었다. 새 냉장고에서 방금 꺼낸 차가운 맥주를 마시며 친구는 친환경제품을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기업의 도덕적 해이는 참을 수 없다고 말하는 친구의 입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했다. 지랄하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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