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호의 여행
은호는 빠르게 차를 몰았다. 시골길을 시속 80킬로미터로 달리면 아무래도 충격이 크게 마련인데 조수석에 앉은 그는 살살 운전하라고 투덜거렸다. 빨리 가자고 한건 자기면서 빨리 가고 있는데 짜증을 내면 뭐 어쩌자는건지. 어쨌든 은호의 마음은 급해져서 엑셀에서 발을 뗄 수 없었다.
놀이공원은 스산했다. 국내최고 인기놀이기구는 운행을 하지 않았고 덕분에 사람도 별로 없었고 줄도 없어서 운행하는 놀이기구는 두 세번씩 바로 탈 수 있었다. 튤립이 가득했을 꽃밭에는 흙이 칙칙했다. 사파리의 동물들은 생기없이 돌아다녔고 커다란 기린의 혀를 바로 눈 앞에서 본 은호는 감탄했다. 혀가 내 팔뚝만하네.
올때부터 뭔가 마음에 안들던 그가 다리아프다고 해서 입구에 있는 스타벅스에 가서 앉았다. 둘은 음료를 주문하고 마시는 내내 말이 없었다. 은호의 옆자리에는 바이킹 스무번 타고 토한 지친 초딩이 잠들어있었다. 초딩의 엄마 역시 속이 안좋은 듯 했다. 모자의 모습을 그리고 싶어진 은호는 가방에서 스케치북을 꺼냈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은호에게 그가 말했다.
나랑 놀러온 거 아냐?
스케치북에서 눈을 떼고 그를 바라봤다. 그는 은호를 쏘아보더니 손을 내밀었다.
차키 줘.
은호는 주섬주섬 가방과 주머니를 뒤져 차키를 내밀었다. 은호의 손에서 차키를 집어든 그는 자기가 마신 컵을 반납한 뒤 스타벅스를 나갔다. 은호는 스케치를 계속 했다. 이윽고 초딩이 몸을 꿈틀거리며 일어나자 은호는 모자에게 다가가 그림을 내밀었다. 허락안받고 그려서 죄송해요. 두분 모습 그려봤어요.
초딩의 모친은 그림을 보고 기뻐했다. 가지실래요? 모자가 그림을 보며 웃는 모습을 보고 가방을 챙겨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검색해보고 터덜터덜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어갔다. 곳곳에 쌓인 녹지 않은 눈이 지저분했다. 올때는 1시간 30분이 걸렸고 갈때는 2시간 24분이 걸린다. 돌아가는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