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말

말그릇을 예쁘게 만들고 있습니다.

by 소원 이의정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잃어버린 것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우리의 DNA 속에는 성장하면서 그리고 사회와 부딪끼면서 각자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수세기를 회귀하고 반복해서 이 생을 살고 있는 것이라면 나의 세포의 역사는 아마도 강력하며 호기심 강한 남성으로 투쟁의 역사를 썼을 것이며 순종하지 않는 삶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생에는 순종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투쟁보다는 타협을 실천하며 우아하고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무작정 경험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지혜로운 자들의 책을 읽으며 마음의 양식을 쌓아가고 있다. 선을 행하고 착한 마음으로 예쁜 말만 하고 싶다.


내가 예쁜 말을 언제까지 했었을까? 예쁜 말을 하기는 했었을까?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취급을 받고 싶다면 내가 먼저 그렇게 행동하면 된다고 누군가 말하지 않았나?

이렇듯 내가 누군가에게 예쁜 말을 듣고 싶다면 내가 먼저 예쁜 말을 건네면 될 것이다.

이론적으로 아는 게 너무도 많은 나는 항상 생각과 행동이 어긋나곤 했다.

아니 여전히 나의 생각과 행동은 늘 어긋나기 일쑤다.


그래도 우리네 인생은 어느 시점에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되는 시기가 있지 않은가?

거친 야생마같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으로 일생을 살다가 인생의 변곡점을 맞이한 것이 바로 임신과 출산과 육아였던 것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예쁜 말을 알아가기 시작했고 내 안에 숨어 있던 그 말들이 스스럼없이 튀어나왔다. 사랑스러운 말과 행동이 아이를 키우며 생기기 시작했다.


며칠 전 아들의 행동을 보며 나에게 이런 생명체가 나올 수 있는 건가 정말 믿기지 않는 상황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그날은 나에게는 아주 하찮은 빼빼로데이라는 날이었다.

"엄마, 나 부탁이 있는데 빼빼로 좀 사다 주면 안 될까?"

"어? 빼빼로는 왜?"

"내일 빼빼로데이잖아. 10개 정도 필요한데."


어찌어찌하여 다양한 빼빼로를 아들에게 안겨주었다. 아들은 내 책상에 있는 벚꽃에디션 포스트잇에 빼빼로 주인이 될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씩 적기 시작했다. 담임선생님을 시작으로 친한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씩 적더니 할머니 빼빼로까지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빼빼로의 포스트잇 문구를 적고는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건네주었다.


수십 년을 살면서 이렇게 감동을 주는 생명체를 만난 적이 있었던가?

내 인생에서 이토록 감동적인 아침은 없었던 것 같았다.

"아들, 넌 누굴 닮았니? 어쩜 이렇게 섬세하고 자상해?"

(아무래도 이 아이는 나의 DNA는 많이 물려받지 않은 듯 보인다.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등교시간이 임박하여 서둘러 나가고 있는데 아들이 안절부절못하는 듯 보였다.

친한 친구 한 명의 빼빼로를 깜박한 것이다.


"아들, 엄마걸로 줘. 그리고 엄마는 이따 퇴근하고 올 때 사 오면 되잖아. 아침에 받은 걸로 두 배의 기쁨이 될 거야."

아들은 포스트잇에 빠르게 친구의 이름을 써놓고 붙였다. 그리고 우리는 학교로 향했다. 그런데 아들이 부탁이 있다며 아파트 앞 편의점에 잠시 다녀온다는 것이다. 그러다 학교에 늦을 것 같았는데 너무 고집을 피워서 허락했다. 그리고 아들은 아까 나에게 줬던 똑같은 빼빼로를 사서 다시 내게 주었다.


"아들!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고마워." 다시 생각해도 뭉클하다.

받아쓰기 백점 받으면 만원씩 받던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 그중에 만원을 몰래 바지 주머니에 챙겨 넣고 편의점에 들러 나에게 그 소중한 빼빼로를 준 것이다.

"그래도 다 주는 거니까 엄마 거도 있어야 해. 사랑해."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지만 꾹 참고 아들 이마에 뽀뽀해 줬다.


예쁜 말.

언제고 누구에게서도 듣고 싶은 말이 아닐까?

나는 오늘 몇 번이나 예쁜 말을 했을까?

이렇게 힘이 되는 말을 누군가에게 했을 때 얼마나 뿌듯하고 행복할까?


나는 남들보다 백배는 노력해야 한다. 왜냐면 나는 저항과 반항의 역사를 써 내려가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제보다 더 괜찮아진 오늘, 오늘보다 더 괜찮은 멋진 내가 되는 내일.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괜찮은 내가 있을 것이라 굳게 믿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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