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콘스탄트 Aug 26. 2024

멸망한대도 사랑하겠어!

10화

텍사스 본사의 화상 회의 공간은  반원 형태의 참가자들과 또 다른 반원의 대형 스크린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참석자들 앞의 모니터에는 오늘 발표자들의 프로필과 발표자료가 순서대로 보이고 있었다. 


“자! 다들 우주 전문가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그렇고 한국서도 유명한 이름도 우주인 이분의 발표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손박사! 잘 지내셨소?” 


머스코는 특별히 손우주에게 안부를 물었다. 그는 미국 MIT에서 엄청난 업적을 이룬 우주과학의 라이징 스타였었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많이 아쉬워했던 머스코였고 그의 알코올 중독이 아니라면 스카우트를 할 생각이었다. 


“프레지던트 머스코, 반갑습니다.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손우주의 유창한 영어 실력에 나성대는 기가 죽었다. 이 회의에서 나왔던 안건이나 대화 내용을 거의 못 알아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머스코는 대 놓고 손우주의 발표를 듣기로 했고 마지막 순서였던 우주의 발표를 앞당겨하기로 했다.


“다들 괜찮으시다면 그럼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제가 들고 온 자료는 핵융합으로 탐사정을 쏘아 올려 최대한 많은 인원을 싣고 어느 거리까지 갈 수 있는지입니다.” 


손우주의 발표에 모든 사람들이 집중했고 그의 탐사정은 최대 인원 4명을 태우고 토성까지 다녀올 수 있는 궤도를 그리며 말했다.


“현재 핵융합 엔진으로 토성까지 다녀오는 시간은 대략 8년입니다. 그 사이 대원들이 반 냉동 상태로 수면을 취하고 혹시라도 생길 질병을 대비해서 줄기세포로 세포 이식을 하는 것까지 감안하고 있습니다.”


손우주의 발표에 머스코는 일어서서 박수를 쳤다. 


“좋아! 손박사! 지금 프로젝트를 좀 더 연구하면 우리는 좀 더 빠른 시간 안에 다녀올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광속을 이길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이야 있으니까. 그거 좋습니다. 반 냉동 상태로 수면을 하는 방법. 줄기세포로 질병을 대체하는 방법! 역시 미스터 손!”


이후 발표자들의 순서가 있었지만 이미 한 시간 이상이 흘렀고 머스코는 지루해 하기 시작했다. 이후 발표자들의 발표 내용은 이미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그는 비서 클레어에게 귓속말을 한 후 회의장을 떠났다. 클레어는 L에게 가지 않고 석건우에게 바로 가서 그에게 귓속말로 머스코 회장의 메시지를 전했다. 


‘저년이!’ 


L은 클레어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아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석건우는 살짝 목례를 하고 L에게 손짓으로 나가자고 표시했다. 그녀는 짐을 챙겨 그를 따라 나갔다. 

머스코 회장과 클레어는 검은색 리무진에 올라탄 상태였다. 그리고 석건우와 L이 올라타자 리무진의 창문 색이 완전 불투명 색으로 변했다. 밖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운전석부터 후면까지 바깥 풍경이 통제되어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머스코 회장, 지금 비밀의 정원으로 가는 겁니까?”


“그렇소. 미스터 석과 내가 취향이 맞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우리의 취향대로 준비가 된 곳입니다. 우선 도착하면 갈아입을 옷과 가면을 줄 거요. 오늘은 처음이니 내가 안내를 하지.” 


리무진을 타고 삼십 분 정도를 달렸다. 클레어가 짐을 챙기는 모습을 보고 L도 짐을 챙겼다. 차가 정지했고 자동으로 문이 열렸다. 지하 주차장이었다. 파티용 가면을 쓴 보디가드 네 명이 우리를 맞이했다. 


“미스터 석, 따라오시죠.”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올라갔다. 머스코의 안내에 따라 룸으로 들어갔다. 남녀 탈의실이 따로 있었다. 남자는 무릎길이의 검은색 가운이었고 여자는 보라색 시폰으로 만들어진 시스루 가운이었다. 남자보다 더 짧아 자칫 잘 못 하면 허리를 숙이는 순간 엉덩이가 보일 정도였다. 


네 명은 모두 옷을 갈아입고 중앙에 놓여 있는 커다란 액세서리 테이블에서 원하는 가면을 골랐다. 석건우는 생각할 것도 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썼고 맞은편에 서 있는 L을 눈으로 먹고 있었다. L은 말랐지만 클레어보다 더 큰 가슴으로 가운 상의가 벌어질 정도였다. 일부로 작은 가운을 택한 건지 굴곡진 몸에 밀착된 상태였다. 

L의 잘록한 허리 아래로 수술을 한 것 같은 풍만한 엉덩이는 이곳의 모든 남자들이 한 번쯤은 만지고 싶어 안달일 정도였다. 


L의 모습을 본 클레어는 경쟁심이 꺾이고 말았다. 동양인 여자들에서는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풍만하고 육감적인 몸매였던 것이다. 보라색 시스루 시폰 가운이 클레어의 빈약한 가슴에는 그저 병원 가운처럼 정직하게 가려졌기 때문이다. 


“와우! L! 이렇게 존재감이 있는 사람이라니, 미스터 석! 어디서 이런 비서를 뽑으셨소?” 


머스코는 흥분한 불곰처럼 침을 튀기며 말했다. 마치 맛 좋은 꿀통을 눈앞에 두고 언제 먹을까 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석건우는 그의 흥분한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가 원한다면 공유할 수 있다는 마음을 먹었다.  


머스코는 L에게 팔짱을 끼라고 오른팔을 굽혔다. L은 탈의실에서 고른 토끼 꼬리같이 생긴 핑크색 퍼가 장식된 실내용 힐을 신고 더욱 요염하게 걸어가 그에게 팔짱을 꼈다. 그러자 그녀의 풍만한 한쪽 가슴이 머스코의 팔에 비벼지며 자극됐고 저릿한 전기가 등줄기를 타고 그곳으로 내려갔다. 

그가 안내한 첫 번째 방은 두 명의 관찰자가 있었다. 


*


나성대는 내면에서 씩씩거리고 있었다. 화상 회의를 하긴 했는데 그 내용을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박사,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러는데 내방으로 잠시 와주세요.” 


김박사는 나성대 이사의 방으로 걸어가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렇게 나긋하게 전화를 할 사람이 아니었고 본인만 독대로 사무실로 부른 것에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 김박사! 잘 오셨소. 잠시후면 점심시간이네. 약속 있습니까?” 


“어.. 그게.. 약속은 없습니다.” 


“잘 됐네. 뭐가 드시고 싶소? 뭐든 말만 하세요. 오늘 내가 거하게 쏠 테니.”

 

김박사가 봤을 때 나성대의 눈에는 광기가 어려 있었다. 


“글쎄요. 지금 당장은 특별히 생각나는 건 없는데요. “


“에헤. 비싼 것도 좋으니까 먹고 싶은 거 말하래도. 그럼 우선 생각하고 있고. 여기 잠시 앉아봐요.” 


나성대는 그를 손님용 소파에 앉히며 마주 보았다. 


“김박사, 미국 유학도 다녀오고 아주 공부도 잘했다 들었는데. 영어는 거의 원어민 수준이고. 맞지?” 


“에이 원어민 수준은 아닙니다.”


“겸손하긴. 내가 부탁을 좀 할 게 있어서 그래.”


나성대는 태블릿을 그 앞에 내밀었다. 김박사는 그의 알랑거림에 뭔가 부탁이 있을 것이다 생각하고 있었다. 자료를 본 이후 점심 한 번으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자료는 김박사도 공부를 어느 정도 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이사님, 이 자료는 시간이 좀 걸리겠는데요. 학술적으로도 그렇고 영어도 제가 처음 보는 글자가 좀 있어요. 공부해야.” 


김박사는 자료를 살펴보며 그 내용에 감탄하고 있었다.  


“아… 공부를. 얼마나 걸리겠소?” 


“우선, 점심을 먹으면서 생각해 볼까요? 요 앞에 스테이크집이 있던데요. 며칠 고기를 못 먹어서… 하하.” 


“김박사, 고기? 갑시다.”


“사실, 오늘 같이 점심을 먹기로 했던 동료가 있었거든요. 혹시 같이 가도…”


“아. 동료가? 갑시다. 오라고 해요.”


‘김박사, 이 새끼 작정을 했구먼. 아까는 약속 없다더니…’ 속으로 짜증이 밀려왔지만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꾹 눌렀다. 나성대는 알아보기 힘든 손우주의 발표자료를 그렇게라도 알아야 했다. 

석건우 부회장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회의 내용을 잘 알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


해성은 한강 공원에 차를 세웠다. 아빠를 본 이후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머리가 복잡해서 강바람이라도 쐬고 싶었다. 아까 면회했던 아빠의 얼굴을 생각하며 다시 주책없이 눈물이 흘렀다. 


‘아빠가 저렇게 아픈데 나와서 치료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나만 그들에게 협조한다면 아빠도 편해지고 우리 가족 다시 만날 수 있는 거니까. 하아.. 어쩜 좋아.’


반희애 회장의 제안이 독이 될 수 있다는 걸 안다. 아빠를 그냥 빼내오진 않을 것이었다. 뭔가 숨겨진 계획이 있을 것이고 그다음까지 생각을 해야 했다. 해성은 우선 마음을 추슬렀다. 양평으로 가서 그녀의 뇌에 있는 화학 물질에 대해서도 뭔가 실마리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사표. 아빠. S프로젝트. 반희애의 제안. 


“아. 휴우…”


해성은 한숨을 연거푸 쉬었다. 


“우선, 오늘 약속부터 해결해 보자!” 


해성은 우주가 알려준 주소를 찍고 양평으로 향했다. 차량에 탑승하자 AI가 말했다.


“바이오리듬이 매우 나쁘십니다. 잠시 휴식을 취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알았어. 그럼 잘 부탁해.”


“앞으로 1시간 30분 남았습니다.”


“고마워.”


*


우주는 회의가 끝나자마자 양평으로 전화를 했다. 


“어. 우진아. 해성 씨 출발했다고 하거든. 앞으로 한 시간 반 뒤에 도착할 거라고 해.”


“어 그래? 알았어. 우리가 잘해줄 테니 걱정 말고 천천히 와.” 


“나도 곧 출발할게. 이따 보자.”


*


“저 휠체어를 탄 분은 엄청난 갑부지만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됐어. 그러니 젊은 아내를 어떻게 하겠나? 미스터 석도 대충 눈치챘겠지만 이곳은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최상위 클래스 층만의 비밀 클럽이지. 이 커플의 러브스토리는 눈물겹다네.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의 지고지순한 마음.”


관찰자 룸은 매직미러로 반대편 룸과 연결 됐고 이 방은 전체 룸을 볼 수 있는 주 조정실 같은 공간이었다. 휠체어를 탄 남자 바로 옆은 수행비서 같은 여성이 서 있었고 미러룸 안에는 갑부의 아내가 두 명의 남자와 알몸으로 킹침대 위에서 최고의 시간을 보내는 듯했다. 머스크는 다른 룸을 보여주기 위해 보드판의 버튼을 눌렀다. 컴퓨터 자판같이 생긴 보드에는 층별로 표시된 숫자 옆에 번호가 적혀 있었다. 


“하아, 이곳은 미국 동부지역 최고 부유층 돌싱 모임 방이야. 일명 다섯 명의 여왕 (Five Queens) 모임인데.. 어디 보자… 오늘은 셋만 오셨구먼. 잘 빠지는 사람들이 아닌데.”


석건우는 문화충격이 있었지만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관찰실에 남녀 두 명이 있었고 매직미러 건너에는 남자 한 명과 여자 두 명이 있었다. 남자들은 누가 봐도 여성들보다 훨씬 젊은 다부진 체격의 건장한 사람들이었다. 관찰실의 남녀는 매직미러 건너에서 행해지는 모습을 보며 서로 흥분하게끔 도움을 주고 있었다. 다음은 중앙 홀처럼 보이는 큰 룸이었다. 그 공간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룸이 있는 듯 보였다. 


머스코가 마지막으로 보여준 곳은 야외 풀장이었다. 외부에 노출되면 안 된다는 이유로 화려한 조명은 아니지만 은근한 조명과 수영장 자체에서 나오는 조명으로 야릇한 분위기가 연출 됐다. 


“자! 미스터 석, 어디부터 가고 싶나? 잠깐! 내가 맞혀볼까?” 


머스코는 석건우의 눈을 잠시 살펴봤다. 


“수영장 이구만!”


“하하하. 역시 회장님은 저를 잘 아시는군요. 수영장이 마음에 드네요.”


“갑시다! L, 어서.” 


머스코 회장은 그녀가 팔짱을 낄 수 있게끔 오른팔을 굽혔고 L이 신속하게 팔짱을 끼자 마음에 들었다는 듯 힙을 어루만져 주었다. 수영장으로 가는 길은 중앙 홀을 지나가야 했고 그 공간은 보고도 믿기지 않는 희한한 고문 장비 같은 것들이 있었다. 물론 지금 그 장비들을 사용하는 커플들과 구경하는 커플들이 있었다.


‘햐아, 저건 또 뭐야?’ 


석건우가 눈이 휘둥그레진 것을 본 머스코는 그에게 당장 해 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석건우는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다. 이제 시작이고 아직 밤은 길기 때문이다. 


수영장으로 가니 영상으로 볼 때보다 더 분위기가 야릇했다. 사람들은 둘 또는 셋이 짝을 지어 핥고 빨고 있었다. 소행성 트로이가 지구에 떨어진 이후 사람들 사이에는 직접적인 섹스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것을 탐닉하고 있었다. 

이전 09화 멸망한대도 사랑하겠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