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건 아니야.
생각을 해본다.
나는 진정한 나를 알았던 걸까?
화끈하게 화를 내는 내 모습에서 그것이 진정한 나의 다혈질 모습이라고 생각했었고.
소심하게 뒤로 물러나서 나를 숨기는 모습에서 또 다른 나의 아웃사이더 모습을 봤었다.
직설적으로 내뱉는 말을 하면서 거침없는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고.
상대를 세심하게 배려하는 모습에서 이타적인 면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내 일보다 남의 일을 먼저 해결하는 모습을 보고 실속 없다고 생각했고.
줏대 없이 남의 이야기를 듣고 상황을 판단하는 것을 보고 자기 철학의 부재를 느꼈다.
허황된 꿈을 좇는 모습과 불굴의 의지로 꺾이지 않고 앞만 보고 나가는 모습에서 황소 같은 고집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상처받기 싫어서 함부로 사람들 못 만나는 것을 보고 내면의 작은 아이가 많이 상처받았구나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그 사람으로부터 길들여져 가며 나를 맞추는 것이 힘들어서 10년 가까이 남자도 못 만나는 모습을 보며 다시는 사랑을 못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나는 점점 사회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조금씩 멀어지기를 자처하고 있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진정한 나의 모습이었던가?"
이제 와서 나는 그토록 고집스럽게 나를 꽉꽉 채우고 채워서 나라는 사람을 만들었던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비워내고 있다. 아니 비워내야만 한다.
비운다는 말에 왜 눈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일까.
욕심스럽게 지내온 내 삶들이 그 각양각색의 수많은 덩어리들이 그리도 나를 꽉 채워서 나는 사실 영혼 없이 지금껏 달음박질해 왔었다.
눈물이 솟구친다. 내가 원하는 삶이 아녔기에... 내가 살고 싶은 삶이 지금의 이 모습이 아니기에 회환의 눈물이 흐른다.
"그래 그냥 울어버리자!" 아무 생각 없이 울어버렸다.
고집스럽게 지켜왔던 엉망진창 나에 대한 집착을 버리기 위해.
의미 없이 또는 의미 있게 뒤섞인 그 무엇인가 들에 대한 자유함을 느끼기 위해.
내 안의 모든 것을 떠나보내기 위해 눈물이 마를 때까지 울어버렸다.
그런데 문제다.
비운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를 어떻게 비워야 할지 그것을 알아야 할 단계에 왔다.
도대체 나는 무엇부터 비워야 할까?
비우는 방법을 모르니 어떻게 어디서부터 비워야 할지가 문제다.
이번에는 한숨이 나온다. 끝도 없이 연거푸 나오는 한숨에 턱을 높이 치켜들고 천장을 바라본다.
낮은 천장 아래 나라는 작은 사람과 그리고 위아래로 차곡차곡 쌓여 있을 사람들의 한숨이 녹아 있을 이 공간들.
나는 우선 이 공간들에 나의 한숨을 내보내고 창문을 열어 그것들을 비울 것이다.
그 한숨들이 유영하듯이 외부의 공기와 만나 멀리 떠나버렸을 때 아마도 내 안의 공간이 비워져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