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울 거야...
#12
평생 기억에 남을 필릭스와의 한국체류기 3일은 서로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막을 내렸다.
180은 넘어 보이는 키에 훤칠하게 잘생긴 이 영국남자를 앞으로 3개월은 못 본다 생각하니 집착이 생기려 했다. 물론 거리상 내가 이 사람에게 집착을 한다 해도 물리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필릭스, 나 우선은 집에 들어가야 해. 출장은 오늘 돌아오는 거였고. 내일 출근도 해야 하고." 나는 도저히 밝게 말할 수 없었다. 그를 못 본다는 생각은 우선 기운 빠지는 일이었다.
"아. 그렇지. 너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고 나는 영국으로 돌아가야 하고."
짐을 정리하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백허그를 하며 그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가은, 텔레그램 앱을 깔아. 그리고 너랑 나는 아이폰으로 화상통화를 할 수 있잖아! 네가 어딜 가든 항상 보여주고 수시로 전화해 줘."
"알았어. 필릭스도 마찬가지야. 항상 알려줘... 그런데... 우리 사이에는 8시간의 시차가 있어. 당신이 자는 시간에 나는 일을 할 텐데."
"가은, 괜찮다면 영상을 켜놓고 일해. 너의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그러기는 어려울 것 같아. 그리고 나 이번달에 사표 써. 본격적으로 유학준비해야 하고. 영국 대학원 들어가기 전에 어학원 입학 절차도 있고. 내가 당신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거 같아."
나는 뒤돌아 그의 품에 안겼다. 세상이 끝난 것도 아닌데 내 마음은 무너져 내렸다.
필릭스는 우리가 갔던 공원에 조깅을 한다고 나와 함께 나왔다. 사람들에게 이목이 집중될까 많이 걱정됐지만 이젠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난 집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예약한 택시가 왔다.
"필릭스, 영국 도착하면 전화 줘. 사랑해."
"가은, 걱정 마. 연락할게. 나도 사랑해." 그는 커다란 손으로 내 머리와 허리를 꽉 안아 그에게 밀착시켰다.
순간 다시 우리의 호텔룸으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아... 필릭스... 벌써 그리워." 나는 눈물을 그 앞에서 보이기 싫어 꾹 참았다.
그는 내가 탄 택시를 한 참 바라보다 운동화 끈을 한 번 조이고 달리기 시작했다.
'저 남자 뛰는 모습도 정말 멋지네. 런더너가 여기서도 조깅을 하는구나.'
'휴우... 필릭스.'
집에 도착한 후 짐을 풀고 엄마와 민주를 위해 준비해 온 화장품과 향수를 선물로 줬다.
선물이라기보다는 민주가 지정한 물건을 딜리버리 해준 것이라고나 할까.
엄마와 민주는 같이 촬영했던 톱스타 연예인 부부 이야기를 듣고 싶어 나를 계속 따라다녔고 나는 할 얘기가 별로 없었다.
"나는 현지 사무실 일정이 있어서. 촬영 일정은 유정이가 계속 따라다녔거든. 뭐... 다른 프로그램에 나오는 그대로야. 그 부부들은 금실이 좋기로 유명하잖아. 별로 할 이야기가 없어."
"최진아는 아직도 이쁘지? 손 많이 댔지?" 엄마는 그녀의 피부관리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매일 마사지받겠지. 아직도 주름하나 없더라. 그게 뭐 그렇게 궁금해? 엄마도 참."
"나도 필러 좀 넣고 당길까?"
"그래 엄마! 요즘은 자기만족이지. 사실 엄마가 동안이긴 한데 난 뭘 하든 대찬성." 동생이 옆에서 엄마를 부추겼다. 그리고 엄마와 민주의 피부과 시술에 관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아... 둘이 잘 생각이 없나 보네. 어떡하지.'
"나 너무 피곤하다. 두 분 너무 오래 있지 마시고요. 저는 잡니다."라고 말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우선 아침에 출근할 가방을 쌌다. 그리고 입고 갈 옷을 꺼내 놓고 불을 끈 후 둘이 언제 방에 들어갈지 문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니 연예인이 피부관리를 받던 시술을 받던 뭐가 중요할까?' 나는 짜증이 나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 이불속이 너무 포근해서 스르르 잠이 들려던 찰나.
"엄마 저도 내일 출근해야 해서 잘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민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잘 자." 거실 불이 꺼지고 모두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는 소리다.
나는 다시 한번 문에 귀를 기울이고 소리가 나는지 확인했다. 거실은 조용했다.
내일 회사에 입고 나갈 옷을 차려입고 나는 택시를 잡았다. 그리고 필릭스가 있는 호텔로 향했다.
그가 너무 보고 싶어서 가슴이 뛰었다. 그를 볼 생각을 하니 뱃속에서 전율이 느껴지고 가슴이 울렁거렸다.
우리 집에서 호텔까지는 걸어서 30분 택시로는 10분 정도일 텐데 너무 길게 느껴졌다.
나는 그가 있는 객실로 서둘러 걸어갔다. 초인종을 눌렀다. 안에서 인기척이 들리고 그가 말했다.
"Who is it?"
"me. 가은."
"Oh! 무슨 일이야. 가은. 그는 내 팔을 빠르게 잡아당겨 안으로 들였다."
"너무너무 그립고 보고 싶어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서. (흐느끼듯 말했다.) 필릭스."
그의 혀가 나의 혀를 애타게 갈망했고 두 손으로 나의 엉덩이를 들어 올려 천천히 침대로 걸어갔다.
그는 나를 살포시 내리고 셔츠와 브래지어를 그리고 스커트를 빠르게 벗겼다. 그가 입고 있던 반바지를 벗어던졌을 때 그의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필릭스, 전화받아."
"중요한 거 아냐. 괜찮아. 아.... 가은."
전화는 끊을 줄 몰랐고 계속 울리고 있었다.
"필릭스, 급한 거 같아. 받아봐."
"아... 미안해. (헛기침을 한 후) Hey, Max, yes... tomorrow. okay."
그와 같은 직장 사람 같았다. 잠시 후 그는 통화를 끝냈고 나를 다시 들어 올렸다. 그는 소파로 걸어가 앉은 자세로 나를 그 위에 앉혔다. 우리는 그렇게 녹아내렸다.
내가 오기 전 그는 컴퓨터로 방송국일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도 내일 도착하자마자 바로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업무 정리 중이었다고 했다.
"필릭스, 일 해야 하는데 내가 방해한 거 아냐?"
"아냐. 그리고 지금은 이 일보다 당신의 방해가 더 중요한데. 어떻게... 더 방해할 거야?"
"필릭스, 아무리 그래도... 지금 우리 자야 할 거 같아. 벌써 새벽 2시야."
"벌써 2시야? 사실... 난 아직도 널 먹고 싶은데."
"Stop! (큰 웃음을 지으며) 정말 못 말려. 필릭스, 우리 자자."
핸드폰 알람이 7시 정각에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없었다.
나는 너무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짐은 그대로인데. 뭐야? 어디 간 거지?' 나는 우선 씻고 나갈 준비를 해야 했다.
샤워를 한 후 가운을 걸치고 막 나오는데 필릭스가 거실에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Oh, 필릭스 도대체 아침부터 어딜 갔던 거야? 조깅?"
"Nop! 가은 출근하기 전에 간단하게 뭐라도 먹으라고. 따란..."
테이블 위에는 그릭요구르트 위에 견과류를 올려놨고 애플주스와 맛있어 보이는 빵이 있었다. 그리고 테이크 아웃한 따뜻한 아메리카노 두 잔이 있었다.
테이블을 세팅하는 그가 너무 사랑스러워 나는 그에게 안겼다.
"You so sweet, Felix. Thanks."
'이렇게 사랑스러운 남자라니. 필릭스 정말 나를 미치게 하는데...' 그가 차린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난 출근 준비를 했다.
"Okay, 가은 내가 영국 도착하면 아침 7시거든. 나는 회사로 곧장 갈 거야. 한국은 새벽 3 시일 거고. 전화는 한국시간으로 아침 7시에 할게. 푹 자고 있어." 그는 내 이마에 키스했다.
"Oh... 가지 마..." 우리는 문 앞에서 떨어지기 싫었지만 나의 이성은 자꾸 핸드폰 시계를 보고 있었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Hum... 가은, 늦겠어." 우리는 진한 키스를 했고 그는 나를 문 앞까지만 배웅했다.
'그래 곧 만날 건데 질척거리지 말자. 쿨하게 행동하자. Okay'
"필릭스, 곧 봐. 그리울 거야."
"I miss you too."
아니 헤어지는 것도 아닌데 이 눈물은 뭐람. 떨어지지 않는 발을 겨우 옮기며 무거운 마음으로 회사로 출발했다.
째깍째깍 업무를 보는 내내 나는 시계를 보며 그의 출국시간에 온 정신이 집중됐다.
'아프다고 하자. 다들 내가 사고 난 사실들을 알고 있으니. 그는 나를 위해 한국까지 왔는데 혼자 떠나게 할 수는 없어.'
"팀장님, 저 몸살기운이 있는 거 같아요. 오늘 오후 반차 쓸 수 있을까요? 빨리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출장 다녀오고 몸살 났나 보네. 보고서는 내일 주고 어서 가봐."
"네. 팀장님. 감사합니다."
나는 최대한 아픈 표정을 한 후 짐을 챙겨 사무실을 나왔다. 그를 보기 위해서는 적어도 2시까지는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 그가 티켓을 끊고 출국한 게 아니라면.
나는 우선 필릭스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나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냥 가보자. 공항이라 바쁘겠지.'
삼성동 공항버스 리무진을 타고 발을 동동 구르며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필릭스, 어디야? 조금만 기다려줘. 나 공항으로 가고 있어.'
그는 답변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