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과 욕망 사이
만남을 편식하기 시작한 건 작년 연초부터였다.
사람들과 연락도 하지 않고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선 미팅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보고 싶은 몇몇 사람들은 날을 잡아 꼭 만난다.
그중에 한 사람을 오늘 만났다.
서로에게 장난 가득한 실없는 말을 시작으로 화기애애한 우리는 몇 개월 만에 만나도 어제 본 것처럼 편안하다. 그리고 그간 쌓였던 이야기보따리를 슬슬 풀면 시간이 달음질치듯 빠르게 지나간다.
부쩍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는 그 친구에게 수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필러를 넣고 피부에 공을 많이 들인 그 친구에게 나는 단번에 이야기했다.
"말해. 누구야. 얼마나 됐어?" 한쪽 눈썹을 들썩이며 야릇한 눈빛으로 친구의 눈을 쏘아봤다.
"뭘. 뭘 말하라는 거야." 친구는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한다는 듯이 히죽거리며 나를 바라봤다.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그렇게 신경 쓰는데? 그냥 불어."
친구는 지인 추천으로 와인밴드에 가입을 했다고 했다. 내가 아는 친구는 와인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와인밴드에 가입을 했다. 이유인즉 "어떤 사람들이 이런 모임에 가입하나 궁금했어."란다.
"어떤 사람들이 가입을 하겠어. 와인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가입하겠지."라고 나는 대답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사실 나는 요즘 시간만 맞는다면 글쓰기 모임이나 독서 모임을 찾고 있었는데, 와인모임이란 말을 들으니 혹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영국 유학 시절 전부터 동료들과 와인을 많이 마시고 있었고 그래서 영국에서는 다양한 와인을 마시다 보니 관심이 많았다.
사교 모임이라...
2022년부터 사람 편식을 하면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피하고 은둔 생활을 해 왔었다.
대인기피증까지는 아니라도 대인회피증 정도인 것 같다.
이리저리 사람에 치이고 회의적인 감정이 들면서 사교적인 모임이나 친구들 모임도 나가지 않았다.
점점 혼자 보내는 시간이 혼술이 내 삶에 활력이 되고 있었다.
만약 내가 지금까지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다면 나의 삶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을까?
누군가를 만나서 달라진 나를 경험했던 일이 있었나?
나도 외모에 신경 쓰고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며 그의 연락을 기다리고 안달 난 나를 상상해 본다.
그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고 나도 그를 좋아하고 그래서 그것이 사랑이라 느끼는 감정으로 한 해 두 해 지나가고 그런 사람을 만난 지가 언제던가?
그런 진지한 만남을 했던 적이 있기는 했나?
내가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탐색하고 썸만 타다 끝났던 지난 몇 번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난 나의 변덕에 박수를 보낸다. 나의 변덕은 천하무적이다. 맥락이 없다. 결국은 아무리 생각해도 난 아직 때가 아닌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큰 나머지 나도 모르게 내가 변화하고 나도 모르는 내가 발현돼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아닌가? 내가 사랑의 휴지기가 너무 길어서 과대포장 하고 있는 것일까?
자고로 사랑이란 상대로 인해 내 안의 뭔가 자연스럽게 상대를 맞춰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만나면 둘 중 하나는 큰 상처가 남는다.
그 상처받는 사람이 내 친구가 아니길 바란다.
끝이 뻔한 사랑은 결국엔 상처뿐이므로.
민폐가 되는 것이므로...
그런데 반전은
서로 절대 상처받지 않는 보호막을 쓴 것처럼
둘 다 상처받지 않을 수도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