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의미를 알기까지 20년이 더 걸렸어...
어느 날 친구가,
"로맨스 소설을 쓴다는 사람이 드라마도 안 보고, 로맨스 소설도 안 읽는다는 게 말이 돼?!"
"어? 어... 말이 안 되나? 혹시라도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창작 내용이 스며들까 봐. 일부로 안 본거지."라고 구차하게 말했던 나였다.
세상을 두루 다니며 여러 안목과 시선을 받아들이고 열린 마음으로 살고 있다 생각했다.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나를 잘 모르는 착각! 나에 대한 지식의 저주.
즉, 내가 나를 잘 알고 있다는 나에 대한 지식의 저주말이다.
좋아하는 것만 관심 있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편식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난 나니까.라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말을 쏟아내며 다녔다.
그리고 2022년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 그 이후 다양한 소설과 드라마를 통해 내가 투영되고 있다.
물론 드라마를 본다고 나의 내면이 확 달라질 순 없지만 등장인물을 분석하다 보니 나를 관찰하게 됐고 내가 '참 잘 못 살아왔었다.'라고 느끼는 개기가 된 것이다.
이런 감정의 순화는 사실 여러 드라마를 보면서 더욱 예리하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나의 최근 화재 작은 '알고 있지만'이라는 드라마다.
이 드라마를 보며 '난 참... 멋대로였구나.'를 여러 번 느끼게 됐다.
극 중 조연으로 나오는 오빛나 역할은 마치 데자뷔처럼 나의 대학 시절이 느껴질 정도였다.
오빛나는 진지하지 않고 재밌는 걸 좋아하며 항상 즐거운 모임과 사람들 사이에 있는 화재의 중심인물이다.
그녀의 상대역인 남규현은 진지하고 진심이다.
그들의 대화에서 남규현이 변하지 않는 오빛나를 보며 말한다.
너는 도대체 연애를 뭐라고 생각하냐?"
이럴 거면 나랑 왜 사귀는 데?"
오빛나는 "좋아하니까 사귄다."
남규현은 "나랑 자는 게 좋아서 사귀는 거 아니냐?"라고 정곡을 찌른다.
오빛나는 "그게 그렇게까지 다를 일이야? 너는 매사에 뭐가 이렇게까지 복잡하냐?"라고 말하며 화를 낸다.
= 이 부분에서 정말 나를 보았다.
남규현의 대사는 하루종일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바로 이 대사다.
넌 사귀고 나서 달라진 거 하나도 없잖아.
나는 쿨한 척 연기하며 살았던 지난 수십 년, 달라진 것 없는 나를 무슨 자랑처럼 떠받들고 살았다.
나의 시그니처는 '쿨'함과 '열정'이라며 상대가 그 누구라도 깊이 있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남규현의 대사에 귀싸대기를 맞은 것처럼 얼얼함이 여운으로 남아있고 급기야 나를 부끄럽게 했다.
나의 그는 남규현보다 더 착하고 지고지순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에 대한 불만을 말도 못 하고 그저 기다려주고 이해하려 하고 이쁘다고만 했다.
버릇없는 나를 만들고는 견디다 못해 떠나버린 그 사람은 내 탓이었다.
멍청한 내가 "우리는 싸우질 않아."라고 자랑하게 만들었다.
내가 더 아껴줬어야 했는데 말이다.
지금의 외로움과 쓸쓸함은 그 사람의 순수한 사랑의 몇 백배 이상 더 고통을 느껴야 한다는 수행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나로 인해 고통받았을 그 사람의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두고두고 곱씹으라는 의미로 말이다.
그간 나의 글을 읽으셨던 분들은 아실 수도 있다.
내가 얼마나 이 순수한 사랑을 주셨던 분께 미안해하고 후회하고 있는지 말이다.
지금 내가 달라진 게 있다 한들 차마 만날 수 없는 그.
결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 예쁘게 잘 살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