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다.
차량용 내비게이션이 지금처럼 실시간이 아닌 시절이 있었다. 우리는 강원도로 여름휴가를 떠난 상태였고 한 번의 실수로 길을 잃었다. 그래도 마냥 좋았다. 양옆으로 넓게 펼쳐진 벼밭이 짙은 초록으로 출렁이고 있었다. 뜨거운 뙤약볕에 시골의 싱그러운 냄새를 맡기 위해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었다. 작은 시골 마을 동네 어귀가 보였고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수 같은 나무가 있었다. 그 옆에는 동네 작은 가게가 있었다. 우리는 잠시 차를 세우고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샀다. 할머니들이 커다란 나무 아래 평상에 모여 옥수수를 드시고 있었다. 넉살 좋은 그는 찰진 옥수수를 얻어 왔다. 어딜 가나 먹을게 생기고 어른들이 좋아했던 그였다.
홍천으로 갔던 여름휴가는 또 어떤가? 둘이서만 하는 물놀이는 왜 그렇게도 재밌었는지. 펜션 사장님의 후한 인심덕에 평생 기억 남는 가장 맛있는 닭갈비와 더덕막걸리를 맛보았었다. 남자친구의 넉살에 기분 좋아지신 사장님은 우리가 예약한 방보다 더 좋은 방으로 업그레이드해 주셨고 머무는 내내 VIP대접을 해주셨었다. 굽이굽이 놓인 강원도의 산과 개울과 바다에 묻어둔 나의 청춘과 그리움.
그 이후 난 여름이 되면 더 이상 강원도로 여행을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는 길을 잃지 않는다. 그럴 수도 없다. 성능 좋은 내비게이션은 그런 상황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쏜살같이 목적지를 향해 달려갈 수 있는 최고급성능의 내비게이션은 그런 낭만이 없다. 그래도 아주 가끔 혼자 강원도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목적지를 정해 놓지 않고 떠나는 여행 그러나 그럴 수가 없다. 근로계약서에 사인한 이상 나의 자유는 월급통장에 묶여 있다.
어떤 장소에 대한 그리움도 그렇지만 사람에 대한 그리움도 갑자기 떠나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너무도 일찍 돌아가신 아빠를 가족 공동 추모공원에 모셨고 아빠를 너무도 증오했던 남동생은 어느새 철이 든 건지 홀로 아빠를 찾아 몇 번을 다녀왔다고 한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과묵한 동생은 그리운 아빠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다녀온 것이다. 것도 올케가 말해주니 알게 되었다. 비록 아빠는 없지만 동생은 몇 번이고 아빠와 뜨거운 화해를 한 것 같다. 정말 다행이다.
존재했던 모든 것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그 모든 그리움은 아름답고 서글프다. 그리움으로 쌓이기 전에 원 없이 사랑하고 사랑할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