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광신도가 되지 않기로 결심했다.
모든 문제는 나에게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퍼져있는 불편한 사실 중에 하나는 "모든 문제는 나에게 있다."라는 말이다.
남 탓하지 말고 잘 생각해보면 사실상 문제의 근원은 나에게 있다는 고차원적이며 합리적인 말이라 생각은 한다. 그런데 알면서도 힘든 것이, 자기 합리화를 기가 막히게 하다 보면 나 외에는 주변이 온통 엉망진창인 것이다. 그러다가 좀 더 성숙한 인격체가 되고자 하는 마음에 문제의 근원들을 객관화해보기로 결심하고 외부에서 나를 찬찬히 살펴보며 차츰 나아지고 있다고 스스로 자족한다.
나는 '애터미' 광신도였다. 무려 4년간을 화려한 미래의 청사진을 쫒으며 온 열정을 다해 살았다.
너무도 무식하리만치 내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시간 없이 미친 듯이 네트워킹에 빠져 살았다.
그런데 결국은 난 4년을 견디고 번아웃돼버렸다.
허망했다. 아름다운 40대 절반을 잃어버린 것뿐만 아니라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아이의 가장 예쁜 순간들을 사진으로도 남기지 못했다.
사실, 나라는 사람은 크게 돈 욕심 없이 자유를 만끽하며 살겠다는 욜로족에 가까운 세계관을 갖고 있었는데 39세에 생긴 아름다운 생명체가 자라는 것을 느끼며 막중한 책임감이 생겼더랬다. 이 소중한 생명체를 위해 자본주의 세상에서 잘 키우기 위해서는 우선 돈이 있어야 했고, 아이가 세상으로 나오니 그 현실이 나의 가치관을 바꿔놓았던 것이다. 아이가 3세가 되면서는 아이를 위한 식료품도 신경 써야 했고 허투루 살 수 없는 보호자가 됐던 것이다. 그런데 반짝반짝 가장 이쁠 때 아이는 할머니와 보내는 시간이 전부였고 엄마 얼굴을 보기는 정말 힘들었다. 엄마는 아이가 새근새근 잠들었을 때야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말한다. 지금 가난하게 가족들과 있기보다는 내가 희생해서 미래에 전부 해줄 수 있는 엄마로 사는 것이 더 값진 일이라고 말이다. 그때는 정말 광신도같이 성공자(그들이 말하는)들의 강의에 매료되어 현실을 미래에 담보하고 살았다. 그렇게 해야 보장된 미래가 올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일찍 현실을 돌보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고 안타까운 것이 사실이 돼버렸다.
인생에서 나름 값진 경험이라 나를 위로하며 다시는 미래를 위해 파랑새를 잡으러 떠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 허망하고 뜬구름 같던 시절을 뒤로하고 허심탄회하게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며 덤덤하게 말해본다.
그들은 말한다. 네트워크에 실패한 자들의 이야기 따위는 들을 가치가 없다고.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사람한테 어떻게 서울대에 갔냐고 물어봐야지 떨어진 사람한테 물어보는 건 시간낭비라고 말이다. 정말 똑 소리 나는 말이다. 이 말에는 그 어느 부분도 틀린 부분이 없다.
그러나 불편한 진실은 나를 포함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네트워크에 빚을 지고 실패를 한다는 것이다.
돈뿐만이 아니라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암묵적인 왕따를 당하기 시작한다.
다단계 회사에 대한 맹목적인 광신도 같은 몰입은 상상 이상으로 파워풀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나도 마치 단상에 서있는 저 성공자 같이 월 수천을 버는 사람이 될 것이며 모든 것은 곧 보상받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생겼다. He can do! She can do! Why not me.라고 말이다.
그래서 수많은 네트워크 업체들이 그 명맥을 유지하는 것이리라.
우리 사회는 네트워크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하는 느낌이다. 네트워크를 직접 경험했건 옆에서 지켜봤든 간에 그들의 마음에는 치유할 수 없는 깊은 상처가 남았을 것이다.
그 깊고 어두웠던 시절의 상처를 끄집어내기 싫어서 또는 그 시기를 부정하는 것이 나를 부정하고 내 가치관을 폄하하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른다. 당시 나는 영업적인 기질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의 성향과는 상관없이 큰돈을 벌기 위해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했고 만나기 싫어도 만나야 했다.
어른이니까!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니까 다른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저 남들이 한다고 하니 나도 그 시스템에 발을 푹 담그고 앞만 보고 했던 것이다.
그 시간들은 내 인생의 흑역사가 됐고 주변에 사람들이 깨끗하게 정리됐으며 경제적으로 점점 힘들어지고 비굴함을 넘어서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져 낙엽처럼 굴러다녔다.
미래의 핑크빛 성공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모르나 그 시스템은 대출을 독려했고 현실의 빚을 훗날 성공의 대가와 바꿔야 한다고 부추기는 사회였다. 빚을 권장하는 시스템.
물론 누군가 생활비를 잘 벌어오는 가장이 있어서 부부 중 한 명이 시스템에 발을 담갔다면 생활비를 소비하는 일이므로 잘 꾸려갈 수는 있었으리라. 그들이 말하는 개나 소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조건에는 사실상 여러 리스트가 있다. 월 생활비를 전부 애터미에 소비해야 하며, 어떤 시기에는 필요 없는 물건도 창고에 쌓아둬야만 한다. 내 점심, 저녁값만 해결하면 좋겠으나 여러 사람들의 밥값도 결제할 수 있는 능력도 있어야 했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생활비를 쓸 수 있는 사람들을 회원으로 쓸어 모아 관리하고 돈 쓰고 관심도 쏟아야 했다.
그런 별것 아닌 능력들이 그들이 말하는 "너도 할 수 있어!" 였던 것이다.
그렇게 쉽게 말해주니 나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난 만 명 중에 한 명 아니 백 명 중에 한 명이 아녔기에 이렇게 실패담을 쓰게 됐다.
실패담이긴 하나 나와 같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혹여 이런 일을 할 계획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의 이야기가 도움이 되길 바라며 진솔하게 써 내려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