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표현을 해야 직성이 풀렸던 것이다.
당신이 그리워서 벽을 긁어 표현했었다. 그래서 벽화가 만들어졌다.
나무를 긁고 종이를 긁어 그리움을 표현하니 조각이 되고 시가 되었다.
'이어령' 선생께서 정의하신 '그리움'에 대한 어원이 '긁다'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고대부터 선조들의 지혜로 수많은 벽화와 조각, 그림과 편지들이 있었던 것이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아마도 내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이유도 그런 DNA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막연하게 '그리움'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다 보니 어원이 궁금했고 그 뜻을 알고 나니 나의 몸살이 이해된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글로 쓰기 시작했고 지금은 그림 그릴 여유가 없지만 좋아하는 그림을 보면 멍 때리고 보는 것이다. 정말 신기하다. 영혼을 갖은 사람은 태고적의 그리움 DNA가 세포 속에 녹아 있다는 것이 말이다. 글, 그림 그리고 노래로 그리움을 표현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것을 '한'이라 부르는 것은 아닐까? 어쩐지 나의 추측이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다.
나의 그리움은 겨우 새끼손톱 0.5mm 들어갈 정도로 긁혀있다. 그만큼 앞으로도 긁어야 할 그리움이 산더미처럼 쌓였다는 것이다. 자... 어디부터 시작을 해야 이 그리움이 바닥이 날까?
나의 이런 생각은 그에 대한 그리움을 박박 긁어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그와의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순간들이 기억하고 싶어서 그런 것일까? 둘 중 무엇이라도 나는 해야만 했고 우선 그리움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하면서 한편으로는 행복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혹시라도 이 글들이 그에게 닿아 내 마음을 알아준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대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았지만 용돈 등을 해결해야 했던 그는 압구정 어느 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어딜 가나 오너들의 사랑을 받았던 그는 팀장급으로까지 대우를 받으며 열심히 일했다고 했다. 우리가 만난지 백 일이 되는 날 그는 커다란 라탄 바구니에 백송이의 빨간 장미를 들고 우리 집으로 왔다. 종이 상자에는 고급스러운 핑크색 스카프도 들어 있었다. 그런데 나의 반응은 어땠는가? 그의 집 청량리에서부터 선물을 들고 수원까지 왔을 텐데 꽃을 싫어하는데 사 왔다고 타박했다. 왜 그랬을까? 밤새 열심히 일하고 모은 돈으로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표현한 것이었을까? 진짜 꽃이 싫어서 그랬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멋없고 무뢰한 행동이었다. 그렇게 문 앞에서 싸우고 그는 다시 돌아갔다. 그 일 이후로 그는 다시는 꽃 선물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안타까운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어렵게 번 돈을 비싼 돈 들여가며 소비한 것이 미안했을 것이다. 지금은 안다. 그가 장미 백송이를 들고 지하철을 타고 집까지 오면서 얼마나 행복했을지 그리고 나의 구박에 얼마나 속상했을지.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