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일이다. SPOTV가 SBS스포츠가 가지고 있던 프리미어리그 중계권을 가지고 왔다. 중계권을 보통 재판매하는 에이클라 계열의 방송사인 SPOTV는 국민적 관심이 가장 높은 프리미어리그를 가져옴으로서, 사실상 가장 많은 매니아층을 확보한 스포츠채널로 군림하게 됐다. 현재 SPOTV는 프리미어리그 뿐 아니라 메이저리그, NBA와 같은 해외 주요 종목들과 국내프로야구, 국내프로농구까지 많은 종목의 중계권을 사실상 '과점'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흘러, 2022년 8월 SPOTV는 "손흥민이 소속된 토트넘 핫스퍼의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유료화한다"라고 밝혔다. 여기저기서 기사들이 나오고 여론도 난리가 났다. 결과적으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칠까말까 수준의 뒤늦은 논쟁을 지금 한다고 보지만, 어떤 흐름으로 지금까지 왔는지 짚어보려고 한다.
시청 트렌드가 만든 스포츠 시청 지각변동
KBS, MBC, SBS로 분류되는 공중파 3사는 산하의 스포츠채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각 스포츠채널은 국내프로스포츠 종목은 어느정도 지분을 갖고 중계를 현재도 하고 있다. 하지만 KBO리그를 제외하고는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채널의 파워가 빠지기 시작했다. 가령 남자프로농구 중계권을 갖고 있던 MBC스포츠플러스는 프로농구 중계권을 SPOTV에 내준 뒤로, 겨울만 되면 이렇다할 주요종목 중계가 없다. 호주 야구, 컬링, 당구 등으로 소소한 관심은 끄는 데 성공했지만, 고정 시청자를 확보할 콘텐츠가 아님은 분명하다.
공중파 3사 산하의 스포츠채널들이 중계권을 따오지 못하는 이유는 '돈' 때문이다. 해외리그 중계권 가격은 점점 비싸지고 있고, 국내에서 TV로 스포츠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비중은 줄어들고 있다. 물론 온라인, 모바일 등에서 포털사이트 등을 이용해 스포츠를 많이 시청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방송사의 수입과 큰 연관이 없다. 각 포털사이트가 온라인 및 모바일에 2차 중계권을 팔게 되면, 온라인에서는 포털이 중계에 부가적으로 붙는 광고 등을 모두 관리하게 된다. 네이버 스포츠 중계를 보면 경기 중간 광고가 TV와 같지 않고, 네이버가 자체적으로 받은 광고를 송출하는 경우를 봤을 것이다. 따라서 기존 스포츠채널들은 TV 시청률이 높아져 광고 단가도 함께 높이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하지만 순수 TV 시청률이 유지되거나 오히려 떨어지는 와중에 광고 단가를 높여줄 광고주는 많지 않다.
스포츠 시청도 뉴미디어로
앞서 중계권을 '과점'한 SPOTV는 IPTV를 기반으로 한 스포츠채널이다. 따라서 일반 케이블TV로 봤을 때 채널이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들은 그럼 많은 중계권료를 내고 중계권을 사서, TV중계권 및 포털에 재판매하는 2차 중계권을 제외하고 다른 수입을 낼 방안이 필요했다. 그래서 자체적인 온라인/모바일 플랫폼 'SPOTV NOW'를 만들었다. 스포츠방송사가 자신들의 자체 플랫폼에서 중계 및 하이라이트 등을 제공한 것은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놀랄 일이었다. 지금은 설명하기 편해졌다. 그냥 '스포츠 중심으로 제공하는 OTT'라고 말하면 되니까.
SPOTV는 이 자체 플랫폼을 이용해 서서히 '부가수익 창출'의 과정을 가졌다. 처음부터 유료화하지 않았다. 우선 네이버와 유튜브 등에 퍼져있는 경기 풀영상 및 하이라이트 등을 서서히 모으는 작업을 거쳤다. 자료를 모은 뒤 타 플랫폼에선 찾을 수 없게 만들었다. 회원가입을 해야만 무료로 경기영상을 제공하며 사람들을 어플 속으로 끌어들였다. 이후 UFC와 프리미어리그, 챔피언스리그, NBA를 차례로 유료화시켰다. 이 때만 해도 가장 국민의 관심이 높은 손흥민 경기만큼은 예외였다. 하지만 최근 쿠팡플레이가 주관한 토트넘 내한 경기의 뷰 수가 180만에 이른 것을 봐서였을까. SPOTV는 망설이지 않고 손흥민 경기마저 유료화로 전환시켰다.
손흥민 경기를 유료화시키는 것은 위와 같은 흐름을 보면 '예정된 수순'이었다. 방송사 입장에서 지속적인 중계를 하기 위해서는 TV 시청 뿐 아니라 온라인 및 모바일 플랫폼 송출 권리도 모두 가져야하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물론 케이블TV만 보면 모든 장르의 채널들을 항상 볼 수 있던 기존 시청자들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라이브'가 생명인 스포츠는 더 이상 TV에만 의존할 수 없었다.
손흥민 경기는 '당연히' 무료여야 한다?
혹자는 '포털사이트 등을 통해 재판매하는 방식을 계속 유지하면 안 되냐'라고 말한다. 하지만 포털사이트도 바보가 아닌 이상 중계권을 비싸게 사려고 하지 않는다. 방송사와 중계권을 두고 협상을 하며 '우리 포털사이트 말고 어짜피 사줄 사람 없다. 시청자들의 원성은 우리가 듣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면 그만이다. 결국 방송사 입장에서 대안 없는 협상을 이어나갈 수 밖에 없기에 다른 활로가 필요했던 것이다.
또 다른 의견도 있다. '보편적 시청권' 용어가 등장하며 국가적 영웅인 손흥민의 축구 경기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방송법을 잘 들여다보자. 방송법 내에는 "올림픽, 월드컵과 같은 국민적 관심이 매우 큰 체육경기대회의 경우 국민 전체 가구 90% 이상이 시청할 수 있는 방송 수단을 확보해야 한다"라고 명시했다. 대한민국 국민의 90%가 손흥민에 관심이 있다고 하더라도, 프리미어리그 대회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애시당초 성립할 수가 없는 논리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스포츠 경기만을 위한 별도의 유료채널이 생기는 것이 불편했다면 진작 프리미어리그 나머지 19개팀 간의 경기가 유료화됐을 때, 이와 같은 논쟁이 선행됐어야 했다. 혹은 '코리안 좀비' 정찬성의 UFC 경기를 유료화시켰을 때 나왔어야 했다. 하지만 그 때는 '첼시' 팬인 나를 포함한 일부 매니아들이 분노했을 뿐 지식인들과 교수, 선임기자들의 액션은 보지 못했다. 그 사이에 2022년 지금, 스포츠 장르가 아니어도 우리는 영화, 드라마, 심지어 예능프로그램에서도 유료 OTT를 통해 프로그램을 보는 시대가 왔다. 오히려 지금은 많은 시청자들을 이끌 콘텐츠를 유료화시키지 않는 채널이 바보인 수준에 이르렀다.
해외도 마찬가지다. 최근 메이저리그는 메이저리그사무국에서 주관하는 MLB 어플리케이션 이외에도 전 세계적으로 많은 시청자를 확보한 '애플TV'에 일부경기 독점 중계권을 내줘 화제가 된 바 있다. 물론 일찌감치 해외는 대부분의 경기가 유료구독을 해야 중계를 시청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OTT를 통해 온라인과 모바일을 넘나드는 '보편적 시청권'을 보장하려고 노력 중이다.
SPOTV가 중계권만 마구 사들이지, 쾌적한 시청환경을 유료구독 시청자들에게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잊을만 하면 화면이 끊기는 사고가 발생하고, 인력도 제대로 충원하지 못해 여기저기서 원성소리가 나오는 것도 알고 있다. 다만 꼭 SPOTV가 아니더라도 향후 쿠팡플레이를 비롯해 자사 OTT를 보유한 채널에서 스포츠 중계권을 가져갈 일이 머지 않아 올 것이다. 방송법에 규정된 월드컵, 올림픽이 아니라면 모두가 타깃이다. 콘텐츠의 수준이 높으면 그에 맞는 대가를 지불하고, 돈을 받으면 더 좋은 시청환경을 제공하도록 노력하는 방향으로 가면 된다.
냉정하게 바라보자. 내가 돈을 낼 만큼 손흥민 경기를 좋아하는지, 혹은 돈을 내야 한다면 '우영우'를 볼 것인지. 혹은 유료채널 구독은 내 가치관에 도저히 맞지 않는다면 유튜브에 잘 편집된 프로그램들을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