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전 세계에서 10위안에 들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백신접종률도 안될 것 같고, 국력이나 선진화된 정도로 승부하기도 썩 쉽지 않을 것 같다. 인구도 10위안에는 들 수 없고, 땅 덩어리도 안된다. 몇몇 빛나는 기술력들로 일궈낸 성과가 있어 그나마 10위안에 들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런데 한국이 항상 '세계 10위'를 목표로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올림픽 순위.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린 이후로 한국의 목표는 바뀌지 않았다. 한국 사람들이면 다 안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강의 양궁 실력과 쇼트트랙 실력을 보유한 나라라는 것을. 그 덕분에 늘 10위에 들거나 혹은 그 근처의 준하는 순위를 만들어낸다.
대단한 성과다. 그런데 다른 말로는 미쳤다. 그리고 모든 시스템을 양보다 질로 생각하는 현재 트랜드에 반하는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한민국은 스포츠에 미쳐있다. 해야되는 종목이 너무 많고, 좋아해줘야 하는 종목이 너무 많다. 다같이 살릴 수 없는 구조다.
1.
한국은 야구, 축구, 농구, 배구를 4대 스포츠로 간주한다. 이 4대 스포츠를 모두 프로화 시키고, 자국에서 높은 입지를 가지고 운영하는 나라가 얼마 없다. 이 역시 일본의 영향일 수 있겠으나, 일본은 모든 인구부터 시작해 모든 인프라가 우리의 2배다.
미국은 자국 위주로 스포츠콘텐츠를 소비하는 미식축구가 제1종목이기 때문에 결이 다르다. 한국은 저 4대스포츠를 물론 프로화 시장에서 많은 관중들을 불러일으키고, 관심을 받으려는 것도 있지만 국제 경쟁력을 지키고자 유지하는 측면도 있다. 오로지 프로스포츠가 자국 내에서 소비하는 것이 최대 목표였다면, 적자인 구단들은 모두 장사 접어야한다. 그런데 흑자를 내고 있는 구단 비율이 4대 스포츠에서 5%는 될까?
미국, 일본을 머릿 속에서 이렇게 지우게 되면 남은 보기가 전무하다. 유럽은 야구를 하지 않고, 아메리칸대륙은 배구를 하지 않는다.
2.
진짜 문제는 4대스포츠가 아니다. 올림픽을 치르다 보면 한국이 성과를 내고, 메달을 따는 종목은 저 4대스포츠에서 야구 정도밖에 없다. 그러면 나머지 금메달 10개는 대부분 다 개인종목 혹은 다른 구기종목에서 나왔다. 제일 좋은 샘플은 한 때 세계 최강으로도 불렸던 핸드볼이다.
핸드볼 경기를 본 적은 없어도 '우생순'은 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은메달 당시 일화를 다룬 영화다. 한국 핸드볼은 1980년대부터 꾸준히 성과를 내왔다. 그리고 매번 올림픽 때 세계 4강 혹은 그 이상의 성과를 내고, "저희 핸드볼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세요"라고 말한다. 그들은 관심을 받을 자격이 물론 충분하고, 마땅하다. 하지만 올림픽때를 이후 활화산같이 생겼던 관심과 열정은 오래가지 못한다. 핸드볼 뿐 아니라, 월드컵이 지난 이후의 K리그도 그렇고, 다른 동계 종목들도 마찬가지다.
핸드볼이 성과를 냈는데, 핸드볼 리그를 안만들어주고 팀을 안만들어주고 관중 유치를 소홀히한 체육회 잘못이 아니다. 진짜 잘못이 있다면, 국제 경쟁력이 날 수 있는 종목을 애시당초 고르지 못한 쓰레기같은 선구안일 수는 있겠다.
결과적으로 전체적인 운동선수에 대한 공급이 줄어드는 현실 속에서 핸드볼은 자연스럽게 제도권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올림픽 출전권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이 됐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3.
한국 스포츠는 여전히 똑같은 파이를 자신들끼리 뺏어먹는 구조에 정체되어 있다. 스포츠에 할당된 파이가 10이라고 가정하면 이것은 1990년대도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스포츠가 가져가도 되고, 다른 문화산업이 가져가도 되는 신규 파이 50이 더 생겼다. 하지만 아무도 이 파이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여전히 K리그의 경쟁자는 야구다. 축구 팬들과 야구 팬들은 서로 자신들의 산업이 위기를 닥쳤을 때 조롱하기 바쁘다. 야구는 레저로 불리고, K리그는 듣보로 불린다. 이 싸움에도 끼기 힘든 농구는 2021년 가장 유명한 농구선수가 '허재의 아들'이다. 그 덕분에 모든 동계스포츠 파이는 배구가 가져갔다. 결과적으로 한쪽의 가세가 기울면 다른 집이 잔칫집이 된다.
1990년대 부흥기 때 파이만 지키면 된다는 생각에, 그 때 우리를 사랑했던 사람들을 대상에 맞춰진 마케팅을 한다. 마케팅의 결과 지표는 여전히 TV 시청률이다. 알다시피 30대 이하에서 시청률 집계가 가능한 TV로 스포츠를 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가장 중요한 마케팅 소통 창구인 SNS 파트는 가장 말단 직원이 하기 마련이고, 인턴에게 전권을 맡기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90%가 넘는 구단들의 유튜브는 외주 회사가 책임져서 하고 있고, 매년 언제든지 유튜브 제작진이 교체될 수 있다.
성적이 너무 중요하다보니, 성적에 도움이 되지 않는 선수들의 외부활동 또한 철저히 제한한다. 안타깝게도 제한하는 팀들의 성적이 잘 나오게 되면, 그 리그에 있는 다른 팀들이 이를 따라 한다. 그렇게 20년이 흘러가고 있다. 그래서 한국 프로선수들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터뷰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고, 일부는 신인선수들 조차 의례적으로 해야 하는 인터뷰조차 거부할 정도다.
4.
매 번, 매 대회, 매 순간 성적을 낼 수 없다. 스포츠에서의 성적이야말로 치킨게임이다. 하지만 스포츠 팬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팀의 콘셉트만 확실하면 이를 믿고 기다릴 줄 안다.
하지만 스포츠를 운영하는 대한민국 산하 운영진들은 기다릴 줄 모른다. 현상유지 외에 그 어떠한 것에도 큰 관심이 없다. '젊은이들의 관심이 중요하니까 우리도 이것 해보자, 저것 해보자'고 말은 하지만, 현실은 자신들의 밥그릇에 큰 영향이 없는 정도로만 움직인다.
이미 기존 한국의 스포츠는 레드오션이다. 그냥 빨간 것도 아니고 새빨갛다.
수 많은 종목을 감당하고 현상유지를 하려면 결국 운영의 확장성도 보여야 한다. 그 타깃은 한국이 아닌 전 세계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그럴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영리한 스포츠산업의 육성을 해야 한다. 엘리트 스포츠의 한계를 명확하게 인정하고, 어짜피 전업으로 삼을 수 없는 스포츠 종목의 선수들을 생활체육으로 전환하고 그들에게 성적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국가가 감당해야할 산업의 폭을 스스로 줄이고, 투자의 개념으로 스포츠도 육성해야 한다.
전 세계 몇 천만명, 몇 억명이 열광하는 E스포츠 2021년 최강국이 한국이라는 것도 그들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