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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랑 Mar 14. 2022

스포츠 방송국 신입 아나운서에게 묻는 질문

정규직 스포츠캐스터가 되기 위한 길은 너무나도 좁고 험난합니다. 공중파 3사(KBS, MBC, SBS) 산하의 스포츠방송국을 들어가야 '사실상' 정규직 대우를 받을 수 있는 현실이고, 자주 순환될 수 있는 보직이 아닙니다. 스포츠가 돈이 되지 않는 산업인 점을 감안하면 스포츠방송국의 파이는 점차 줄고 있습니다. 파이가 줄어든다는 것은 인력구조가 적어도 커질 일은 없다는 것이죠.


이런 현실 속 채용의 기회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신입사원'을 위한 자리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최근에는 정규직으로 채용되지 않은 스포츠캐스터들, 즉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캐스터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죠. 소규모 방송국에서 촬영 당 수당을 받는 경우까지 합치면 꽤 많은 인원이 경력직 자격을 획득할 수 있다 보니, 메이저 방송국 입장에서는 굳이 리스크를 감수하며 신입사원을 뽑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공중파 3사 산하 스포츠방송국 중 한 곳에서 스포츠캐스터 신입사원 공채가 생겼습니다. 방송국들 간의 인력 이동이 있어 빈 자리를 채우는 과정이었어요. 모든 세부적인 사정은 집어 치우고, 어떻게 뽑나가 제일 궁금했습니다. 일반적인 아나운서를 뽑는 채용 과정 틀과 유사했지만 제일 눈에 간 것은 자기소개서 내 질문이었습니다. 질문은 딱 2개였고, 1개는 일반적인 자기소개였습니다.


다른 하나 문항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MZ세대를 중심으로 육체적 움직임의 스포츠가 아닌 e스포츠를 시청하는 경향이 강한데 이들을 전통적인 개념의 스포츠 시청층으로 되돌리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점이 어떤 점인지를 서술하세요]


저도 90년대생이고, 스포츠캐스터가 꿈인 사람이며 '스타크래프트' 리그를 즐겨보는 것이 취미기 때문에 문제를 낸 이의 취지에 대해서는 매우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아나운서 신입사원 문제라기 보다는 스포츠PD 문제에 더 가까웠겠죠. 그래도 아나운서 준비생 중 스포츠를 잘 알지 못하는 인원을 이 질문을 통해서 가려낼 수 있다면 스포츠 덕후 입장에선 좋을 수도 있겠네요.


질문을 조금 더 생각해봤습니다. 모순이 있지 않나 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스포츠라는 큰 틀 안에 e스포츠가 존재하는 것이라면, 왜 e스포츠를 기존 스포츠채널에서 다루면 안되는 것일지에 대해서 말이죠. 이미 스포츠방송국에서는 '전통적인 개념의 스포츠'만을 다뤄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던 것입니다. 지금은 폐국된 MBC GAME과 같이 e스포츠는 별도의 게임채널에서 해야한다는 맥락입니다.


스포츠라는 큰 범위 안에 e스포츠를 실질적으로 품어줄 수 있다면, 대세에 맞는 종목을 중계하면 그만입니다. 단 현재 e스포츠의 절대 다수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LOL(리그오브레전드) 경기는 라이엇게임즈에서 미디어와 관련한 모든 것을 직접 운영하고 있죠. 즉 기존 게임방송국 또한 이로 인해 타격을 입었던 상황 속에, 스포츠 방송국들도 e스포츠를 개발하고 운영하는 주체가 '외주'를 방송국에 요청하지 않는 이상 손가락만 빨아야 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그래서 스포츠방송국에서 e스포츠가 타도의 대상이 되었을 지도 모르겠어요.


LOL 리그에서 인기 시간대(밤 8시 전후)에 펼쳐지는 경기의 한국 동시 접속자 수는 15만에서 20만까지도 이릅니다. 물론 라이벌 전, 혹은 토너먼트 경기, 외국 팀과의 경기는 이보다 훨씬 많습니다. 물리적으로 이렇게 많은 인원들이 시청하고 즐기고 있는 종목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이는 비단 스포츠방송국 뿐 아니라 국내에서 인기 스포츠라고 하는 야구, 축구 등 구단도 똑같습니다. 



그래서 제 3자가 본 위 문항에 대한 솔직한 답변은 '되돌릴 수 없다'입니다. 정확하게는 현 우리나라의 스포츠 산업이 고정된 파이를 놓고 나눠먹기를 하고 있는 이상, 글로벌 단위로 커져만 가는 e스포츠 산업 파이를 점점 넘어서기 어려울 것이다가 맞겠죠. 스포츠방송국이 앞으로도 e스포츠를 외면해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럴수록 간극만 커집니다. 적어도 게임사가 중계권을 가지고 있는 이상, 중계가 안될 일은 없으니까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또한 공중파에서 방영되지 않는다고 마찬가지로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전문화된 중계진을 준비하지 못하면 엄청난 반감만 살 것입니다.


최대한 절충을 할 수 있는 답을 고민했습니다. 모범답안이 뭘까. 확실한 것은 지금 3사 스포츠채널이 보유하고 있는 종목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봤어요. 미국 기준으로 젊은 세대들이 주 고객인 종목은 NBA, NHL, 그리고 세대별 호불호가 없는 NFL정도 입니다. 아쉽게도 MLB는 미국에서도 젊은 층에 소외된 종목입니다. 한국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정적인 운동에 속하는 야구 종목의 급진적(?) 변화 없이 트렌드를 바꾸긴 어렵습니다. 


'한국에서 직접 제작하고 콘텐츠를 생산하는' e스포츠를 다루지 못할 거라면, 결국 NBA와 UCL, EPL 등 해외 중계권이 현실적인 대안이 되겠네요. 유일한 우상향 그래프를 보이는 스포츠 산업을 버렸으니, 어쩔 수 없이 수입해야 합니다. 


KBO리그를 메인 콘텐츠로 활용하는 현재 상황에서 '스톡킹', '야구라'와 같은 유튜브 플랫폼을 이용해 반전을 꾀하려고 합니다. 근데 이것은 궁여지책일 뿐입니다. 유튜브 플랫폼은 방송국끼리만의 경쟁도 아니고, 기자들을 포함한 모든 미디어 그리고 각 구단들과 콘텐츠 경쟁을 해야 합니다. 레드오션에 가까워질수록 방송국은 오히려 을에 가깝겠죠. 또한 KBO리그를 시청하는 주 연령대는 4-50대인 반면, 유튜브에서 인기를 얻기 위해서는 조금 더 자극적이고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넣어 젊은 층에 주목을 받아야 한다는 모순이 있습니다. 4-50대를 오래 붙잡기 위해서는 알짜 정보들이 많아야 하는데, 이는 기자들이 제작하는 유튜브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후자를 택한다면, 결국 그들이 '스톡킹'을 보기 위해 프로야구를 시청하지 않는한 변화가 없겠지요.


저 역시 스포츠아나운서를 꿈꿔온 사람이지만, 이번 문항에 정말 많은 생각을 했고 지금의 현실을 다시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꿈을 꿔왔던 곳의 입지에 대한 아쉬움도 물론 크고, 또 스스로 대안을 찾아야겠다는 생각 역시 강하게 듭니다.


전통적 스포츠 혹은 e스포츠, MZ세대들에겐 그냥 다 스포츠일 뿐입니다. 스포츠의 앞날이 밝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저도 소소하게 제 개인 스튜디오에서 중계라도 한번 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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