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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랑 Mar 16. 2022

Dame의 내리막길을 지켜보다

스포츠, 팬, 덕후의 기준점을 다르게 만들었던 그 선수

좋아하는 스포츠 팀이 참 많다. 워낙 어렸을 적부터 스포츠를 좋아했고,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이유로 '입덕'을 해 20년동안 팬을 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내 4대스포츠는 모두 초등학교 때부터 팬 생활을 시작했다.


해외스포츠는 좀 다르다. 스포츠로 밥을 벌어 먹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컸던 대학생 시절, '공부'를 하는 차원으로 MLB와 EPL, NBA에 입문했다. 시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정말로 마음을 먹은 뒤 팬이 됐다. 어른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MLB와 EPL은 정말 시덥지 않은 이유로 팬을 할 팀을 정했다. 오렌지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미닛메이드파크를 홈 구장으로 쓰는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선택했고, 한 때 삼성을 메인스폰서로 써서 호감이라는 이유로 첼시를 택한 것 처럼.


그런데 유일한 반례가 하나 있다. 2014년부터 팬이 된 NBA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만 다르다. 이 팀에는 프랜차이즈 스타 '데미안 릴라드'라는 선수가 있다. 클러치 상황에서 과감하고 도전적인 공격을 즐겨하는 선수이고, 동시에 굉장히 임팩트 있는 순간을 많이 남긴다. 원래도 농구에선 3점슛이 꽃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너무나도 큰 떨림을 안겨다줬다. 순전히 선수 때문에 이 팀을 좋아하게 됐다.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카타르시스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줬던 순간. 'Dame time'


2021-2022 시즌에 데미안 릴라드는 명확한 하향곡선을 그렸다.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이미 그렸을지도 모른다. 팀은 줄곧 플레이오프에 곧잘 올라가는 팀이었지만 우승을 위한 2%, 아니 5%가 항상 부족했다. 과감한 투자를 하지 못했고, 빌드업은 늘 꼬였다. 그렇게 데미안 릴라드는 전성기 구간을 팀에 헌신했지만, 무관의 꼬리표는 결국 떼지 못했다. 올해 역시 마찬가지다.


단, 올해 달라진 점은 릴라드 없는 리빌딩을 포틀랜드가 하고 있다는 점이다. 릴라드는 부상을 당한 뒤 시즌 내내 코트에 나서고 있지 않다. 그 사이에 영혼의 단짝인 CJ 맥컬럼은 뉴올리언스로 트레이드됐고, 포틀랜드의 대부분 로스터가 완전히 바뀌었다. 연봉이 높은 선수는 모두 내보냈으니, 리빌딩이라고 보는게 맞겠다.


철저히 '팀' 중심으로 팬을 해온 나에게 리빌딩 과정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발판이라는 생각에 아쉬움 보다는 희망을 안겨다줬다. 연봉이 높은 A선수로 어짜피 우승을 못할 바에, 조금 더 어린 B선수 혹은 지명권을 가져오는게 더 좋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더 올바른 방향일 때가 많았다. 


이번 시즌 초반과 현재의 모습. '간판'을 제외한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런데 '선수' 중심으로 팬을 한 포틀랜드를 볼 때마다 너무 많은 감정이 교차하곤 했다. 이 팀에서 리빌딩은 곧 내가 제일 좋아하는 릴라드 시대의 폐막을 의미한다. 어느덧 30대 중반을 향하고 있는 포인트가드를 전면에 내세워 우승 레이스를 펼치기는 쉽지 않다. 반지원정대가 포틀랜드에 올 가능성은 로또보다도 낮다. 상황이 이러니, 팀의 우승을 위해 릴라드의 존재가 걸림돌이 될 지도 모른다는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팬으로서 이런 상황을 처음 겪어보니 색다른 느낌이었다. 


평소같으면 다음 시즌 우리 팀이 더 좋은 로스터를 꾸리기 위해서는 누구를 영입하는게 베스트 시나리오일까? 등을 고민했을 나인데. 한편으로는 릴라드라도 포틀랜드에서 끝까지 남아서 기량이 떨어지더라도 보고싶다는 생각도 크다. 어떤 결과가 나던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과연 내 응원팀 포틀랜드와 릴라드의 동행은 언제까지일까. 그리고 그 때의 나는 팀을 응원하게 될까, 선수를 응원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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