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여행 시리즈
WNBA의 매력은? / 미스틱스 ep.18
미국에선 정말 많은 종목의 스포츠를 관람할 수 있다. NFL부터 시작해 야구와 농구, 하키까지 등등. 주로 파이팅 넘치는 종목들을 미국인들이 즐겨 보는 편이다. 그런 면이 있어서 'football'이 'soccer'보다 훨씬 시장규모가 크고 더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측면을 봤을 때 미국 스포츠는 여성의 존재감이 크지 않다. 이는 물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최근 여자배구의 인기가 남자배구보다 높은 한국의 특성을 고려해 보면 미국은 그런 수준은 아니다.
미국에도 당연히 여자농구리그가 있다. WNBA.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한국에서 여자농구리그를 봐왔기 때문에 외국선수들이 뛰던 시즌 그들의 기량이 어땠는지 잘 기억한다. 그 외국 선수들이 가장 꿈으로 생각하는 무대가 WNBA다. 그런데 남자농구와 편차가 매우매우 크다. 화려한 경기장에서 경기를 안하는 구단도 있고, 선수들의 플레이에 대비해 관중의 특성, 규모, 형태도 많이 다르다. 우리나라는 형식적으로 갖출 것은 모두 갖췄다. 응원단이 없는 것도 아니고, 체육관도 남자 농구 체육관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미국에서 WNBA를 2경기 직관했다. 원래는 박지수 선수가 라스베가스에서 뛰고 있을 당시 일정과 맞춰서 가려고 했으나, 애리조나 야구팀의 일정이 안맞는 이상한(?) 변수 때문에 피닉스/애리조나/라스베가스 방향의 여행 동선을 짜지 못했다. 이는 다음에 꼭 실현하리라. 아무튼 LA와 워싱턴에서 WNBA를 봤는데, LA보다는 워싱턴에서의 기억이 조금 더 특별하다.
LA는 현 크립토닷컴 아레나, 구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LA 스팍스 경기를 치른다. 지난 LA편에서 얘기했듯 이 경기장은 무려 4개 구단의 홈 구장으로 사용된다. 남자농구 두 팀과 하키팀, 그리고 여자농구팀이다. 아무래도 WNBA랑 아이스하키는 그렇게 많은 경기 수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또 WNBA는 일반적인 농구 시즌과 다르게 초여름~가을에 걸쳐 시즌이 진행된다는 점도 이걸 가능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LA에서 여자농구를 볼 때는 NBA와 같은 구장에서 치러지니까 별다른 특색을 찾을 순 없었다. 그냥 다른 농구 보는 느낌 이상 이하도 아닌.
그런데 워싱턴 미스틱스 경기를 보러 갔을 때는 조금 더 특별했다. 일단 경기장 위치부터 훨씬 'local' 했다. 미국의 대부분 체육관, 경기장들은 다 번화가에 자리잡고 있고 스케일도 웅장하다. 그런데 이 곳은 달랐다. 조금은 한산한 시골 마을에 자리잡은 문화예술회관 같이 생긴 건물이 체육관이었다. 엄청난 인파가 경기장을 향해 몰려가지도 않았고, 접근성이 대단히 좋은 것도 아니었다. 색다른 경험이었다.
경기장 내부를 들어가서도 이런 분위기는 같았다. NBA 스타디움 안에는 엄청난 조명들과 음악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축제를 즐기기 위해 모인다. 그런데 WNBA 경기장 안은 달랐다. 비교적 고요했고, 한국의 학교 체육관과 같은 느낌도 들었다. 복도에는 츄러스와 아이스크림을 파는 간이 판매대가 있었는데 한국에서 많이 본 느낌이었다.
*이게 좋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맛있는 음식만 계속 먹다가 평소에 잘 즐겨먹지 않은 음식을 먹으면 '새로움'과 함께 맛있어보이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런 효과다.
WNBA의 매력
워싱턴과 시애틀의 WNBA 경기였다. 나름 강팀들끼리의 경기. 거듭 이야기하지만 참 신선했다. 경기장 안의 응원 분위기부터 '로컬'이었고, 그동안 투어를 다니며 볼 수 없었던 유색인종과 여성분들이 참 많았다. 너무 좋아보였다. 여자농구를 즐기는 중, 장년층들의 모습은 우리에게서 볼 수 없는 모습이었으니까.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내가 생각한 것 만큼 대단히 수준 높은 경기력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한국에 외국 선수로 들어오는 WNBA 선수들은 엄청난 이름값을 가졌거나, 가지게 될 선수들이 많이 왔다. MVP도 있을 정도니까. 정규시즌 일정이 안겹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데, 한국에서 보던 외국 선수들 기량보다 '더 나은' 슈퍼스타 플레이를 보여주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매력은 철철 넘쳤다. 자유투를 앞두고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 빠르지는 않지만 자신있고 과감하게 시도하는 공격들. 또 외곽슛도 좋았고. 성공 확률이 떨어지고, 실패하는 장면이 다소 많아서 그렇지 '다른 종목'이라는 인상은 들지 않아서 좋았다. '우당탕탕'이라는 표현이 적합할 지는 모르지만, 우리나라 대학교 남자농구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있을 것은 다 있었다. 이벤트도 열어주고, 내 인생 최초로 농구장에서 던져주는 경품을 받았다. 미스틱스 티셔츠를 선물로 받았는데 기회가 된다면 이 팀에서 뛸 뻔 했던 강이슬 선수한테 사인 받고 싶었는데, 아쉽다.
WNBA는 티켓 가격이 그렇게 높지 않다. 굳이 다른 프로스포츠가 없는 도시, 가령 코네티컷과 같은 곳을 WNBA 직관만을 위해 보러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LA나 워싱턴처럼 방문시 일정만 맞는다면 한번 쯤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뛰었던 외국 선수들 라인업을 미국에서 다시 보면 참 반가웠는데, 매번 '새로움'을 느끼는 미국 스포츠 투어 속에서 오랜만에 겪어보는 '익숙함' 순간도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