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여행 시리즈
돔, 아늑함, 로맨틱 / 브루어스 ep.22
미국의 중부, 그 중에서도 북쪽에 위치한 밀워키는 관광지와는 매우 거리가 먼 도시다. 블로그에 최초로 밀워키 관련 포스트를 올렸을 때 생각보다 많은 조회수가 나온 것도 희소성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니까. 시카고 여행을 가는 동선에서 밀워키가 멀지 않기 때문에 갈 수 있었지, 아마 밀워키만을 방문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시카고에서 암트랙을 타고 밀워키로 이동했다. 밀워키는 진짜 미국의 완전 로컬 타운이라고 느낀 점은 흔한 버스 하나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 그래도 우버가 많이 돌아다니는 편이었지만, 어디를 갈 때마다 도보권으로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숙소는 호텔을 잡았는데도 불구하고 미국 돌아다니면서 봤던 호텔 중 가장 넓고 아늑했다. 그리고 비싸지 않았다. 어짜피 숙소 선택지가 많지 않은데, 그나마 야구장에서 가깝고 꽤 괜찮은 호텔이었다. 웬만한 도시, 혹은 서울에서는 스위트룸으로 쳐줄만한 방을 배정해줬다. 시골 느낌이 나는 동네다 보니 본의아니게 호텔 밖에서 몇 센트를 지나가시는 로컬 행인에게 뜯겼지만(?). 그것 빼고는 괜찮았다. 동네 전반적인 물가도 싼 편이었고, 한국에서 타코벨을 가볼 일이 없었는데 타코벨의 소프트 타코가 그렇게 맛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이래저래 좋은 기억들이 더 많았다.
밀워키 메이저리그 구단인 밀워키 브루어스의 홈 구장인 밀러 파크. 지금은 아메리칸 패밀리 필드로 이름이 바뀌었다. 원래 이름이 '밀러'였던 이유는 인근에 있던 맥주 공장 때문이다. 실제로 밀워키에 가장 핫한 여행코스는 맥주 공장에 방문해 맥주를 마시는 일이었다고. 일정이 길지 않아서 알아보지는 않았지만, 꽤나 재밌을 것 같다.
아메리칸 패밀리 필드를 지도에서 검색해보면 "아니 무슨 이런 위치에 경기장이 있어?"라는 말이 나온다. 마치 고속도로 인터체인지에 떡하니 경기장이 있는 모습이기 때문. 대중교통으로 갈 수 없을 뿐 아니라 도보로 갈 수 있는지 조차 매우 의심스러운 위치에 있다. 무조건 자차 혹은 우버를 타게끔 되어있길래 우버를 탔다. 나중에 알고 보니 호텔에서 경기장까지 운행하는 셔틀도 있었다고 하던데 셔틀이 있을 정도면 교통수단에 대한 기대를 안하는 것이 맞았겠다.
브루어스 홈 경기를 보던 날은 평일 낮 경기였다. MLB는 평일 시리즈의 마지막 경기를 일부러 낮 경기로도 열곤 하는데, 이는 이동 시간을 조금이라도 일찍 해 다음 경기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밀워키에서 저녁 경기를 하고, 다음날 LA로 이동해서 또 경기를 한다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그래서 현지시간으로 수요일~목요일에도 오후 1시 경기가 종종 열리곤 한다.
그럼에도 경기장 앞은 북적였다. 제일 놀랐던 것은 엄청난 '스쿨버스 부대'가 경기장 앞 주차장에 있었다는 것. 어림 잡아도 30여대는 있었고, 굉장히 많은 아이들이 체험학습 겸 야구를 보러 온 것 같았다. 이들이 내야석 한 켠에서 야구를 보니 꽤 경기장도 활기찬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평일 낮 경기는 한국에서는 어지간하면 열릴 수 없는 구조가 맞다. 하지만 더블헤더 등으로 인해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다. 낮 경기를 어떤 이유에서라도 '해야할 때'는 당연히 적은 관중이 들어올 수 밖에 없다. 단순히 관중이 적게 들어올 것을 걱정하고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기회를 오히려 학교 초청 등 마케팅 수단으로 쓰면 좋지 않을까. Z세대가 야구를 안본다고 걱정하면서 틱톡에서 이벤트를 열고 마케팅을 하는 우리나라. 인스타그램, 카카오톡에서도 안하던 마케팅을 틱톡에서 할려니 될 리가 있나. 많은 아이들에게 야구경기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그런 것을 놓쳐선 안된다. 이런다고 또 저녁 경기에 학생들 반강제로 불러서 괜히 욕먹지 말고.
물가가 싼 동네여서, 티켓도 나름 플렉스 했다. 1층 로얄석 바로 아래 단계 즈음 됐을 것이다. 스텁헙에서 티켓을 구매할 때 마다 정말 심혈을 기울여서 최대한 앞쪽 라인에 앉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좋은 뷰를 차지할 수 있었다. 밀워키 경기 때 자리는 아마 뉴욕 메츠 경기장 때와 투탑으로 좋은 자리였을 것이다. 가장 로얄석에는 자리 앞에 조그만 TV도 설치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직관러들이 경기 상황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보여주는 모니터였다. 지금은 우리나라에도 창원NC파크에 가면 볼 수 있다.
돔 구장이여서 추웠던 시카고 날씨는 싹 잊고 너무나도 아늑하고 좋았다. 4월에 밀워키를 와도 괜찮다. 뚜껑이 덮여있으니까. 분명 전반적인 느낌이 엄청 신식 건물은 아니고 천장 색깔부터 건물 외관 등등이 고척돔과 유사한 면이 많았는데, 뭔가 훨씬 넓고 높고 웅장했다. 당연히 고척돔보다 더 크게 지어졌으니 그 느낌은 맞다.
아이들이 야구장에 오면 참 좋아하겠다라는 생각은 구장 곳곳의 시설물들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외야 건너에는 이 구장의 시그니처 미끄럼틀이 있는데, 홈런을 치면 마스코트가 이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 세레머니를 한다. 휴스턴 홈 구장에 기차 움직이는 것처럼. 이 미끄럼틀을 경기 전에는 일부 사람들을 이벤트로 선정해 태워준다고도 한다. 이 밖에도 경기장 복도에는 아이들을 위한 볼풀장과 야구체험 시설들이 있었고, 간이판매대에도 키즈 상품들을 많이 내놓고 팔고 있었다. 밀워키 구단은 빅마켓(돈이 많은 구단)으로 분류되지 않는데, 이런 세심한 면은 분명 타 구단들도 본받아야 할 부분이라고 여겨졌다.
밀워키 브루어스의 야구 스타일이 화끈함과는 거리가 멀다. 컨택 능력이 좋은 것도 아니고 투수력으로 밀어부치는 팀이라 그런가 사실 경기는 그렇게 재밌지 않았다. 하지만 경기장에 앉아 있는 그 느낌이 아직까지도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내가 생각한 돔 구장에서 혼자 편안하게 야구를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상상했던 이상을 밀워키에서 실천할 수 있었다. 구장이 외진 곳에 있고 신축이 아니면 어떠하리. 먹을 것도 싸고 좌석은 편안하고 재밌게 야구 보면 되는거지. 2014년부터 야구를 보기 시작했는데, 애스트로스 팬이 안됐었다면 브루어스 팬을 했을 것 같다. 이 쯤이면 나는 돔을 좋아하는 것 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