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한테 춘천은 대학 엠티 때 잠깐 들렀다 가는 곳이었어요. 자주 가진 못했지만, <춘천 가는 기차>라는 노래를 좋아해서 언젠가는 꼭 제대로 여행해봐야지 하고 생각만 하던 곳이었죠. 그러다 이번에 브랜디와 함께 춘천으로 워크숍을 다녀왔는데요. 비록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춘천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흥미로운 것들을 꽤 많이 발견했어요.
첫 번째로는 춘천시의 'S버스'인데요. 정류장에서 3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안내판에 3번 말고도 3-S, 6-S 등 숫자 뒤에 '-S'가 붙어있는 버스가 있더라고요. 저건 대체 뭘까 했는데, 알고 보니 고등학생들을 위한 등교 급행 시내버스더라고요. 쉽게 말해 학생 통학용 버스인데요. 버스 어플에 일반 버스들과 함께 등록돼 있지만, 일반인은 탑승할 수 없다고 해요. 학생 주거지역에서 학교까지 직통으로 간다는 큰 장점이 있어, 학생들과 학부모 반응도 대체로 좋은 편이죠. 전국 최초로 도입한 제도인데 반응이 좋아 원주시와 화순군 등, 타 시군에서도 벤치마킹을 했다고 해요. 춘천에는 경사진 길이 많아서 도보로 이동하기 쉬운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S-버스로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등하교를 할 수 있다니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
두 번째는 춘천의 '공지천'이에요. 워크숍 첫날, 춘천역 근처 식당에서 막국수를 먹다 문득 자전거를 타고 춘천을 돌아다녀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자전거 대여소를 찾아갔는데요. 공지천 양옆으로 자전거 도로가 나 있어 편하게 숙소 근처까지 갈 수 있었어요. 각자 마음에 드는 자전거를 빌려 공지천을 따라 달렸는데, 살짝 젖은 티셔츠가 바람과 맞닿으며 느껴지는 상쾌함이 퍽 좋더라고요. 후드 집업까지 땀으로 젖었는데도 불쾌하지 않고 오히려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어요.
둘째 날에는 의암호를 다녀왔는데요. 탁 트인 의암호 주변으로 펼쳐진 산을 보니 가슴이 너무 후련하더라고요. 건물들이 빼곡히 서 있는 도시에서는 아무리 고개를 들고 다녀도 시원하다는 생각이 안 들었거든요. 이곳만큼은 개발되지 않고 주민들을 위해 잘 보존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춘천은 비건 지향인이 살기 좋은 곳은 아니었지만 가능성이 아주 높은 곳이었어요. 숙소 근처 편의점을 갔는데 저희 집 근처 편의점에도 없는 비건 젤리와 비건 육포가 있더라고요(!!). 또 시래기 두부조림을 먹으면서는 이런 메뉴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요. 두부 가지 된장덮밥이라던가, 타국의 식재료가 아닌 한국의 식재료로 맛을 살린 한식 채식을 더 자주 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춘천을 돌아다니면서 지역 불균형을 고민하게 됐어요. 요즘 한창 논란이 많은 춘천의 차이나타운 조성 이슈를 브랜디와 이야기 나눴는데요. 저는 솔직히 이런 문제가 참 어려워요. 지역 격차 해소를 위해 인프라가 발달해야 하는 것도 맞지만, 환경 문제를 고민하는 입장에서 산을 깎는다던지 서식지를 파괴하는 건 비판적인 입장이거든요. 하지만 정작 저는 지방에서 보내주는 에너지에 의존해 살고 있잖아요. 잠깐 있다 갈 제가 수도권에선 누릴 거 다 누려놓고, 춘천시에 환경을 파괴하지 말라고 말하는 건 너무 무책임하지 않나 싶기도 하더라고요.
그렇다고 춘천에 반드시 차이나타운이 필요할까요? 지금 춘천에게 최우선으로 필요한 인프라가 차이나타운이 맞는 걸까요? 저희가 느꼈던 문제는 춘천에는 대형 서점이 없다는 점이었어요. 자세히 알아보진 못했지만 숙소 근처에 마땅히 즐길 수 있는 문화 예술 공간이 없는 점도 아쉬웠죠. 관광객보다는 주민들을 위한 인프라가 우선적으로 마련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From. 올리브
중학생 때 숙제를 위해 찾았던 일 이후로 처음 방문한 춘천. 이번 여행이 특별했던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단순히 무언가를 구경하고 먹고 즐기기만 했던 지난날의 여행과 달리, 그 지역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끼고자 했던 취지에 있어요. '강원도 춘천'이라는 도시가 서울과 다른 점, 이 곳에만 있는 물건, 심지어는 길의 형태나 신호등 같은 것도 놓치지 않고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여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거든요.
두 번째는 이런 테마를 가지고 간 곳이 마침 '춘천'이었기 때문인데요. 별 이유 없이 정한 지역이었는데 굉장히 섬세한 구석이 많은 도시더라고요.
일단 이 곳엔 비건들이 먹을 게 제법 많아요. 특히 막국수를 좋아한다면 음식 걱정은 안 해도 될 정도예요. 전반적으로 춘천에서는 요리에 고기를 덜 사용하는 듯합니다. 막국수도 육수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밑반찬도 나물이나 채소반찬이 대부분이에요. 인터넷에서 찾은 글에 의하면 갈빗집 된장찌개에도 고기를 안 넣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비건 음식만 판매하는 비건 식당은 적지만 어쩌다 보니(?) 비건 취식이 가능한 메뉴가 많은 느낌이라 신선했어요. 이렇게 야채로 음식의 맛을 내는 게 디폴트인 사회를 상상하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또 곳곳에 공원이 많은 편이에요. 대단히 큰 공원은 아니어도 중간중간 정자나 벤치 같은 것들이 자주 보였어요. 퇴근 시간이 되니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그걸 보니 저도 덩달아 신나게 자전거 페달을 밟게 되더라고요. 공원들 중에서 제가 특히 마음에 들었던 곳은 공지천 주변인데, 천을 따라가다 보면 의암호라는 아주 큰 호수가 나와요. 호수 건너편으로 산이 펼쳐져 있어서 시야가 탁 트이는 게 너무나 평화롭게 느껴졌어요. 번화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런 대자연이 있다는 게 놀라웠죠.
마지막으로 이곳에는 고등학생들을 위한 통학 버스인 S버스가 있어요. 기존 종점이 아닌 고등학교 인근을 종점으로 변경하여 연장 운행하는 버스라고 해요. 예를 들어 일반 7번 버스의 종점이 '후평동 차고지'라는 곳이라면, 7-S 버스는 후평동 차고지에 정차한 후 인근 고등학교 2~3군데를 더 들러요. 서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방식의 섬세함이 느껴졌어요.
아쉬웠던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조금 빠른 편이에요. 꽤 긴 횡단보도에서 초록불이 10초만 카운트되는 것을 보고 경악했던 기억이 나요. 우리도 힘겹게 건너는 시간인데 노약자나 장애인은 이 곳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어요. 또, 서점이 잘 보이지 않았던 것도 아쉬웠어요. 특히 알라딘이나 yes24 같은 중고서점이 춘천시 내에 단 한 개도 없더라고요. 그나마 도서관은 몇 군데 찾을 수 있었어요.
춘천은 산이 많은 다른 도시들처럼 골프장이 정말 많았어요. 뭔가를 새로 건설하는 공사 현장도 자주 보였고요. 둘러보는 곳마다 자연으로 가득한 의암호 근처에서도 테마파크를 짓고 있었어요. 갯벌이 있으면 메우고, 산이 있으면 깎는 것이 인간의 본능처럼 느껴져 씁쓸했지만 한 편으로는 나도 자연을 '소비'한다는 측면에서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대한민국의 한가운데에 살며 도시의 온갖 특권을 누리며 살다가 힐링을 위해 잠시 지방을 찾으면서 자연이 사라져 간다고 안타까워하는 것이 어쩌면 이기적인 태도일지도 모르겠거든요.
지역 간 격차와 각 도시의 매력을 알아보기 위해 떠났지만 사실 준비를 탄탄히 해서 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걱정이 많았는데, 주제와 너무 잘 어울리는 곳에 다녀온 듯합니다. 저에게 여행은 늘 끝이 아쉬운 시간이었는데, 개인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생각해 볼거리를 기념품으로 들고 오니 지금도 계속 여행 중에 있는 것만 같네요. 다음에는 또 어디로 가면 좋을지 생각하며 지도를 둘러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