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3.12.14/목)
어느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어제부터 내리는 비가 이유 없이 쓸리고 아프다.
우산 없이 우중산책을 다닐 만큼 좋아하던 비였는데. 상처 난 마음엔 빗방울만 닿아도 아픈가 보다.
여러 가지 변수를 준비해서일까.
마음에 길이 사라졌다. 오늘은 동생 결혼식을 하루 앞둔 날이다. 결혼식을 위해 하루 일찍 대전을 내려가야 한다.
아빠는 힘드시지만 막내를 위해 최선을 다해 버티고 계신다. 엄마와 아빠가 함께 애쓰고 계신 거 같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아빠가 말씀하셨다. '돌아가신 엄마도 큰 이모도 외할머니도 왔다 가셨다'라고 말이다. 생전 아프지 않으셨을 때 모습으로 오셨다고 한다. 그리곤 '병원 한편에는 모르는 남자가 자꾸 와서 쳐다본다'라고 하신다.
엄마도 돌아가시기 며칠 전부터 저승사자가 온다고 저리 가라고 했는데, 아빠가 말하는 모르는 남자도 그런 걸까.
학교 잘 다니던 아들에게도 일이 생겼다.
학년 말이 되니 반에 일진 새싹 무리들이 생기면서 반끼리 연대를 맺고 다니며 시도 때도 없이 와서 괴롭힌다고 한다. 12월부터 그랬다는데 내가 알게 된 게 13일 밤이었다. 우리 아이는 각종 무술을 다녔어서 반격을 하려 하면 뒤로 싹 빠진단다. 딱 사람이 미칠 정도로 선생님들 안 계실 때만 쉬는 시간마다 와서 넷이서 깐족깐족 인신공격을 하니 자유롭고 여유로운 성격에 아이에겐 미칠 일이었을 것이다.
아이는 정신을 공격하니 진짜 싹 다 죽이고 내가 소년원을 가고 말아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진지하게 들어주고 왜 그렇게 해결하면 안 되는지에 대해 한참을 설득했다. 아이가 오죽 미치겠으면 그랬을까를 생각하니 어제는 안정제도 청심환도 하나도 효과가 없었다. 하루종일 겉만 멀쩡하지 속은 미쳐 날뛰는 거 같았다. 아이 앞에서는 의연하고 믿음직스러운 부모여야 한다.하지만 속으로는 천불이 일어나 내속이 모두 전소되어 버렸다.
어제는 담임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그동안 들은 이야기를 말씀드리고 2학년 반배정을 떨어트려 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리고 이제는 그 아이네 부모님이 아시게 됐으니 이번 한 번만 기회를 줄 테니 보복이나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너희들 부모님을 직접 만나 해결하겠다고 전해달라고 했다. 두 번의 자비는 없다고 꼭 전해달라고 말씀드리면 우리 아이 근처에도 오지 말고 절대 친하게 지내지도 말라고 말해달라고 전했다. 어른들이 어떻게 자식을 키우면 아이들이 학교에 와서 괴물이 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이제 촉법도 아닌 너희들이 직면할 사회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가르쳐 주어야 할 때이다. 우리 아이는 그저 쉬는 시간에 그림이나 그리고 좋아하는 외국어나 외우며 쉬는 걸 좋아할 뿐이었는데 말이다.
2학기에 담임선생님이 회장 재연임을 부탁했었지만 아이는 1학기에 너무 바빴던지라 2학기에는 쉬고 싶다고 거절을 했었다. 반회장도 안하고 2학년 전교부회장 선거에도 안 나간 녀석이다. 실컷 쉬고 2학년 말 되면 전교회장 선거에나 나가겠노라 했다.
그런데 이제는 안 되겠다며 다시 운동을 다니겠다고 하고 전교회 임원에 지원했다. 2학년 때 반회장도 다시 하겠다고 한다. 왜 사회가 이렇게 팍팍한지 모르겠다. 무슨 직분과 연대가 꼭 있어야 함부로 못 건드는 사회라니. 그냥 학생 때라도 자기 하고 싶은 거 하며 살게 내버려 두질 않는다. 마치 살기 위한 서바이벌 같아서 너무 애처롭고 안쓰럽다.
아빠는 길게 버티셔도 막내 신혼여행에서 돌아올 때까지는 못 버티실 거 같다. 동생 없이 장례를 치를지도 모른다. 결혼식날까지 버텨주시는 힘도 무한히 애쓰시는 걸 테다.
캄캄한 하늘과 함께 밤을 지새운다.
고독과 고통에 몸부림치더니 온몸에서 붉은 음파가 파동을 친다.
기쁜 맘과 환한 표정으로 동생을 만나러 가야 하는데 가슴에 여백이 남아 있질 않다.
그래도 나는 힘을 내야 한다.
의연하고 담대하게
그리고 여유롭게.
엄마는 내 편지를 읽고 답장을 주셨으니
이제는 내가 답장을 할 차례이다.
내가 이곳에 있음으로.